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덴의 실패가 에베소의 성공을 가져 왔습니다. (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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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전도 여행에서의 경험이 3차 전도 여행에서 에베소의 사역을 꽃피우게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2차 전도 여행을 안디옥에서 시작하기 전에 마가 때문에 바나바와 다투게 되었습니다. 마가가
구브로 섬을 전도 여행할 때 중도에 포기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보기에는 마가가 전도 여행에 준비가 안되어 있는
것 같고, 그의 마음 중심이 함께 하기에는 부족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일로 바나바와 결별하게
되었습니다. 2차 전도 여행을 떠나면서 실라를 택하여서 갑니다. 곧,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발탁해서 소아시아 지방의 에베소를 집중 변화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영이 사도 바울의 길을 막아 서셨습니다. 마게도냐의 사람이 "어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환상을 보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합니다.
조금의 지체도 없이 마게도냐로 갑니다. 그러나, 빌립보에서 기다리는 것은
환란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했는데 눈에 보이는 것은 고통스러운 상황이었습니다.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가지만, 핍박이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세번의 안식일 곧, 삼
주를 겨우 채운 채...곧 데살로니가를 떠나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환상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나는 듯 했습니다. 데살로니가를 급히 떠나면서 디모데를 남겨 둡니다. 실라와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서 아덴을 가는 중에 실라를 디모데에게 돌려 보내면서 디모데를 데려 오기를 부탁합니다. 홀로 남은 사도
바울은 아덴에서 이들을 기다리다가 아덴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에 분이 가득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과 변론을 시작합니다. 하나님을
전합니다. 그러나, 아덴의 사람들의 마음을 쉽게 열리지 않았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보자...네가 어떤 종교를 말하느냐?"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하나의 종교와
철학으로 평가 절하를 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아덴에서의 사역은 실패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 중, 사역을 하면서, 아덴처럼 교회가 세워지지 않는 곳도
드뭅니다. 아덴처럼 영혼들이 변화되지 않는 곳도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깊은
기도없이, 하나님의 인도 없이 영적인 충동으로 즉흥적으로 전도를 했기에 그런 결과가 나타났던 것 같습니다.
아덴을 거쳐서 고린도에 1년 6개월 머물면서 고린도 교회가 세워집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했던 교회였습니다.
마게도냐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의지해서 순종해서 왔지만, 그를 기다렸던 것은 빌립보의 감옥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의 핍박과 훼방이었습니다. 겨우 3주간 머물다가 떠나야 했습니다. 그러나, 디모데의 사역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아덴은 여전히 복음의 불모지였습니다. 아덴에서의 실패가 사도 바울에게는 큰 교훈이 돠었습니다. 사도 바울의 3차 전도 중에 그의 사역의 최고 전성기를 에베소에서 보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전초 기지는 두란노 서원이었습니다. 에베소는 아데미 신상을 숭배하는 도시로, 많은 수의 인구가 아데미 신상과 관련된 비즈니스로 먹고 살고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아덴처럼 우상 숭배로 유명한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의 실패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영적인 충동으로 사역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와 성령의 인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바울은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아데미 신상을 집중 공략하지 않았습니다. 아덴에서 우상 신전에서의 변론을 통해서 배웠던 교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복음이 깊이 스며들도록 우회적인 전략이 필요했습니다. 우상 전각을 무너뜨리기 위해서 애를 쓴 것이 아니라 에베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에 복음이 깊이 스며들도록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19:9-10)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즉흥적인 설교가 아니라 지속적인 강론을 영적인 전략으로 세우고 집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체계적으로 가르칩니다. 짧은 시간이 아니라 2년의 시간 동안 인내하며 계속합니다. 아덴에서 즉흥적인 설교로 공략했다가 열매를 크게 거두지 못했던 것을 벤치마킹합니다. 우상이 생활화된 도시에서는 체계적인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바울은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의 사역을 통해서, 에베소의 영적인 기류가 바뀌게 됩니다. 주술과 마술사들이 주님께 돌아옵니다. 귀신들린 자들과 질병 들린 자들이 바울의 손수건만 가져다가 얹어 놓으면 치유가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도시의 영적인 분위기를 붙잡고 있었던 아데미 신상의 세력이 약화되어 갔습니다. 이 우상과 관련된 비지니스를 하던 은장색인 데메드리오를 중심으로 폭동이 일어납니다. 바울을 대적해서 일어난 폭동이었습니다. 두란노 서원의 사역이 엄청난 영적인 역사를 일으켰던 것을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사도 바울은 폭동이 가라 앉은 후에 에베소를 떠나서 마게도냐로 가게 되지만, 에베소 교회의 찬란한 역사가 시작되는 시점이기도 했습니다.
