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보다 하나님 앞에서 빛나는 보석은 없습니다. (159)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것이 아니니라"(히1:1-3)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가장 보고 싶어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현실의 세계는 영적인 세계에서 Control이 됩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하나님이 손에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이루어진 결정은 어느 순간에 현실이 되어서 우리에게 보여 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허용없이 이루어 지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이루어 지는 일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서 승낙된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어떠한 일이든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욥의 고난과 환란을 기억합니다. 그 고난 가운데,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시간을 지나면서 무엇보다 정금같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됩니다.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이 욥기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고난후에 하나님의 시간이 되었을때, 하나님께서 욥을 그 모든 고난에서 신원해 주시고, 보상해 주시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다시피 욥의 고난은 천상의 회의에서 시작하고 있음을 볼수 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장면일수 있지만, 우리는 말씀 그대로를 받아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욥을 참소하는 모습. 그리고, 어찌 까닭없이 하나님을 섬기겠느냐고 욥을 공격하는 마귀의 모습에 하나님께서는 욥의 믿음을 Test하시기로 결정하십니다. 그리고, 어느 부분까지 마귀가 공격할 수 있을지 그 Boundary를 정해 주십니다. 처음에는 욥의 소유물만 건드리게 했습니다. 그 부분만으로 마귀가 욥의 믿음을 무너 뜨릴수 없게 되자, 하나님의 허용 아래에서 욥의 건강을 건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보기에는 정당한 일이 아닌것 처럼 보입니다. 욥이 억울하게 고난을 당하는 것 같기에 더 이해하기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에게 허락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욥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싶으셔서 택한 하나님의 특별한 도구 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러한 욥의 고난이 그대로 해당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이 세상에 순전한 믿음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그리고, 오늘 날 우리에게. 또한, 영적인 세계의 천사들과 마귀들에게... 하나님은 욥을 통해서 믿음만큼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습니다. 아무나 그런 사명을 감당하기 힘듭니다. 물론, 하나님의 부어 주시는 은혜가 훨씬 크기에 가능한 것이지만, 욥은 이러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특별히 택한 사람인 것은 분명합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현실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세계에서 어떻게 하실지 결정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넘어서는 천상의 회의에서 마귀가 계속적으로 우리를 참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공격하도록 허용해 달라고 매달리고 있으며, 범위를 정해 달라고 하나님을 조르고 있습니다. 하나님도 그러한 마귀의 공격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아프실지 잘 알고 계시면서, 정금같은 믿음을 주고 싶으셔서 허용하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길을 함께 걸어 주실것이기에 넉넉히 감당 할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이 시간에 성령께서 이루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기도 해 주시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서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욥에게 했던 마귀의 참소가 이 시간에도 계속 되고 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무저갱으로, 지옥으로 끌고 가고 싶어하는 마귀이기에 하나님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시기, 질투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땅의 공중 권세 잡은 자로서 이러한 참소는 계속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 말입니다.
한 영혼을 어떻게 공격하면 가장 아파하는지... 늘 연구하는 마귀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 시킬수 있을까... 늘 고민하는 마귀입니다. 그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지금도 우리를 조롱하면서 참소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둔감합니다. 하나님의 보호 하심을 지식으로는 잘 알고 있지만, 영적인 세계에 대해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알수 없고, 또한, 관심 조차 없을때가 많습니다. 욥에게 일어났던 천상의 회의를 신화처럼 생각하는 부분이 있지만, 지금도 일어나고 있는 영적 세계의 현실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지만, 마귀는 끊임없이 하나님 앞에서 참소하고 있습니다.
모든 결정권은 절대적으로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십니다. 마귀가 자신 마음대로 발악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섬세하고, 깊은 마음이 함께 하시기에, 어디 까지만 괴롭게 하실 수 있을지 정해 주십니다. 그리고, 모든 문들이 막혀 있다고 할지라도, 하늘 문은 항상 열어 두십니다. 인생의 문들이 닫혀 있는 순간 만큼, 하늘문이 강하게 열려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공격을 허용하실때, 하나님의 보좌에 편안하게 앉아 계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 받는 영혼들에게 내려 오셔서 그 길을 함께 걸어 주십니다. 마귀가 공격할때, 하나님이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십니다. 실제로 맞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보다도 더 심한 고통을 이 시간에 실제로 겪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모든 어려움과 시험을 넉넉하게 넘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가 현실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적 세계의 모든 결정은 현실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공격에 마냥 손을 놓고 있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깁니다. 사람의 힘과 완력으로는 보이지 않는 마귀를 대상으로 싸우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현실에 살고 있는 우리가 영적 세계에 영향을 미칠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습니다. 그 연결 통로가 기도입니다. 가장 미련해 보이는 것 같은 수단인 기도가 영적인 세계를 강력하게 움직일 수 있는 수단입니다. 금식과 기도 외에는 이러한 능력이 나타날 수 있는 수단이 없습니다. 금식은 곡기를 끊는 기도입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침묵 기도는 깊은 영의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는 영과 육이 함께 하는 기도입니다. 사탄이 참소할때, 공격할 수 있도록 허용하시는 이유는 우리의 믿음의 성장입니다. 영적인 성숙입니다. 영적인 깊이입니다. 말씀과 기도가 더 깊어지도록 원하시는 하나님의 소원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수준과 시간에 도달하면, 자동으로 모든 문제들이 풀어 지게 될 것입니다.
