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Weekly칼럼(151-174)

배후에 하나님의 사람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169)

Joseph Lee 목사 2013. 11. 3. 13:58

배후에 하나님의 사람의 눈물이 있었습니다. (169)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의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 여호와께서 저와 함께 하시매 저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였더" (왕하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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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의 성공에는 이사야 선지자의 눈물의 기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사야는 유다 왕 웃시야와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의 네 명의 왕을 거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회개를 선포합니다. 주변의 이방 족속들이 여호와께 범죄한 이스라엘을 치는 막대기와 지팡이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또한, 그러한 불의의 도구로 사용된 이방 나라들을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도 전합니다.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해서 진노하셨던 하나님은 이사야 40장부터 소망과 희망의 약속을 선포하기 시작하십니다.

이사야 서를 정신학적으로 분석해 보면 감정이 정상이 아닌 듯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 정도로 격정적인 상반된 감정의 표현이 많습니다. 그 획을 가르는 장이 40장입니다. 오랫 동안 야곱의 지파에 일방적인 사랑을 주었지만, 끝내 돌이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진노 하시는 하나님과 여전히 그 영혼들을 무척 사랑하셔서 견디지 못하시는 일방적인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이 충돌하는 듯 합니다. 공의의 하나님과 사랑의 하나님이 갈등하시는 모습이 이사야 서에 적나라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짝사랑의 노래로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심장은 터져 버리시게 됩니다. 그 짝사랑은 아들 예수를 아낌없이 버리시는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독생자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히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십니다. 이사야 서는 사람들의 죄악을 참지 못하고 심판하셔야만 하는 공의의 하나님과 영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의 마음이 녹아져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은 이스라엘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이사야의 사역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웃시야와 요담 왕은 비교적 하나님을 앞에서 마음을 지키려고 애를 썼습니다.

문제는 아하스 왕입니다. 아하스왕과 그의 아들 히스기야 왕이 여호와를 향하는 마음은 상반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눈물로 사역을 하던 이사야의 모습에 하나님의 심정은 고스란히 녹아져 있었습니다.

 

