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Weekly칼럼(151-174)

세.가.지. 유형의 믿음의 사람 (160)

Joseph Lee 목사 2013. 11. 3. 13:49

세.가.지. 유형의 믿음의 사람 (16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골4:10)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4:14) 

<josephlee0212@gmail.com

 

얼마든지 넘어 질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 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에서 아무리 은혜가 넘치는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넘어 지는 것은 한 순간 일수 있습니다. 그 시간을 통해서 겸손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화의 과정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인생의 계획이 함께 하십니다. 소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양자로 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윤리적인, 도적적인 형상이 우리 안에서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로 다시 회복되도록 하십니다. 오직 믿음으로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서 의롭다고 칭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택하신 영혼들이 한명도 낙오되지 않도록 성령께서 꼭 붙잡아 주십니다. 부르신 성도에게 주시는 특별한 견인의 은혜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개입하시도록 하는 것같지만, 이 조차도 성령께서 큰 은혜를 주시기에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제목을 우리에게 감동을 주셔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택하신 영혼을 거룩하게 만드시는 거룩한 과정. 성화의 시간에도 얼마든지 넘어 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시간은 이 세상에 주어진 시간을 마무리 하기 바로 직전의 모습입니다. 아무리 평생을 하나님앞에서 열심히 살았다고 할지라도, 마지막 하나님께 가기 이전의 시간의 믿음의 고백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세 사람들... 마가. 디모데. 데마를 통해서 이들의 인생의 처음과 끝의 모습이 어떠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삶의 고백은?

 

마가. "보라 너희가 성내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의 들어가는 집으로 따라 들어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이 네게 하는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그리하면 저가 자리를 베푼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예비하라 하신대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눅22:10-13) 

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대부분 마가라고 봅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계실때 마지막 유월절의 만찬을 보내신 곳이 마가의 다락방이라고 봅니다. 이 곳에서 마가와 그의 어머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위한 마지막 시간을 예비하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주님이 하셨던 모든 일을 목격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은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120명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실 성령님을 간절하게 사모하며 기도하는 곳입니다. 오순절에 성령께서 급하고 강한 바람으로, 불의 혀처럼 각자에게 임하십니다. 성령께서 이 땅에 오실때 마가의 다락방에서 강하게 임하셨습니다. 성령 강림이었습니다. 이 모든 이적과 기적을 목격한 사람이 바로 마가입니다. 그의 집과 다락방은 복음의 전초기지로 사용되게 됩니다. 초대 교회가 태동한 곳을 이 마가의 다락방으로 보면 될 듯 합니다. 이 마가의 다락방의 초대 교회사에 베드로를 포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마가도 친분이 두터웠습니다. 행 12에서 헤롯이 사도 야고보를 칼로 잡고, 베드로를 옥에 가둬 둡니다. 그 밤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베드로를 옥에서 꺼내어 주십니다. 그리고, 옥에서 나온 베드로가 찾아 간 곳이 마가의 집입니다.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라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행12:12)

 

이처럼 마가는 예루살렘의 초대 교회뿐만 아니라 사도들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삼촌 바나바를 따라서 안디옥으로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다메섹에서 회심했던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고, 이 들이 모두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의 1차 전도 여행입니다. 구브로 섬을 통해서 루스드라와 이고니온, 더베를 돌아서 오는 여정이었습니다. 마가는 이 여정에서 중간에 포기하게 됩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수 이름을 전하는데 수많은 핍박과 고통이 오는 것을 보고, 자신이 생각했던 성령의 사역과 너무 달라서 고통 스러울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과 더불어 성령의 역사로 찬란한 시간을 보낼 것만 같았던 선교 여정이 말할수 없는 고통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머리 속에 있었던 유대주의가 큰 방해였을 수 있습니다. 유대 선민 사상이 아직 문제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생각하기에 유대인에게만 전해야 할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방인에게 전파되는 것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불만을 가졌을 수 있습니다. 그 어떠한 이유에서든, 마가는 1차 전도 여행 중간에 포기해 버렸습니다. 이 마가 때문에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기 이전에 바울과 바나바가 헤어지게 됩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였지만,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중요한 issue였습니다. 그러나, 그 마가는 결국 돌아 옵니다.

 

마가가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인생의 길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더라도, 마가처럼 중간에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 도 있을 것입니다. 이해 되지 않는 일을 경험하게 되면서 혼란스러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가는 다시 돌아 오게 됩니다. 사도 바울에게 아주 필요한, 요긴한 사람이 되게 됩니다.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골4:10)

 

 

 

 

 사도 바울의 1-3차 전도 여행을 다녀 온 후, 바울른 예루살렘에서 로마로 압송되게 됩니다. 그리고, 2년 정도 로마에서 옥에 갇혀서 지내게 됩니다. 이 때 쓰여진 옥중 서신중의 하나인 골로새서에서 마가에 대해서 골로새 교회에 영접하라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이 중간의 마가의 행적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깊어 지고, 뜨거워 졌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의 사역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쓰러 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은혜 넘치는 시간을 보냈더라도, 중간에 포기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사도 바울 뿐만 아니라 베드로도 무척 아꼈던 사람이었습니다. 훗날, 베드로에게서 들었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말씀들을 종합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마가 복음을 기록하게 됩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얼마든지 쓰러질수 있습니다.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그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서 다시 돌이켜 주실 것입니다. 오히려 더 잘 되게 될 것입니다.  마가가 우리의 story가 되게 될 것입니다.

