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을 우울하게 만들어야 한다. (56)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 4:8)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 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 4:7-8)
우리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는 이 순간에도 영적인 세계에서는 계속 역사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빛과 어두움의 영적 전투이다. 어떠한 어두움도 하나님의 대적이 될수 없겠지만, 그들의 주 목적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동안, 허용한 방법으로 가장 민감하고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영혼들을 파괴시키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무너뜨리는데 있다. 우리가 항상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골고다 언덕 위를 피묻은 발걸음으로 걸어 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 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고의 축복이자 믿음의 궁극적인 목적이다. 그 닮아가는 과정이 그냥 편안하고 손쉬운것이 결코 아니다.
치열한 영적전투가 있다. 어두움의 영들이 끊임없이 방해하며 공격한다. 하나님의 편에 선다는것은 집요하고, 끈질긴 어두움의 영들과의 전면전을 의미한다. 어두움의 영은 항상 공격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데, 우리가 사탄의 전략과 전술에 대한 영분별력이 없다면 때때로 많은 영육간의 손상을 입기도 한다. 조금 더 깊이 사탄과 마귀에 대해서 깊이 인식하며, 하나님께 의지하며 사탄을 대적할 필요가 있다.
설령 하나님께서 어두움의 영에 대해서 깨닫게 하신다고 할지라도 성령의 전신갑주를 덧입는것외에...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보혈의 능력으로 무장하는것 외에는 그 어떠한 방법도 없다. 어두움의 영들의 전략과 전술은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 교묘하게 위장한다. 뱀처럼 지혜롭게 파고든다. 때로는 살아 있는 어두움의 손길이 육적으로 강하게 느껴질 정도로 강력하고, 피부로 와 닿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주변에서 귀신이 들렸다라든지, 우울증이 심각해서 자살의 충동을 받는다는지...여러가지 갑작스런 공격으로 온 몸에 질병이 왔다든지, 질병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나는(병원 검사결과에서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 등 다양한 공격이 나타나기도 한다. 이런 경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가운데 생명걸고 어두움을 대적하기도 한다. 예수 이름의 능력으로 많은 경우 이러한 세력들이 물러 가는것을 체험하곤 한다. 또 다른 경우는, 이미 여러 번 말한대로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control하려고, 가치관과 관점, 생각의 기준을 서서히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에 전혀 반응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이 부분을 방어하기 위해서 매일 주님과 교제가 필요하다. 어느날 하루 아침에 순간적으로 만들어 지는 가치관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허용하셔야 하겠지만, 생활가운데, 경제 활동가운데, 인간관계...에서 오는 어두움의 공격이 거칠고 집요한것을 쉽게 볼수 있다. 아주 서서히 스며드는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기폭제가 되어서 강력한 폭발을 일으켜서 사방에 정신없는 일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영분별력이 필요하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계시의 영, 곧 성령의 세심한 인도가 필요한 부분이다. 매일 마귀의 은밀한 공격에 대해서 깨어 있어야 하며, 대적 기도가 기도의 일부분이 되어야 한다.
어떤 사탄의 공격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순간... 물러 가기도 한다. 때로는 몇번 연속해서 기도하면 물러가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훈련가운데 허락하시는 광야의 시간 동안에는 아무리 매일 축사를 하고, 집중적으로 대적을 해도, 잠시 수그러 지는것 같다가 다시 일어나서 우는 사자처럼 달라든다.
결국은 우리가 사탄을 대적하는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대적해주셔야만 물러가는것이다.
사탄은 하나님께서 부리시는 영이시다. 하나님의 발 아래 있다. 하나님의 깊으신 뜻이 있으시기에 제한된 시간동안 우리를 가둬서 훈련시키시는데 마귀를 사용하기도 하신다. 우리가 하나님를 못 떠나도록 하는 가시 역할을 하도록 사탄을 이용하기도 하신다. 믿는자들의 대적이다. 우리가 기도로 결박해야 하는 대상이다.
