2012 Weekly칼럼(151-174)

레위기의 제사의 정신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74)

Joseph Lee 목사 2013. 11. 3. 14:02

레위기의 제사의 정신은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174)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찌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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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제물이 되심으로 레위기의 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럴지라도 레위기의 제사의 정신은 오늘날도 살아 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정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생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찌니라”(1:2) 더 이상 레위기 시대에서 제정된 방식으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됩니다. 시대가 변해서 이 방법으로 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대속 제물이 되셔서 하나님께 십자가에서 자신을 단번에 드리셨기 때문에 레위기 시대의 제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했을 때, 죄사함과 구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레위기 제사의 정신은 무척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나님께 도저히 도달 할 수 없는 영적인 신분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은혜로 단번에 영적으로 의인이 되고, 죄사함을 받는 것은 보통 축복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그 의미를 깊이 모를 때가 많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을 무시하다 보니, 그 정신까지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하나님께 더 이상 제물을 바치지 않아도 되니, 인색해지는 신앙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수께서 이루신 일이 엄청난데도, 감격하기 보다는 자신의 기도 응답이 더디다고 투정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더라도 레위기의 정신을 결코 잊어서는 안됩니다. 구약의 모든 세대들이 여호와께 드려야 하는 제사를 잃어 버리게 되었을 때, 엄청난 고난과 핍박이 왔습니다. 여호와 없이 살아도 된다고 착각하며, 제사를 우습게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은 무척 까다롭게 제정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상상도 하지 못 할 정도로 많은 부담으로 여호와께 나가야만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모두 짊어 지셨습니다. 모든 예배의 초점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레위기 정신이 오늘날 회복된다면, 자신의 일보다 하나님께 생명 걸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레위기 제사의 종류와 그 의미>- ”그 예물이 소의 번제이면 흠 없는 수컷으로 회막 문에서 여호와 앞에 열납하시도록 드릴찌니라 그가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찌니 그리하면 열납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될 것이라”(1:3-4) 때로는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단번에 속죄하셨지만, 레위기 제사법을 따라서 제사를 올려 드리는 체험을 며칠 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아마 눈물 없이 드릴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사람의 힘으로 다가가기가 불가능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제사를 드려도 끝없음을 깨닫게 될 때, 그리스도의 은혜를 깊이 알게 될 것입니다. 고행을 통해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갈 수 있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를 통해서 여호와께서는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하나님께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람에게는 그 어떠한 의가 없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의 제사는 의식 예배와 생활 예배가 나누어져 있습니다. 여호와께 올려 드려지는 진정한 제사는 생활을 통해서 반드시 나타나야 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거룩하고, 경건한 의식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더라도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드리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5가지의 제사법이 레위기에 나타나 있습니다. 번제입니다. 완전한 헌신을 상징합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에 양을 바쳐야 하는 집단적 번제와 빈부차를 고려한 소..염소.새를 드리는 개별적 번제가 있습니다. 각자 힘닿는 대로 개인에게서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헌신을 강조하셨습니다. 육신의 소산물을 하나님께 헌납하는 소제가 있습니다. 죄를 회개하는 제사인 속죄제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속건제가 있습니다. 손해를 끼칠 경우 1/5을 손해배상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람과 사람간의 화평을 상징하는 화목제가 있습니다. 이처럼 때마다 드리는 많은 제사가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이루셨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은혜를 입은 자는 그 은혜를 잊지 않고 반드시 기억합니다.

 

<레위기의 제사에는 하나님의 깊은 복선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이 만일 화목제의 희생을 예물로 드리되 소로 드리려거든 수컷이나 암컷이나 흠 없는 것으로 여호와 앞에 드릴찌니 그 예물의 머리에 안수하고 회막 문에서 잡을 것이요 아론의 자손 제사장들은 그 피를 제단 사면에 뿌릴 것이며”(3:1-2) 제물에 안수를 합니다. 사람의 죄를 그 제물에 전가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러나, 불완전합니다. 하나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람의 모든 죄악을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습니다. 제물에게 안수 할 때, 죄가 상징적으로 제물에게 전가되었듯이,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모든 공로를 마음으로 믿어서 입으로 시인하게 될 때, 제물에 안수하듯이, 그리스도께서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하여 주십니다. 제물에 안수하는 행위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며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예언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내가 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죄사함의 은혜를 모르면, 구원과 영생의 감격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엄청난 은혜의 비밀이 레위기 제사법에 숨어있습니다. 그 까다로운 제사를 그리스도께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제물들은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짐승을 안락사 시킬 수 있지만, 사람이 보는 데서 잔인하게 죽었습니다. 안수했던 그 짐승을 그렇게 죽임으로써 사람이 지은 죄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켜 볼 때 마다 자신이 죽어야 하는데, 짐승이 대신 죽는 것을 보면서, 많은 고통을 느껴야만 했습니다. 그리고, 한동안 그 감격을 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개인의 죄를 위하여 잔인하게 죽으셨다는 그 진리가 마음에 쉽게 오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많이 듣고, 익숙해 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어떠한 짐승보다도 더 잔인하고 잔혹하게 죽으셨습니다. 십자가 앞에 다시 서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얼마나 비참하게 죽으셨는지 영적인 환상을 보아야 합니다. 그 감격과 감동을 누려야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이미 죄사함을 받았지만, 각자의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그리스도께서 왜 그렇게 비참하게 죽으셔야 했는지 알게 된다면 깊은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은혜를 누리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레위기의 제사법은 까다롭기 그지 없습니다. 제물의 종류부터 시작해서 어디서 제물을 죽여야 하며, 피를 어떻게 뿌려야 하는지, 제단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내장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로 복잡합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그렇게 하셨습니다.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로 결코 올 수 없으며, 사람의 노력으로 오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마음 속에 깊이 새기라는 것입니다. 또한, 제사를 드려도 다음 정해진 시간이 오면, 복잡한 제사를 또 드려야 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10:1-2) 레위기 9장과 10장은 완전히 대조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레위기 9장은 아론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를 드리는 모습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10장은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는 불을 가져다가 드렸다가 죽음을 당하게 됩니다. 오늘날은 이해하기 힘든 부분 일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제사는 여호와께서 정하신 절차와 방법대로 드리는 제사라고 강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만이 하나님께로 나아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또한, 예배의 기준도 말씀에서 찾아야 합니다. 각자 원하는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각자에게 원하시는 지 선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날은 더 이상 나답과 아비후처럼 제사 드리다가 죽임을 당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입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은 예배 드리는 자를 찾고 있습니다. 각자 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자를 오늘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