아하스는 유다를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의지하기 보다는 앗수르 왕의 힘을 의지 합니다. 16년 동안 유다를 치리하는 동안 이방 사람의 가증스러운 일을 본받아 자기 아들들을 불가운데 지나가게 합니다. 아람 왕과 이스라엘 왕 베가가 협공해서 쳐 들어 왔을 때, 이사야 선지자는 아하스에게 나아가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도우심을 구하라고 하지만, 아하스 왕은 철저하게 무시합니다. 오히려, 앗수르 왕 디글랏 벨레셀에게 신복을 보내서 도움을 받고자 무릎을 꿇습니다. 왕궁 곳간과 성전에 있는 모든 은금을 취하여서 앗수르 왕에게 예물로 보냅니다. 철저한 친 앗수르 중심의 정책을 폅니다. 앗수르 왕이 이런 아하스를 다메섹으로 초정해서 이방 신의 단에게 제사 드리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하스는 앗수르 왕의 힘이 이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생각했는지. 그 단을 그대로 유다로 들고 옵니다. 그 단의 구조와 제도의 식양을 그대로 그려서 여호와의 제사장인 우리야에게 보내서 똑같이 만들게 합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더 이상 여호와의 성전이 아니었습니다. 이방인 중심의 신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졌습니다. 여호와의 제사장도 변질되었습니다. 정치도, 외교도 앗수르 의존적이 되었습니다. 아하스 왕에게 앗수르 왕이 구원자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했습니다. 나라 곳간이 철저하게 비어갔습니다. 온 백성의 삶도 힘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 시간에도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아하스왕에게 가서 여호와의 징조를 구하라고 했지만, 아하스는 여호와를 시험치 않겠다는 고백을 했습니다. 믿음이 좋은 것 같은 고백이었지만, 실제로는 여호와를 믿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나라는 국력이 약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라의 모든 힘이 빠져 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외교도, 정치도, 백성들의 삶도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이사야는 통곡을 했습니다. 앗수르와 요담 왕때, 눈물과 기도로 나라의 영적 분위기를 놓고 중보 했던 이사야의 수고가 아하스 왕때 와서 모두 무너 지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참담했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서 피눈물 나는 여호와의 심판에 대해서 전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여호와 앞에 돌이키는 것 같지 않습니다. 아하스가 유다를 다스렸던 16년의 시간 동안 이사야 선지자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순교와 같은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울며, 하나님께 눈물 흘렸던 16년이었습니다. 이사야가 힘들어 했던 것은 나라가 가난해 진 것도 아니었고, 국방력이 약해 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이 무너진 것과 성전의 예배가 사라진 것에 대해서 이사야는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이사야의 눈물 어린 사역에서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아하스 왕의 아들, 히스기야는 달랐습니다. 히스기야 6년에 앗수르가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킵니다. 북이스라엘의 멸망에는 아하스 왕의 공도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앗수르의 힘을 계속해서 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앗수르로부터 실익은 작았고, 오히려 자신의 동족인 북이스라엘을 패망케 하는 불의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나라 곳간이 텅 빈채로 히스기야는 나라를 이어받습니다. 국력을 채 정비하기도 전인 6년째 되던해에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멸망하게 합니다. 참 다행스러운 것은 처음부터 이사야 선지자가 히스기야와 함께 했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대로 산당을 제하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무너뜨렸습니다. 모세의 놋뱀을 쳐 부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이사야의 중보기도와 사역으로 성경 말씀은 히스기야 왕처럼 이스라엘 하나님을 의지하였던 왕은 그 전에도, 후에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컸습니다. 여호와께서 히스기야 왕과 함께 하셨으며, 어디를 가든지, 형통하게 하시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여호와만 섬길 뿐만 아니라 앗수르 왕을 배척하고, 섬기지 아니하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기에, 외세를 힘입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시기에 히스기야가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은 큰 힘을 부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배후에 하나님의 사람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이사야가 그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한동안 블레셋을 쳐서 나라의 땅을 좀 더 넓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600년간 중동의 패권을 차지했던 앗스르였습니다. 히스기야 14년 산헤립 왕이 정면으로 쳐 들어 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성이 빼앗기는 동안 침묵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나라 곳간에 금 30 달란트가 없어서 여호와의 곳간과 성전에서 은금을 벗겨내야 할 지경이었습니다. 다윗이 성전 건축을 위해서 금 100만 달란트를 준비했던 것을 기억한다면, 이 당시에 나라의 힘이 얼마나 약해 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앗수르 왕의 부하 랍사게가 대군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에워 싸고, 유다 방언으로 히스기야와 여호와를 조롱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건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말을 하는 히스기야를 믿지 말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힘으로 정면 대결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때때로 가장 극도의 상황까지 가도록 내버려 두실 때가 있습니다. 온갖 조롱과 비웃음에 마음이 녹아질 때까지 침묵하실 때가 있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을 가장 먼저 찾았습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청종하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으실 것을 알았습니다. 이사야를 통해서 하나님은 한 영을 보내서 앗수르 대군을 무너뜨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극도의 상황이 왔습니다. 눈앞에서 18 5천의 대군이 예루살렘을 에워 쌓습니다. 풍전등화였습니다. 히스기야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만을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개입하시면 한 순간입니다.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하루 밤 사이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진에서 군사 18 5천을 일순간에 쳐 버리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은 그렇습니다. 때로는 극도의 상황까지 가는 것처럼 보일때가 있지만,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나타납니다. 배후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나라의 Leader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어느 공동체든지, Leader가 어떠한 태도로 하나님께 나아 오느냐에 따라서 앞으로의 방향이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혼자서는 절대 못합니다. 히스기야와 같은 왕이 만들어지기 까지는 이사야의 눈물의 기도가 절대적이었습니다. 한나의 오랜 기도를 통해서 사무엘이 태어난 것과 같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된 히스기야였기에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 어떠한 갈등도 없이 하나님 중심으로 결단을 내릴 수가 있었습니다. 

이사야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오랜 기도는 반드시 응답이 있습니다. 아하스 왕의 범죄로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지만, 이사야의 사역과 중보를 통해서 유다의 영적인 분위기는 역전이 되었습니다.

아하스로 인해서 눈물 흘렸던 이사야는 히스기야를 통해서 웃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서 큰 보람이자, 열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