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것만 같다구요? 누구 마음대로요? (158)
하나님를 의지하는 자는 반드시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완전히 무너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세상이 끝이 날 지라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붙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한번 말씀 하신 것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앞이 보이지 않고, 막막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십니다. 절대로 방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두 손을 다 놓고 계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도... 지나 놓고 보면, 얼마나 세심하게 인도하고 계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역시...하나님은 살아계셔!!" 하나님을 부르짖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믿음처럼 귀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을 의뢰하고 교제하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주고 싶어셔서 연단을 시키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장은 믿음이 있는 것처럼 보여도 결정적인 순간에 믿음이 없어서 넘어질 때가 많습니다. 결코 쓰러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는 순간에도 넘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습니다. 연약한 존재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스스로 믿음을 갖게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늘에서 선물로 주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과 기도의 교제를 통해서 얻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믿음이 생기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불확실한 환경을 통해서 믿음이 자라게 될 것입니다. 한치 앞이 도저히 보이지 않는 환경 속에서 어디로 갈지 모르지만, 지나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심하게 인도하셨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대해서 확실하게 고백할수 있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세밀하게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 일하고 계셨는지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 얻게 되는 최고의 축복은 "믿음"입니다. 정금보다도 소중합니다. 그 어떠한 것 보다 소중한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믿음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지 않고 25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이삭도 20년을 자녀를 달라고 부르짖어야 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의뢰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는 하나님의 경륜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때가 되면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됩니다. 분명한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만난 사람은 이러한 고백을 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욥이 그랬고...다윗이 그랬습니다. 연단도 극심했지만, 하나님께서 신원해 주시는 보상은 훨씬 더 컸습니다. 이들 손에는 정금같이 반짝이는 믿음이 깊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한결같이 죽을 것만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차라리 죽음이 더 나을뻔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 시간에는 죽을 수도 없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기 위해서 걷게 하는 길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살리기 위해서 걸어야만 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척 혹독하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멀리 계시는 것같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치 보좌에 앉아 계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이 고통받는 것을 즐기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욥과 다윗이 고통받을때... 이 길을 주님께서 친히 안아 주셨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안아 주실때... 좋고 평안한 일만 생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시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힘으로 도저히 걸을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안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러한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안아 주시는 손길의 은혜가 무척 클 것입니다.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습니다." 네...그렇습니다. 한 두가지 어려움이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눈 뜨면 쏟아지는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힘이 듭니다. 마음속에 깊이 스며 들어 있는 좌절과 낙심을 이기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무리 힘을 내려고 하지만, 엄두가 나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눈에 보이는 되는 것이 당장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한 두가지 힘든 시간이 아니라 인생의 총체적인 위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결코 죽을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이시기 위해서 연단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그 어떤 인물도 연단 속에서 죽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오히려 더 잘되었습니다. 인생의 후반전이 펼쳐 질때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의 축복이 훨씬 더 컸습니다.
지나 놓고 보면...알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에 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 말입니다. 다시 모든 것이 평안해 질때는 하나님의 손길이 그렇게 깊이 느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큰 위기와 고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허락하셔도 자신이 얻었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깊은 가치를 알게 될때,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이 때가 영적으로 가장 깊은 은혜의 시간입니다. 영적으로 쏟아 부어 주시는 시간입니다. 외로울 것입니다. 눈 뜨면 똑같은 시간이 반복될 것입니다. 감정의 Up and Down이 많은 시간일 것입니다. 마음이 단단했다가 부드러워졌다가 반복할 것입니다. 분노가 마음에 많이 올라 오게 될 것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렇습니다. 하나님도 역사하시지만, 마귀도 함께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깊이 들어갈때는 육적인 일은 Stop되다 시피 할 것입니다. 우리 생각에는 육적인 일로 하나님께 영광 들려 드리고 싶어합니다. 세상적인 출세와 성공, 무엇인가 이룬 일을 통해서, 물질을 통해서, 귀한 간증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려 드리고 싶어 합니다.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이런 저런 일을 하셨다고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보시기에 그 어떠한 일 보다 믿음의 고백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어느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보다 크고 소중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바칠때 아브라함은 홀로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혼자 였습니다. 아들을 칼로 잡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아브라함의 믿음을 크게 보셨고, 그 믿음의 반석 위에서 하나님의 성전이 지어졌습니다. 믿음의 조상이 되는 기초가 된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는 것은 하루 아침에 불가능합니다. 영혼에 깊이 스며드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혹독한 연단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시간에 영적인 축복의 가치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 모든 육적인 일이 중단되기도 할 것입니다. 되는 일보다 안되는 일이 더 많을수 있습니다. 순간 순간 올라 오는 고통을 통해서 영적으로 만들어 지기 때문입니다.