현실의 영역에서 영적인 세계의 마귀를 묶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시간까지는 끌고 가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수준이 될때까지는 이 길을 걸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오늘 우리는... 예수 이름의 권세와 권능을 힘입어서 참소하는 마귀를 묶을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인 특권입니다. 마귀의 참소를 영적인 성숙을 위해서 허용하시지만, 하나님도 싫어하십니다. 사랑하는 영혼이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사랑하는 영혼이 주의 이름으로 간절하게 기도할때, 그러한 참소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마귀를 기꺼이 묶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당하고 있으면 안됩니다. 기도할때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입니다. 뜨거운 기도를 올려 드리는 만큼, 더 강력한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경배와 예배, 기도의 모든 핵심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행하시는 것이 정금 같은 믿음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하늘 문을 여는 가장 중요한 Key입니다.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입니다. 믿음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수 있는 수단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없는 기도에는 능력이 없다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신뢰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많은 것을 허락하십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믿음의 모습으로 자라날때 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는 아들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아들보다도 믿음을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 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오랜 시간을 기다리셨습니다. 그 시간... 아브라함은 무척 지쳐만 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응답은 보이지 않고, 길고 긴 터널의 시간만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인격과 성품이 주님 손에 의해서 다듬어 지고 있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무척 긴 시간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이 시간에 그 어떠한 것으로도 살수 없는 믿음을 주고 계셨습니다. 그 믿음에 대한 Test가 모리아 산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모리아 산에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하나님만 함께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없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은 전적으로 망설임없이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을 칼로 잡으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하여 믿음을 확인하게 되십니다. 아브라함 안에서 가장 빛이 나는 하나님의 보석인 믿음을 보게 되십니다. 이 세상 사람 어느 누가 몰라 주어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과 행동 위에서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수양을 준비하셨지만, 결국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진정한 독생자의 죽음은 이삭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대신에 독생자를 잡으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아브라함의 믿음 위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몇가지 나누고 싶은 원리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 앞에서 얼마든지 믿음이 있는 것 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보이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경건하거나, 거룩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속일수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있어 보이는 것같지만, 어느 순간에 생각지 못하게 쓰러지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Test하실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고 싶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Test하지 않으셔도 이미 다 아시겠지만, 그 Test를 통해서, 우리의 모습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보여 주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이러한 Test를 통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칭찬하는 눈에 보이는 가식적인 믿음이 아닌... 아무도 몰라 주더라도 하나님만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믿음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의 길은 외로운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믿음으로 다듬어 지는데는 하나님과 홀로 외롭게 오랜 시간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요구하실때는 다른 사람...어느 누구도 이해할수 없는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혼자 남을 수 밖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는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보석과 같은 믿음이 중요합니다. 하늘에서 주셔야만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믿음을 Test하실때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욥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Test해 보고 싶으셨습니다. 현실에서의 결과는 너무나 엄청났습니다. 온 가족이 부서지고, 재산과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을 주셨지만, 욥의 마음 중심과 입술에서 흘러 나오는 믿음의 고백에 기뻐하셨습니다.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욥이 고난을 받았는지 알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신원하실 때까지 욥은 견디어야 했습니다. 그의 고백처럼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정금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은 욥의 믿음의 고백을 무척 기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모든 것을 다 잃더라도 절대로 놓칠수가 없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보석이기에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을 Test하실때...아브라함에게 모리아 산으로 올라 가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믿음의 Test Field였습니다. 독생자 이삭을 잡으라는 명령에 깊은 갈등이 있었겠지만, 입술을 조심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욥과 아브라함을 Test하실때는 결코 쉽지 아니했지만, 하나님께서 그 보석과 같은 믿음을 손에 쥐어주시고는 모든 것을 인정하시고, 회복하셨습니다.
셋째,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뿐입니다.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믿음의 연단의 시간을 지나게 되는데, 그 중심된 믿음을 보시고, 모두를 인정하시게 됩니다. 비록 실수로 쓰러질수 있을 지라도, 믿음으로 일어나는 그 모습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선교를 꿈을 꾸고, 많은 것을 드리고 싶어하지만, 중요한 것은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믿음 없이 자기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서, 또는 자기 만족을 위해서, 단순한 선행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할수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행동이라도 마음 속 깊은 곳에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행위를 절대로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어떤 동기에서 행동을 하는 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믿음 없이 하는 모든 것은 헛된 것입니다. 아무리 기도를 오래 해도, 믿음이 없으면, 단순한 자기 만족 때문이거나, 자기 열심일 수 있습니다. 고행일 뿐입니다. 그러나, 신뢰와 믿음을 가지고 드려진 기도는 짧은 시간 기도를 해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믿음은 짧은 시간이라도 하나님께 정확하게 Focus가 맞춰지게 될 것입니다.
네째, 믿음의 결과는 생각을 뛰어 넘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하게 드려진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엄청 납니다. 그러한 믿음 앞에서 영적인 세계에서 참소하던 마귀는 힘없이 묶여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마귀의 공격을 허용하셨던 하나님은 그 마귀의 공격하는 손을 멈추게 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손을 드실 것입니다. 회복하십니다. 영적인 수많은 능력과 원리가 보석같이 인생에 새겨 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육적인 모든 일들도 순식간에 회복되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기도 중에서 가장 구해야 할 것이 믿음입니다. 말씀 그대로 입니다. 믿음없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찾는 자들에게는 큰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믿음에 대한 수많은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응답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가장 큰 조건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강하게 Touch하며, 감동하시게 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때 마다 믿음이 더 자라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선물 중의 하나는 평안과 담대함입니다. 결국은 믿음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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