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하나님은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86)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48

 

 

하나님은 최선의 방법을 가지고 계신다. (86)

"나는 시온의 의가 빛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이방 나라들이 네 공의를, 뭇 왕이 다 네 영광을 볼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컴음이 될것이며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것이라...."(사62:1-3)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이 좁아서 질투하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섬기는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노예처럼 자유가 없이 하나님만 바라보는 숨막히는 삶을 살아라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그만큼 영혼들을 사랑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하나님의 질투는 실제적입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삶속에서 강렬한 하나님의 열심과 의지로 다가올때가 많습니다. 이미 자신의 독생자 아들을 아낌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내어 주셨습니다. 영광의 자리가 아니라 죽음의 십자가를 친히 지게 하셨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었습니다. 지극히 큰 사랑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던져 버리셨습니다. 그것도 모든 인생의 죄의 저주를 짊어 지게 하셨습니다. 더 이상 할수 없을 정도의 처절한 죄의 저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도 고통스러우셨겠지만, 인류를 향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해서 다른 대안이 없으셨습니다. 그 대안이 결국 하나님이시며, 하나 밖에 없는 아들 예수의 희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놀라운 길을 제시하셨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명되는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며,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신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은 구원을 이미 얻었습니다. 그리고, 삶속에서 주님과 함께 그 이미 얻은 구원을 누리며, 구원을 이루어 나갑니다. 성화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가는것 또한 구원이며 영생입니다. 그 모든 것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우리 머리로는 도저히 헤아릴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영적인 축복이며, 영생의 길입니다. 영원에 대한 축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은혜를 잊고 살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어떠한 희생으로 영혼들을 사랑하셨는지 잘 알고 계십니다.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 영혼들이 은혜를 잊어 버리거나, 하나님을 떠나서 다시 옛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할때 어떻게 그 영혼을 이끄셔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계십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은 절대로 구원받은 영혼을 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 불가능은 없지만, 구원받은 사람을 포기 할수 없는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가능이십니다. 그리고, 구원받은 영혼을 질투하시기 까지 사랑하고 또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이 영혼을 인도하시는 동기도 바로 사랑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늘 주님앞에 변덕스럽습니다. 마음내킬때 주님앞에 다가갔다가 아니면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특히 문제가 있을때 하나님을 더 많이 찾습니다. 그런 우리이지만, 하나님은 한번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보다도 하나님께서 더 사랑에 목말라하시는것 같습니다. 정녕 우리가 그래야 하는 존재인데도 말입니다.

 

우리 기도의 많은 부분이 간구입니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기도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것 같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것 보다 실제로는 자신과 관련된 장래와 진로에 대한 제목일때가 많습니다. 어려움에 있을때 "하나님 언제까지 제 문제로만 기도해야 합니까? 이제부터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게 해 주세요..." 그런 고백을 해 보지만, 문제가 해결되었을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눈물로 중보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기도와 헌신은 자신의 삶에 깊은 응답이 있을때 그때서야 시작하겠다고 마음속에 다짐을 할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우리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것을요...

예배때 말씀을 통해서 감격스러운 시간을 보낼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다시 일상 생활속으로 들어갑니다. 무슨 일이 잘 안될때는 회개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하나님 나라보다 자신의 세계에 대한 집착이 훨씬 컸음을 회개해 보지만,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할지 막막할때가 있습니다. 교회 잘 나가면 되겠지...교회에서 봉사하면 되겠지...착한 일 하면 되겠지...그 정도의 수준에 머무를때가 많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얻었다고 하지만, 다른 영혼에게 그 복음을 설명하기가 힘듭니다. 어려움을 느낍니다. 많은 사람들의 동일한 고백일때가 많습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제자 훈련과 교회의 여러 프로그램을 통해서 배우지만 때로는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가 어려울때가 많습니다.

 

다행스러운것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살수 없는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독생자 아들을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께서 어떠한 대가로 인류를 위해서 희생하셨는데 그렇게 큰 은혜가 쉽게 묻히는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여기서부터 시작이 됩니다. 아들의 희생을 절대로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한 하나님의 열정과 열심이 시작됩니다. 용광로보다도 뜨겁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을 절대로 그냥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이 있는 영혼들을 가만히 두시지 않습니다. 자라게 하십니다. 키우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은 한시도 잠잠히 계시지 않습니다. 일하십니다. 맹렬하십니다.

하나님도 수많은 자원으로 투자하십니다. 거듭난 영혼이 자라서 하나님의 동역자로 설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 속도와 열정이 우리의 생각의 범위를 뛰어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겪게 하시는 훈련도 하나님께서 질투하시기 때문입니다.