 

디모데. "바울이 더베와 루스드라에도 이르매 거기 디모데라 하는 제자가 있으니 그 모친은 믿는 유대 여자요 부친은 헬라인이라 디모데는 루스드라와 이고니온에 있는 형제들에게 칭찬 받는 자이 바울이 그를 데리고 떠나고자 할쌔"(행16:1-3)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을 떠나게 될때, 마가를 데리고 가는 문제로 인해서 바나바와 헤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실라를 택하여서 2차 전도 여행을 떠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쪽 문이 닫히게 되면, 또 다른 문을 예비 해 놓고 계십니다. 2차 전도 여행을 떠난지 얼마 되지 않는 곳인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성령의 감동에 의해서 디모데를 택해서 전도 여행을 함께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간부터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 여행을 하게 됩니다. 2차 전도 여행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마게도냐로 급히 떠나게 됩니다. 전도 여정의 방향이 소아시아에서 마게도냐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빌립보를 거쳐서 데살로니가로 가게 됩니다. 데살로니가에 있다가 유대인의 훼방으로 인해서  3주 정도 밖에 사역을 못하고 디모데를 혼자 놔 두고 아덴을 거쳐서 고린도로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디모데의 사역으로 데살로니가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 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디모데를 다시 만나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서신을 보내게 됩니다. 디모데의 순종과 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이 서신이 데살로니가 서신입니다. 그리고, 3차 전도 여행에서도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함께 하게 되었습니다. 옥중 서신을 보내게 될때도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함께 하게 됩니다. 흔들림이 없습니다. 마음 중심이 늘 진실하고, 견고했습니다. 로마의 옥에서 풀려 났을때, 사도 바울의 4차 전도 여행이 시작됩니다. 이 시간에 디도는 그레데 섬에, 디모데는 에베소 교회에 보내져서 목회를 하게 됩니다. 디모데 전서는 이 때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던 디모데에게 보내진 목회 서신입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치 말게 하여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딤전1:3-5)

 

옥에서 풀려나자 마자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에베소로 파송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주님 뜻대로 에베소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 나갑니다. 초대 교회에 에베소 교회의 전성기를 가져 올 수 있었던 것은 사도 바울의 눈물과 복음의 큰 수고가 있어서 가능했습니다. 또한, 그 뒤를 이어서 디모데 또한 에베소 교회를 눈물로 헌신하게 됩니다. 그 영적 아버지의 영적인 아들입니다. 끝까지 그 마음이 변함이 없습니다. 4차 전도 여행 중에 네로 황제가 로마의 대화재를 일으키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을 사도 바울과 그리스도인에게 돌리게 됩니다. 이때, 사도 바울의 혹독한 감옥 생활이 시작되고, 순교를 바로 눈앞에 두게 됩니다. 이 시간에 디모데 후서를 에베소에 있는 아들 디모데에게 보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제 자신의 사역이 마무리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디모데의 사역을 격려하기 위해서, 주의 군사로서 조금도 흔들리지 않도록 권면하기 위해서 서신을 보냈습니다. 디모데 후서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간에 아들을 한번이라도 더 보고 싶었습니다. 그도 사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한번 더 만나고 싶어했습니다. 그의 이름이 디모데였습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 으불로와 부데와 리노와 글라우디아와 모든 형제가 다 네게 문안하느니라" (딤후4:21) 디모데는 사도 바울의 고난과 늘 함께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외에는 그 어떠한 영화도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지나칠 정도로 고단했지만, 디모데는 늘 한결같았습니다. 오늘과 같은 환경에서 사는 우리들에게 가장 Role Model이 되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처음과 끝이 같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주님 보시기에게 가장 아름다운 향기나는 유형의 사람일 것입니다.

 

데마.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골4:14)

데마가 언제부터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에 합류했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로마 감옥에 갇혔을때 옆에 있었던 사람 중에 데마가 함께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어떤 것인지 잘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데마는 이 후로 사도 바울을 떠날 뿐만 아니라 세상을 쫓아서 도망 가버립니다. 그 곳이 데살로니가 였습니다. 세상적으로 가장 화려한 곳 중의 하나였습니다.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딤후4:10)

처음부터 하나님을 몰랐으면 괜찮았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 한 사람이 되었고, 하나님의 살아계신 영광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보다 세상을 선택해서 데살로니가로 떠나게 됩니다. 예수께는 가롯 유다가 그런 사람이었고, 사도 바울에게는 데마가 그런 사람입니다. 

 

세 사람을 예로 들었습니다. 처음과 끝이 한결 같았던 디모데, 오히려 그의 마지막 시간을 주님에 대한 열정으로 더 불태웠던 디모데... 처음에 경험한 주님의 영광을 끝까지 지키지 못해서, 중간에 낙오했지만, 결국 그의 인생을 주님께 다시 올려 드린 마가의 삶... 그리스도의 살아 계신 영광과 남은 고난도 깊이 경험했지만, 스스로 중간에서 포기해 버린...그리고, 세상으로 떠나 버린 데마... 바로 우리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마가와 디모데와 같은 삶과 인생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 영혼도 데마처럼 세상으로 떠나는 삶을 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