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합니다.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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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그 어떠한 절망도 희망으로 바꾸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남유다는 요시아 왕을 기점으로 나라가 급격하게 쇠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여호와 율법책을 발견해서 온 백성들에게 선포합니다. 유다 온 백성이 여호와 앞에 회개하면서 오직 여호와의 언약을 따르기로 순종을 결단합니다. 요시야가 사는 날 동안에 백성이 그 열조의 하나님을 따릅니다. 한 명의 헌신된 왕을 통한 하나님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이 위대한 왕의 헌신적인 순종에도 불구하고, 요시아는 애굽왕 느고와의 전쟁에서 죽게 됩니다. 무척 슬픈 일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전에 느고 왕을 통해서 이 전쟁을 막고자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요시야가 듣지 않았습니다. 결국 므깃도 전쟁에서 요시야는 애굽의 바로 느고와의 전쟁 때문에 죽게 됩니다. 이때의 남유다를 둘러싼 국제 정세는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남 유다의 히스기야 왕때 북 이스라엘을 멸망 시키고 남 유다로 진격했던 앗수르의 산헤립은 대군 18만 5천명을 데리고 왔지만, 히스기야와 이사야 선지자의 생명 건 기도로 인해서 하루 아침에 모두 전멸되게 됩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앗수르는 급격하게 세력이 약화되기 시작하고, 그 빈틈을 바벨론이 성장하면서 차지 하게 됩니다. 앗수르의 세력이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요시야 왕때 오면서 세력 균형이 깨어지면서 바벨론이 급속도로 부상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이스라엘 주변 국가 정세가 요동하면서 오랫동안 이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고자 했던 애굽이 다시 세력을 얻고자 애를 씁니다. 요시아 왕은 이러한 정세속에서 바벨론에 대항해서 갈그미스를 차지 하기 위해서 올라온 애굽의 군대 때문에 전사하게 되었습니다. 이 곳이 므깃도 입니다. 그리고, 바벨론과의 1차 갈그미스 전쟁에서 한동안 팽팽한 세력을 유지합니다. 무승부로 전쟁이 끝나서 다시 애굽으로 내려가는 느고는 요시야를 대신해서 왕이 된 여호아하스를 폐위시키고, 그 형제 여호와 김을 왕으로 세웠습니다. 그는 왕이 되자 애굽에게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번째 갈그미스 전쟁에서 바벨론이 승리하게 되면서 중동의 패권은 완전하게 바벨론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예루살렘으로 쳐 들어와서 다니엘과 세친구들, 그리고, 필요한 고급 인력들을 끌고 갑니다. 이때가 BC605의 1차 포로 시기입니다.
여호와 김은 완전하게 바벨론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시기였습니다. 이 시대의 선지자가 눈물의 선지자인 예레미야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나라를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하나님께서 바벨론에게 항복해야만 살 것이라는 메시지를 자신의 민족에게 전해야만 했습니다. 자신의 동포로부터 매국노라고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또한, 핍박과 환란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수많은 눈물과 중보기도로 엎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유다가 바벨론에 70년간 포로가 될 것이며, 70년 뒤에 포로 해방과 더불어 예루살렘으로 돌아 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여호와께 받습니다. 그가 원했던 것은 바벨론으로 부터의 해방과 승리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지자였기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했습니다. 외롭고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 여호와 김, 여호와 긴, 시드기야 왕을 거치면서 남 유다의 왕조는 문을 닫고 맙니다. 마지막의 격동기의 최중심지에 서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해야 했던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는 무척 고통스러운 눈물 속에서 하늘을 보고 울어야만 했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사람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말씀만 전하는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도 감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원수의 국가로부터 승리하고 싶은 것이 예레미야의 심정이었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때, 거짓 선지자 하나냐는 이년이 안되서 바벨론의 모든 포로들이 돌아 올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어 버릴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습니다. 누구보다도 그 말이 정확하게 맞았으면 하고 바랐던 이가 예레미야 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감정과 생각과 상관없이 그는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해야 했습니다.
“선지가 예레미야가 말하되, 아멘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 예언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집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곳으로 다시 옮겨 오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너는 이제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들으라…”(렘28:6-7)
지금 당장 임기응변으로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기 위해서 거짓의 예언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귀에 달콤한 이야기로 하나님보다 사람의 비위를 맞출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하나님의 축복이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의 말의 생명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뜻을 이 땅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예레미야는 누구보다 민족을 향한 달콤한 예언이 이루어지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생각이 아닌 한치 어긋남 없이 하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성령께서 기름부으신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입술에 담겨 지게 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 외에 의지하는 것에 대해서 정면 돌파하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은 바벨론의 세력이 점점 커져서 예루살렘을 짓밟자 많은 이들이 애굽으로 피신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전했는데도 백성들은 눈에 보이는 좋은 대로만 행동합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항복하는 자들은 살게 될 것이며, 70년 뒤에 포로 귀환 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하게 선포했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여러 번 에레미야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다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이 나올 때까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의 기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외에 의지하려고 하는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꾸짖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사명은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도록 무릎 꿓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그들에게 “너희가 만일 애굽에 들어가서 거기 거하기로 고집하면 너희의 두려워 하는 칼이 애굽 땅으로 들어가서 너희에게 미칠 것이요 너희의 두려워하는 기근이 애굽으로 급히 따라가서 너희에게 임하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렘42:15-16)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신의 방법대로 살려는 유다의 백성을 하나님이 결코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예레미야의 사명은 민족을 놓고 중보기도 하는 동시에, 백성들이 자신들의 눈에 보이는 대로 행동하는 것을 바로 잡는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애굽으로 피난 가는 것이 백성들의 눈에 그리 나빠 보이지 않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불순종이었고, 하나님이 결코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예레미야를 통해서 말씀 하셨습니다. 백성들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를 예레미야는 경고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 하게 될 때는 얼마가지 못해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무너져도 아주 비참하게 무너 질 수 있습니다. 여호와 만이 피난처이며, 산성이라는 사실을 선포하는 것이 중보 기도자입니다. 반면, 애굽이 아닌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 갔었던 사람은 70년 뒤에 분명히 해방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때가 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신실하게 이루어 지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사람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막연한 어렴풋한 희망이 아닙니다. 고난 뒤에 축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희망입니다. 비젼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해서 70년의 포로시간을 선포했지만, 해방과 회복에 대해서 아주 선명하게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냥 잘 될 것이라는 덕담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희망과 비젼을 선포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보는 관점이 다른 사람과 다릅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살아 있습니다. 절망스러운 상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이며, 사명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안됩니다. 성령께서 기름부어 주셔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서는 절망적인 시대적인 상황과 유대 포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지만, 미래지향적입니다. 소망과 희망을 끝없이 품게 만드는 선지서 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서를 보충하는 역할을 에스겔과 다니엘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신실한 미래지향적인 약속을 확인해 주는 역할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종말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마라나타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성경의 종말론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영원한 승리와 영생의 약속이 있습니다. 희망적인 종말론입니다. 하나님은 마지막 시간까지 희망을 놓지 않게 하십니다. 절망 속에서 비참한 시간을 보내더라도 희망을 노래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영혼을 낙담시키면 안됩니다. 말씀으로 책망을 하더라도, 하나님 앞에 돌아오도록 간절한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말라기 이후의 400년의 영적 암흑기의 시간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모든 벽을 깨뜨리셨습니다. 모든 어두움을 뚫고 일어서는 부활의 능력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절망을 일순간에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기쁨과 희망의 노래로 변화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부활을 노래 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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