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어려울수록 더 심어야 한다. (85)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47

 

 

어려울수록 더 심어야 한다. (85)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행4:32-35)

<josephlee0212@gmail.com>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구원을 얻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우리의 힘과 의가 조금도 개입되지 않는, 우리의 열심으로는 도저히 도달할수 없는 영역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영역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거칠게 다루실때가 있습니다. 연단의 시간입니다. 버림 받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 세상에 혼자 외딴곳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훈련하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거칠것을 다 거치게 하십니다. 지나가야 하는 과정을 철저하게 지나게 하셔서 배우게 하십니다. 그 과정 가운데 세상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알아야 하는 원리와 기도,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게 하십니다. 영적인 영역과 세상적인 영역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배워야만 하는 원리를 철저하게 가르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과 사명, 걸어가야 하는 길에 맞추어서 하나님은 세심하게 가르치십니다. 사람마다 인도하시는 방법이 같을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일찍 응답하십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조금 더 기다리게 하실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허용되는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절대로 허락되지 않을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왜 입니까? 물어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일일이 설명하지 않으실겁다.

 

어떤 사람의 인생은 처음 부터 돌밭길을 지나가게 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인생은 화려하다가 갑자기 무너 지는 인생이 있습니다. 인생의 출발점은 절대로 같을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불공평하게 보이는 인생의 길인것 같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깊이 몰라도 모든 것이 형통하게 잘 풀리는것 같이 보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그 어느 부분도 특별히 흠 잡을데가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히려 더 인격적이고, 자상하고 사랑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하는 일마다 모든 것이 형통할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볼때 고난 받는 사람은 갈등에 빠집니다. 하나님이 부당하게 여겨집니다. 매일 기도하지만, 응답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초라하게 여겨집니다. 왜 나만?  그러나, 하나님만 붙잡으면 인생은 역전이 될것입니다.

 

지금은 그 부당하게 보이는것을 절대로 설명할수 없습니다. 지나 봐야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시간이 올것입니다. 분명한것은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장 아름다운것을 손에 쥐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믿어야만 하는 사실입니다. 갈등이 오거나, 예상치 못한 안 좋은 일이 일어날때 그 순간 불신의 마음이 올라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이런 일을 허용하실수가 있을까? 하나님이 이런 일에서 보호를 해 주시지 않으실까? 온통 마음이 혼란스러울때가 있습니다. 이런 시간에는 왜입니까? 왜 나만 이러십니까? 갈등을 가지게 된다면 혼동속에 빠질수 밖에 없습니다. 너무 강한 좌절의 깊은 늪에 빠져 들어서 한동안 헤어 나오기 힘들수가 있습니다. 결코 쉬운 과정은 아닙니다. 믿음이 한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느낌이 들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는 시간일지라도 하나님은 붙잡고 계십니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계속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이런 일들이 일어날수 있습니다. 모든것이 하나님 손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호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실것입니다." 마음에서는 혼란스러워도 입술로 계속해야 하는 고백입니다.

어느 순간에 분명하게 알게 될것입니다. 이 고백 또한 하나님께서 내 안에서 할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에 할수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고백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대로 될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는 환경에서 감사하는 사람은 감사한 일이 영육간에 분명히 있을겁니다. 이러한 고난의 과정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있어 보여도 문제가 오면 쉽게 무너 집니다. 입술에 불평과 불만이 가득할수 있습니다. 갈등과 의문속에서 헤어져 나오지 못할수 있습니다.

 

문제가 올때 하나님 사람의 영적인 능력은 드러납니다. 문제가 있기전에는 자신도 무엇이 문제인지, 무엇을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지 모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가만히 내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훈련을 시키십니다. 더 정교하게 다듬고 싶어하십니다. 여러 과정을 짧은 시간에 가르치시고 싶으셔서 많은 문제를 연속적으로 일으키실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사탄과 마귀의 역사를 이용하기도 하십니다. 사탄이 마음대로 공격을 하는것 같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허락과 허용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 공격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절대적으로 보호하십니다.

무너지는것 처럼 보이지만. 다시 회복시키시고, 일으키십니다. 수 많은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 속에 있습니다. 회복은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역입니다.

지속적인 문제를 통해서 처절하게 무너질수 있습니다. 광야가 아니라 계속적으로 절벽의 끝으로 모실수 있습니다. 날개를 달아주지 않고, 날아 보라고 하시는 느낌입니다.