이 광야의 훈련 시간동안에는 지루하리 만큼 오래동안 어두움과 영적 전쟁을 한다.
피흘리는 영적 전투의 시간이다.
기도하면 기도할수록 어두움이 오히려 더 강해 지는 느낌도 받는다. 많은 기도하는 사람이 여기에서 의문을 많이 갖는다. 예수의 이름이 능력이 있는데 왜 쉽게 어두움이 묶이지 않을까? 그러나, 끝까지... 하나님의 시간까지 인내하며 무릎 꿇고 있으면 결국은 무너진다. 이 시간까지 기다리는것이 힘들다. 어렵다. 중도에 포기 하고 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많은 의문과 갈등속에서 하나님이 계시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나? 하나님이 사랑하시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나? 그런 생각이 들도록 하는 일이 때때로 일어난다. 믿음의 눈으로 봐야 한다. 육신의 눈으로 보면 한없는 갈등의 늪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격과 믿음을 정금처럼 다듬기 위해서 거치게 하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미 많은 영적인 원리를 나누기도 했다.
이런 어두움의 능력과 오랫동안 대적하다 보면 자신도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것을 체험하기도 한다. 축사와 신유의 능력이 대표적인것이다. 또한, 사랑과 용서의 능력...성령안에서 인격적인 열매도 함께 맺게 된다.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끝없이 괴롭히는것 같지만, 결국은 하나님의 손에서 사용되는 역할만 할뿐이다. 고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서 더 간절히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더 견고한 믿음과 능력을 가지게 될것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중간에 포기하고 넘어진다는것이다. 끝까지 믿음으로 견디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에 대해서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될것이다.
어두움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에 벌벌 떤다. 기도를 가장 무서워 한다. 어두움을 묶는 최고의 방법은 분명히 기도이다. 그런데, 광야의 훈련 시간에 마귀는 벌벌 떨기는 커녕 오히려 우리를 비웃는 느낌이 들 정도로 역공격을 해 오기도 한다. 우리가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영적 좌절과 갈등이 생기는 시점이기도 하다.
하나님께서 한단계 더 성숙시키시려고 좀 더 기다리시는 시간이기도 하다.
넘어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 주시고, 또 다시 영적 전투로 이끄신다. 남자답게 강건하고, 담대하게 이겨 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멀리 계시는 시간같기도 하다. 넘어지면 일어나고...지속적인 반복의 연속이다.
이 시간 동안, 절벽에서 떨어져 죽을것만 같지만, 하나님의 날개 그늘아래 보호를 받는 체험을 하기도 한다.
길없는 길에서 하나님의 방법을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 확신이 마음에 새겨지며, 담대함이 자신의 영혼 중심에 새겨 지는 시간이다. 육적인 감사의 제목이 없는 길에서 성령께서 감사의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시간이다. 기뻐하고 감사할 일이 전혀 없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성령의 단비를 통해서 확인시켜 주시고, confirm해주시는 순간이기도 하다. 남들 보기에 제정신이 아닌듯 하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기도가 없더라도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그런 일들이 기도가운데 성령의 조그마한 단비로 응답될때는 그 훈련가운데 모든것이 막혀 있던 사람에게는 엄청난 확신을 가져다 주는 생수의 역할을 한다. 넘치는 감사가 나온다. 찬양이 흘러 나온다.
그리고, 깨닫는다. 어두움이 가장 두려워 하는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내 안에서 인격과 믿음의 고백...전인격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될때라는것을. 말만 잘하는 기도가 아니라 내면에서, 전인격적에서 흘러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의 것이 될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믿음의 능력을 가져 온다는것을 알게된다.
신유과 축사의 능력 또한 강력하다. 모든 사람이 이러한 능력을 은사로 받지는 않을것이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그릇이 다르고, 목적이 다르기에, 각자에게 합당한 은사를 부어 주실것이다.