독생자를 주셔서 피 흘리기까지 사랑하셨던 하나님이시기에, 그 아들의 희생과 죽음을 결코 헛되게 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강렬한 열심도 하나님의 질투와 연관이 있습니다. 뜨겁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사람은 견딜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매인자가 됩니다. 하나님께 미친자가 됩니다. 하나님 밖에 모르는 영혼이 됩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그 안에서 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질투때문에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열정이 불타기게 영혼들만 봐도 견딜수가 없게 됩니다. 무엇을 해도 오직 예수 생각입니다. 어디를 가도 예수와 동행하고 싶어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의 개념으로 다가오는것이 아닙니다. 그 정도의 수준이 아닙니다. 그것은 율법입니다. 기계처럼 순종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전인격적으로 하나님으로 채워 넣고 싶으신것이 하나님의 질투이십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노예가 되어서, 고지식하게 하나 밖에 모르는 인생을 살라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닙니다. 고리타분하게 살며, 세상과 동떨어져서 담을 쌓고 살라는 이야기는 더 더욱 아닙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구원받은 영혼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인생의 목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무엇을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것이 인생의 목적이며, 하나님의 계획이라는것을 선명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은 답답하게 생각할것이며, 숨막히는 인생이라고 느껴질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센스와 웃음이 넘칩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무슨 대화를 해도 하나님안에서 합리적이며, 상당한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어디를 가도 존중과 선대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렇게 만드십니다.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면에 자유롭습니다. 생각이 열려 있습니다.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합니다... 너무 많은 좋은 점들을 우리에게 허용하십니다. 그 분이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가운데 중요한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인격적으로 대하신다는것입니다. 강압적이고 독선적이지 않으십니다. 무섭게 억압하는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섬세하고 따뜻하고 온유하게 대하십니다.

그분의 성품이십니다. 사랑으로 치유하시면서 그 생각의 깊이를 도저히 헤아릴수 없습니다.

그러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이 내린 인격적인 결정,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자신의 생각과 의지의 결단을 즐거워 하십니다. 견디지를 못하십니다. 이 시간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십니다.

그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도우십니다. 하나님의 질투와 열심은 모든 환경과 여건, 여러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깊이 만나도록 도우십니다. 일상 생활에서 사용할수 있는 모든 자원과 재료를 사용하셔서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이 나타나도록 이끄십니다. 인격적인 의지가 하나님쪽으로 향하도록 도우시지만, 절대로 강요와 억압이 아닙니다.  그러한 하나님께 스스로 엎드려서 하나님 앞에 깊이 나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지경과 인생의 길을 열어 주실때가 많습니다. 그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온 마음을 드리는 사람에게 더 많은 길을 열어 주십니다. 그 전에 하나님께서도 저울질하시며, 과연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시험하실때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손에 쥐어 주시는 응답을 주셔도 과연 잘 감당할 수 있을지 자로 재어 보실때도 있을것입니다. 만일 그 응답에 취해버려서 교만해 진다면 하나님의 대적이 될수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하시지 않거나 오래 훈련하시며 기다리시는 이유도 바로 그렇습니다.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응답과 열매에 취해서 넘어진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럴때 마다 하나님께서는 수 많은 기회를 주셔서 돌이키실 시간을 많이 주셨습니다. 쉽게 돌아 오는 사람도 있었지만, 하나님의 깊은 손길이 필요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시기에 독생자를 주셨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영혼들에게 영육간의 축복을 아낌없이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축복을 다스리지 못하고, 정복하지 못할때는 하나님의 대적이 될수 있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적이 된다는것은 하나님보다 다른것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등한시하는 경우입니다. 그럴때 하나님은 교만하다고 판단하실것입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꼭 다른 종교만이 우상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 자녀들, 사업체, 물질, 하는 모든 일들...심지어 사역까지도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우선 순위가 잘못될때는 모든것이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기도하는것 조차도 우상이 될수 있습니다.

 

다행스러운것은 하나님의 열심이 진노로만 나타나는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기회를 자녀들에게 주십니다. 때로는 침묵하십니다. 인격적으로 돌이키기를 원하셔서 그렇습니다. 또, 기다리십니다.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가르치시길 기뻐하십니다. 수많은 사역자들을 보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사랑과 온유함으로 먼저 만져 주십니다. 그리고 기다려 주십니다.