그러한 문제는 자신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게 하십니다. 거룩해지길 원하는데 거룩해지기는 커녕 자신의 가장 밑바닥을 보는 듯 합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신앙이 와르르 한순간에 무너지는 느낌입니다. 내 자신이 이것밖에 되지 않나 할 정도의 훈련을 하나님께서 다 거치게 하십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보기에는 절대로 통과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처절하게 박살이 난 느낌입니다. 수많은 문제가 오지만, 한 문제도 넉넉하게 통과하지 못한것 같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이 그렇게 멋지게 고백했던 죽으면 죽으리라는 신앙 고백이 나오지 않는것 같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못한 느낌입니다. 내 모습이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자괴감에 빠질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셨던 모습이 그렇게 깨어진 모습, 상한 심령인것 같습니다.

티끌만큼의 거룩한 모습, 신실한 태도가 없는 더럽고 추악한 모습때문에 자신을 아파하고 마음을 찢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가장 기뻐하시는것 같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찾을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날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가장 황무지 같은 곳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지성소가 임재하는것입니다.

 

진정한 겸손이 그곳에 있습니다. 상한 심령이 있는 곳에서 하나님없이 자신이 할수 있는 부분이 없다는것을 깊이 알게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시간입니다.

참 이상한 일이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자신의 추악한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이 두렵지가 않습니다. 아프지가 않습니다. 깊은 내면의 상처가 드러나서 스스로 깨닫게 되는것이 그리 아프지 않습니다. 자신만만하고 혈기가 넘칠때는 조그마한 자존심에 상처가 나도 못 견디는 자신인데 상한 심정일때는 제 자신의 가슴을 치게 됩니다. 하나님앞에서 애통해 하는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에게 원통하고 억울한 마음을 가졌다가도 상한 심령이 넘칠때는 제가 한 말과 행동이 한없이 부끄러워집니다. 후회를 뛰어 넘어서 하나님앞에서 그러한 모습을 고쳐 주시라고, 살려달라고 매달리게 됩니다.

기도가 바뀝니다. 이 전에는 문제 때문에 문제 응답을 위해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문제 해결이 더디고,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빨리 응답해 주시는데 나는 뭐냐고 하나님께 강팍한 마음을 가질때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내 모습이 하나님앞에서 부끄러워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내 모습이 문제가 되어 버리는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것 같습니다.

언제쯤 더 성숙해 지고, 변화가 될까요? 평생을 살아도 그 고백은 항상 똑같을것 같습니다.

믿음 생활에서 진정한 감사는 내 모습을 깨달을때 인것 같습니다. 깊이 꼭꼭 숨겨진 모습과 성처, 쓴뿌리가 드러나서 치유가 될때 어느 순간보다 더 감사한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 신기한 일이 회개의 은혜가 있을때 일어납니다. 하나님앞에서 온 마음 다해서 심게 됩니다. 야망때문에, 하나님께 복받기 위해서 심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대로 심게 됩니다. 시간을 심게 됩니다.

이전에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시간을 보내곤 했었는데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진 인생은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시간을 사용하게 됩니다. 시간을 낭비하는것이 아까와서 견딜수가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것보다 은혜가 갈급해집니다. 하나님을 만날수 있다면 자신의 시간을 더 드리고 싶어 합니다.

또한, 사랑을 심게 됩니다. 영혼들때문에 마음 아파서 견딜수 없는 시간이 많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하다가 자신의 문제인 것처럼 울게되고 무엇을 그 영혼을 위해서 할수 있을까 하나님께 묻게 됩니다.

할수 있는것을 다 하고 싶어 합니다. 성령께서 감동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사랑을 심고, 섬김을 다하게 되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때가 많습니다. 그 영혼이 무엇이 필요한지 직접 들은적도 없었는데 기도하다가 주신 감동으로 행동하게 되면 그 영혼이 갈급하게 필요한 부분일때가 많습니다. 성령께서 하시기에 그렇습니다. 이런 부분이 하나 둘씩 모아 지면, 기도를 안 할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무엇을 하려고 할때,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더라도 오해가 생기거나 마음이 상할수 있지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곳에서는 화평이 있습니다. 감사의 눈물이 있습니다. 간증이 있습니다.  

성령에 민감한 사람은 기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성령님. 주님...무엇을 원하세요? 무엇을 말하며, 행동하기를 원하세요? 묻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는 영혼의 필요에 민감하게 됩니다. 다른 영혼을 섬기고 싶어 하는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실겁니다. 성령의 사람은 성령께서 인도하시는대로 심도록 되어 있습니다.

무엇을 심어서 1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는 산술적인 계산만 하는것은 잘못입니다.

심기전에 하나님의 인도를 먼저 받아야 합니다. 헌금을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물질을 떨어 뜨리지 않고 사업을 형통하게 하실것이라고 단편적으로 생각하면 위험할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기복신앙으로 가게 됩니다. 헌금도, 물질을 심는것도 기도가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시는지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청지기 정신이란 관리만 잘 하고, 아껴쓰는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진정한 청지기 정신은 하나님께 이 모든것을 어떻게 관리하며, 어느 부분에 사용하길 원하시는지 묻는데서 시작될것입니다.