아덴에서의 바울의 실패가 에베소에서 큰 성공을 가져 왔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일은 세심한 전략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일을 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예수 이름으로 정면 돌파하면 모든 것을 뚫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씀같지만, 아주 깊은 영분별력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귀가 붙잡고 있는 세상에 복음을 들고 가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방해와 역풍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2차 전도 여행에서 마게도냐를 여행하면서 아덴처럼 우상이 영적으로 지배하는 곳을 보기도 힘들었습니다. 이곳에서 디모데를 기다리다가 참지 못해서, 영적인 의분으로 아덴에서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과 변론했습니다. 기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충분한 상의가 없었습니다. 아덴의 많은 사람들의 반응은 냉랭했습니다. 무관심하거나,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는 수준이었습니다. 교회를 세우기는커녕 영혼의 변화가 크게 없었던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아덴 등, 각각의 도시마다 영적인 전략을 달리 해야 한 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은 이 부분을 놓고 하나님께 깊이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아덴에서 이러한 어려움이 3차 전도 여행에서 큰 교훈을 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실패를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배워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교훈 뿐만 아니라 육적인 지혜도 가르치실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실패를 통해서 두란노 서원과 같은 탁월한 전략을 허락하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일은 성령보다 앞서면 안됩니다. 아무리 좋은 계획이라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안됩니다. 성령께서 앞서 나가서야 합니다. 복음 전하는 일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일수록 하나님의 방법이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은혜로 사는 사람입니다. 기도 없는 은혜는 없습니다. 기도로 하나님의 뜻을 지속적으로 물어 보아야 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하는 것은 충동적인 것일 수 있습니다. 성령의 감동보다는 자신의 생각일 가능성이 큽니다. 기도가운데 생각을 가다듬어 주실 것입니다. 아덴에서 바울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함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에게는 거룩한 분노는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가지실 수 있는 감정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의분 때문에 조바심을 내고, 급한 마음에 하나님의 방법을 물어 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서둘러서 행동합니다. 때때로 아덴과 같은 현실이 많을 수 있지만, 배워야 할 교훈은 선한 것 조차도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아덴 후의 고린도 교회의 사역을 통해서 그의 사역의 전략이 훨씬 더 무르익게 됩니다. 곧 시작될 에베소 교회의 사역의 준비를 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절대로 서두르지 않습니다. 장기전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2년의 시간 동안 에베소 안의 많은 헬라인과 유대인이 주께로 돌아 오게 됩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의 눈물의 기도를 미리 심었던 곳이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사역을 마치고, 에베소를 통해서 안디옥으로 가는 동안에, 브리스 길라와 아굴라는 선발대로 남겨 두고 갑니다.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성령의 영적인 전략이었습니다. 또한, 이들의 중보 기도를 성령께서 먼저 받으셨습니다.
세번째, 혼자서는 안됩니다. 사도 바울 옆에는 늘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혼자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탁월한 사역자임에도 불구하고, 늘 하나님의 돕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를 통한 사역을 주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가는 곳마다 핍박이 많았지만, 동역자들이 함께 하였기에 넉넉하게 이겨 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서 소요로 인해서 바울이 급히 그 성을 떠나게 되면서 디모데를 남겨 두게 되고, 나중에 실라를 디모데에게 보내면서 바울은 홀로 아덴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하고, 늘 성령과 동행하던 바울이었지만, 혼자였던 바울은 아덴에서 흔들리는 충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영적으로 돕는 역할을 합니다. 지속적인 영적인 조율을 가져 옵니다. 그것이 영적인 교제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를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전도 여행 기간중에 계속해서 돕는 사람을 붙여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사역할때는 돕는 사역자가 가장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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