하나님의 질투가 사랑으로 승화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상에 내어 놓기 전에 하나님은 훈련속에 다듬고 또 다듬어 주십니다. 세상에서 무슨 일을 맡겨도 믿을수 있는 수준의 사람으로 만드시기 원해서 계속 묶어 두고 훈련시키십니다. 그 사람은 죽을 지경입니다. 그 당시에는 힘들어서 비명을 지릅니다. 또한, 훗날 사탄과 어두움의 공격이 극심할수 있기에 미리 준비시키십니다. 잘못하면 더 큰 환란속에 넘어 질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한가지 두려움이 있다면 하나님을 사모하는 영혼이 하나님을 떠나는것일것입니다. 하나님이 못 견디시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마음 아파서 통곡하는 시간입니다. 진정한 구원이 은혜로 주어 졌다면 아주 넘어지지는 않을것입니다. 하나님의 두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많은 부분을 열어 주셔서 세상에 내어 놓았을때 과연 그 축복에 취하지 않을지, 그러한 축복 속에서 넘어 지지 않을지 하나님께서도 두려워 하십니다.

너무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연단 기간에는 사람이 할수 있는 분량조차 묶어 두셔서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로 만들어 버리시기도 하십니다. 마음속 깊이 자신이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라는것을 깨닫고 새기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훈련의 목적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하나님을 마음에 깊이 새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이 인생의 전부로 생활화 되고 중심을 차지하도록 돕는 시간이 바로 훈련입니다.

성령께서 모든것을 주관하십니다. 앞길을 잠시 막아 두시면서 맹렬한 하나님의 열심이 전인격적으로 그 영을 불태우는 시간입니다. 아파도 하나님 시간까지 견디게 하십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수 없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와 맹렬한 열심이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 수많은 간증이 있을겁니다. 모든것이 다 막혀 있다고 해도 하나님의 이른비와 늦은비는 쉬지 않고 내립니다. 한쪽으로 보면 기도 응답이 없는것 같은데, 다른 쪽으로는 부인할수 없는 하나님의 돕는 손길이 있습니다. 버림 받은 시간 같지만, 하나님의 은혜가 은밀한 가운데 임하는 시간입니다. 지나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섬세하고 세밀하게 도우셨구나 고백하게 될것입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아무일도 안 하시는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유없는 고난은 없습니다. 고난과 환란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성품을 닮아 가는것도 맞습니다. 인격적인 부분입니다. 또한, 소명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릇을 감당할수 있도록 계속 만들어 가십니다. 앞으로 하나님 하실 새일에 맞추어서 해야 할 분량에 대해서도 아무 세밀하게 훈련을 받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평범하게 훈련 받은 일들이 하나님께서 새 문을 열어 주시는 순간부터는 날개를 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훈련을 시켜 주셨기에, 문들이 열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날게 될것입니다. 늘 하던 대로 하면 되는것입니다. 훈련속에서 지혜와 영감을 이미 받았을 것입니다. 영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은연중에 몸에 베이게 하셨을것입니다. 세상을 이겨나가는 내성과 강도 높은 인내도 새겨 졌을것입니다. 영성과 영감, 영력도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많이 쌓였을것입니다.

아마 새로운 문이 열려서 한걸음, 두걸음 걸어 가다보면 신기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나 많은 준비를 미리 하셨나 할 정도로 감탄과 탄성을 금치 못하게 될것입니다. 또, 감사한 일이 있을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시며, 새 문을 여시는 시간이 너무 정확해서 놀라게 될것입니다. 세상의 흘러 가는 추세와 주변 상황들, 환경, 만남들....인적 자원들과 필요한 모든 요소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 지게 될것입니다.

 

그렇게 될수 밖에 없는 이유는 한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강렬하게 일하시면서, 최상의 시간을 찾고 계셨던것입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이 가장 정확합니다. 그 시간이 되면 알게 될것입니다.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를 분명하게 깨닫게 될것입니다. 지금까지 가졌던 많은 의문과 질문이 풀려지는 시간이 될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질투하시면서까지 훈련 시키시는 동안, 은밀한 가운데 이미 많은 일을 해 두셨던것을 알게 될것입니다. 환경을 만들어 오셨습니다. 사명과 소명을 이룰수 있는 여건과 토대를 만드셨습니다. 필요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연속으로 붙이셔서 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질투는 구원받은 영혼들을 쉴수 없도록 하십니다. 더 나아가게 하십니다. 결국, 축복의 시간과 장소로 도착하도록 내 모십니다. 가는 과정에서는 절대로 알수 없습니다. 가보면 탄성과 감사의 눈물과 찬양으로 가득 차게 될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영혼들을 돕도록 하십니다. 그 도움의 손길에는 하나님의 경륜과 놀라운 계획이 풍성하고 풍요로울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