 

성령께서 심기를 원하는곳에 심는것은 엄청난 수확과 열매를 가져옵니다. 먼저는 심는자보다 하나님 나라에 엄청난 열매를 가져옵니다. 영적인 비밀입니다. 기도가운데 성령께서 이끄시는대로 심었던것이 어느날 하나님 나라에서 엄청난 수확이 되게 됩니다. 그 당시는 자신이 무엇을 심었는지 조차 모를수 있습니다. 나중에 알게 될것입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그 조그마한 씨앗이 자라서 어떠한 열매를 맺게 되었는지 보여 주실때가 있을것입니다. 사람의 좋은 동기와 의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끄셔서 하는것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 옵니다. 그 영향은 하나님의 나라에 까지 미칩니다. 하나님도 어떠한 환경에서도 그렇게 성령에 민감하고, 하나님뜻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이러한 사람을 하나님에 의해서 다듬어진 사람이라고 합니다. 성령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을 맡기실것입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어려울때도 자기 일보다 하나님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낼수 있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간일수 있습니다. 이럴수록 성령께서 원하시는것이 무엇인지 민감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원하시는 부분, 심기를 원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아낌없이 순종할수 있는 태도를 놓고 기도해야 할것입니다. 모든 영역에 해당합니다. 그 부분이 시간일수도 있습니다. 사랑과 섬김 일수도 있습니다. 물질일수도 있습니다. 자녀일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수 있다면 주님안에서 진정으로 자유를 누리게 될것입니다.

쉽게 할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하셔야 합니다. 어려운 시간에 성령의 감동대로 심는 그 수고는 훗날 100배,1000배 이상의 결실을 가져옵니다. 하나님 나라에 기쁨이 되는 일일것입니다.

이러한 훈련이 잘되어진 사람은 그 다음 무엇을 맡겨도 하나님께서 안심하실수 있을것입니다. 여러번 테스트도 하실수 있습니다. 그 다음 과정에는 더 큰 지경을 맡겨 주실것입니다.

이러한 테스트가 올때 그 과정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을수 있을것입니다. 이런것까지 왜 해야 하나? 이런 부분은 말이 되지 않잖아...그렇게 생각할수 있지만, 지나 놓고 보면 하나님께서 왜? 그리고 무엇을 원하셨는지 분명히 알게 됩니다.

 

어려울수록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받는것도 중요하지만, 성령께 민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민감하기 위해서는 기도밖에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의 판단대로만 행동할수 있습니다.

제 뜻대로 행동할수 있습니다. 기도없이는 환경이 변화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을 할수 있습니다.  때로는 할수 있는 너무 쉬운것을 요구하실때도 있습니다.

어떨때는 지금 순종하기에는 너무 부담스러운것을 요구하실때가 있습니다. 결단하기 어려울때도 있을것입니다. 깊은 기도를 하면 할수록 마음에 깊은 부담이 올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단하고 결심하는 순간, 이미 문이 열려지는 놀라운 경험을 할수 있을것입니다. 성령께서 미리 앞서 나가셔서 문을 여시기에 그렇습니다. 순종의 능력입니다. 이 순간, 순종도 결단도 심게 되는것입니다. 그러한 행동은 하나님께서 더 큰 지경으로 인도하실것입니다. 순종의 대가로 주시는것이 아니라 무엇이든지 순종할수 있기에 더 큰 일을 맡기실수 있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안에서 이루어 지는 아름다운 응답의 순환입니다. 성령에 민감한 사람은 영혼들을 살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 마음이 있는 곳으로 눈을 돌리려고 합니다. 세상적으로 화려하고 아름다운곳으로 향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물이 흐르는 곳으로 걸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심는것은 우리가 하는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이 최고의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것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감동대로 하는 순종이 축복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헌신하는것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기도의 장소가 거룩한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의 눈물이 흐르는 곳이 골고다의 언덕입니다. 다른 영혼의 상처와 고통이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함께 중보기도하면서 사랑하며 감싸 안아주는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할수 없을때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심는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에 눌려있던 영혼들을 사랑과 기도로 푸는 사역이 주님의 부활의 열매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습니다. 거룩한 결단은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기름부으심이 흘러 넘치는 시간입니다. 때로는 기도가 막힐수 있지만, 기도가 어려울수 있지만, 주님...주님...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만이 주님의 이름을 부를수 있습니다. 기도가 막힌것처럼 보이지만, 그 가운데 주님없이 살수 없다는 갈급함을 배웁니다. 그러한 주님이 우리를 함께 이끄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도록 하십니다. 심게 하십니다.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임마누엘의 은혜를 주시는 곳...그곳에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