죽을 것만 같다구요? 누구 마음대로요? 이 시간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걷게 될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간절한 고백이 올라 올 정도로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더 편안한 시간일 수 있습니다. 살려 달라는 고백보다 죽고 싶다는 처절한 고백이 더 많은 기도를 차지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죽지 않을 것입니다. 죽을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연단을 이끄실때는 영적으로, 육적으로 살리시기 위한 목적이 함께 하십니다. 마귀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깨뜨리는 것같지만, 하나님께서 붙잡고 계시는 손이 훨씬 더 강하십니다. 하나님의 자신감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지 못할 환경은 만드시지 않습니다. 모든 환경...아무리 우리 생각에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 일어 날지라도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 안에서 허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실 것입니다. 갈등도 심하게 일어나지만, 그 때마다 이길수 있는 은혜와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 은혜로 이겨내는 것입니다. 절대 혼자가 아닙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아 계시지 않습니다. 이 시간...땅에 내려와서 고통받는 사람과 그 길을 함께 걷고 계십니다. 함께 걷지 않으시면 우리 힘으로 결코 넘어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머리털 하나 다치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잘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환경입니다. 다윗은 사울왕 때문에 쫒겨 다니면서 수많은 고통과 험난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다친 곳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가 훨씬 더 컸기 때문입니다. 30세에 왕이 될떄까지 혹독한 시간을 보냈지만, 다윗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은 모두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다윗에게는 크게 부어 주신 은혜가 함께 하셨습니다.
첫째, 사울 왕은 다윗을 죽일 수 없었습니다. 사울의 목적은 다윗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마귀가 그 악한 마음을 사울에게 넣어 주었습니다. 미친 사람처럼 다윗을 찾아 다녔습니다. 죽이려고 갖은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다윗이 바로 앞에 있을때 창을 던져서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께서 보호 하셨습니다. 다윗이 민첩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한 손이 보호 하셨기 때문입니다. 3000명 이상이 되는, 잘 훈련된 군사를 풀어서 다윗을 잡으려고 쫓아 다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별해 두신 곳에 다윗이 숨어 있었기 때문에 군사들은 다윗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다윗이 잘 매복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가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허용하지 않은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죽는냐, 사느냐...그리고 모든 인생의 문은 하나님의 손 안에 달려 있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잡으려고 했지만, 하나님은 결코 허용하지 않으셨습니다. 사울왕은 다윗 주위를 맴돌뿐이었습니다. 오히려 칼자루를 다윗에게 쥐어 주셔서 사울 왕의 옷을 밸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 만나는 주변의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붙이셔야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떼내어 버리시면 다시는 볼수 없습니다. 만나고 싶어도 만날수가 없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하는 것같지만, 하나님께서 경계선을 만들어 두십니다. 모든 인생에게 해당합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잡고자 하였지만, 하나님께서 사울 왕의 손에 다윗을 붙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는 마귀는 고통스러운 상황으로 죽이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완전히 넘어 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둘째, 다윗과 함께 한 사람들은 생존했습니다. 다윗이 사울왕을 피해서 들어간 아둘람 굴에는 400명 이상의 원통하고 억울한 사람, 억눌린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다윗이 혼자가 아니라서 기쁘기도 했을 것이지만, 이들 사람들이 매일 먹고 마시는 음식을 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들 모두가 피할 수 있는 은신처를 구하는 일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 어느 곳을 보아도 이들이 굶어 죽거나, 필요한 것이 공급되지 않아서 실족한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이들은 오히려 다윗이 왕이 되었을때 나라의 기초를 쌓는 역할을 함께 했습니다. 이들이 쫓겨 다닐때... 필요한 모든 것에서 인간적인 계산이 맞지 않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들 모두...먹고 사는 문제로 고통 받았어야 했습니다. 생활에 안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굶어 죽었던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아 주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사람은 반드시 건지십니다. 이들이 먹고 사는 문제에 몰두했더라면 약탈을 했어야만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다른 백성들을 보호 해 주고, 감싸 안았습니다. 하나님의 계산과 방법으로 이들을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른비와 늦은비로 먹이고 입히셨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일순간, 먹고 사는 생활의 문제로 고통 받을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지십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이라면 이러한 위기를 하나님께서 동행하심으로 넉넉하게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어떻게 하면 기쁘시게 해 드릴까 고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하면 이루어 드릴까 고민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고민하는 사람들입니다.
셋째, 이방인에게 조차 은총을 받게 하셨습니다. 다윗은 사울왕을 피해서 블레셋으로 피했습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다윗을 죽였을지 모르겠습니다. 블레셋의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블레셋의 방백들 또한 다윗을 무척 싫어합니다. 신뢰하지 않습니다. 위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그 순간에 하나님은 블레셋의 왕 아기스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십니다. 다윗에게 은총을 베풀게 하십니다. 사울왕은 다윗을 미워 하되 블레셋의 아기스 왕은 다윗을 아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원수에게 조차도 은총을 받게 만드십니다. 내우외환의 위기에 항상 처했던 다윗이었습니다. 머리 둘 곳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경내에는 사울 왕이...이스라엘 밖에는 이방인들이 원수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컸습니다. 어디를 가나 은총이 머물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원수라 할지라도 마음을 녹이시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의 원수에게서 은총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죽고 싶다고 마음대로 죽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 하실때는 위기의 상황이라고 할지라도 평안합니다. 모든 것이 분명하게 보일때, 그때서야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위기를 넉넉하게 이겨서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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