그러한 은사보다 더 강력한 능력이 있다. 합심기도이다. 이 세상에서 합심기도보다 더 강력한 무기는 없다. 어떠한 능력보다도 강력하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고 심는 합심기도에는 불순물이 없다. 한 영혼을 위해서 함께 아파하면서 올려 드리는 기도에는 순전한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개개인의 야망과 욕심이 배제된채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향해 불태우는 동일한 마음만 있을 뿐이다. 어두움이 벌벌 떤다.
하늘 문이 열리며, 천사들이 에워싸며 함께 어두움의 영을 대적하는 시간이다. 어두움의 세력들이 묶임받는 시간이다. 두 세사람부터 시작할수 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과 교회가 천국의 작은 모형이기 때문이다. 사랑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훈련시키실때는 그 한 사람만 국한되어 있는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가정 또한 훈련 가운데 들어가 있음을 알수 있다. 모든 가족 공동체가 올려 드리는 그 기도와 예배에서 오순절의 다락방이 시작 되기를 하나님은 갈망하신다.
하나님의 꿈과 비젼이 담겨있는 곳이다. 오늘날 사탄이 가장 깨고 싶어 하는 주요한 대상중 하나가 바로 가정이다. 간절한 기도없이는 보호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깊은 사랑으로 맺어진 공동체이기에 한 마음으로 올려 드리는 기도가 하나님을 뜨겁게 감동시킬것이다. 어두움이 가장 시기. 질투로 바라 보는 곳이 교회와 가정이다. 교묘한 방법으로 그 틈을 항상 노려 보고 있다. 여간한 기도로는 쉽게 물러 가지 않을 것이다. 순간 물러 간다고 할지라고 다시 그 틈을 노리면서 달라 들려고 할것이다.
마귀는 영적인 존재이다. 하나님의 창조물인 사람처럼 지.정.의를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 악한 목적을 가지고 악한 마음으로 서로 단합이 잘 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 어두움의 세력이 가진 의지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하나님께서 끊어 주시고, 대적해 주시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마귀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다. 그들이 조정하고 시키는대로 우리가 행동 하고 말할때 그것으로 에너지의 근원으로 삼을것이다. 힘이 점점 강력해 질것이다. 우리도 계획대로 모든 일이 착착 잘 진행될때 기뻐서 힘이 넘치는 것처럼 마귀라는 존재도 마찬가지이다.
이 어두움이 충동하는대로 우리가 따라서 움직이고, 파놓은 함정에 계획대로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면 어두움의 세력은 그 힘이 더 강력해 질것이다. 특히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들을 올무에 집어 넣을때는 더 기뻐할것이다.
마귀가 힘을 얻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마귀가 힘을 얻을때는 그 세력이 더 강해져서 우리를 더 심각하게 괴롭힐수 있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하는것은 기도이다. 기도를 막고자 마귀는 노력할수 밖에 없다. 기도를 통해서 그 어두움의 세력이 묶이기 때문이다. 감정을 가진 존재인 마귀도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을때는 힘들어 할것이다. 완전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분노한다. 고통스러워 한다.
영혼을 무너 뜨리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는데 그 영혼이 끊임없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면 사탄은 좌절할수 밖에 없다. 그 순간에 하나님께서 허용하신 범위내에서 더 발악한다. 그들의 어떠한 방법에도 그 영혼이 찬양과 감사의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면 어느 순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것이다. 궁극적으로 하나님께서 물리쳐 주셔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와 찬양의 능력으로 사탄을 제압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주기 위해서 기다리신다. 사탄을 순간 물리쳐 주는것에 만족하시는것이 아니라 사탄을 제어할수 있는 권세를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신다. 마귀에게 여러가지 방법으로 공격당하게 하는 이유중의 하나이다.
마귀가 가장 두려워 하는것은 사랑과 용서이다. 그들에게 없는 성품이기 때문이다. 어두움이 가장 증오하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고 미워하는 감정이 사랑과 용서이다. 악의 근원인 마귀가 똘똘 뭉칠수 있는 이유는 목표가 서로 같기 때문이다. 마귀끼리도 그들의 속성상 서로 싸우려고 할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우두머리인 사탄은 마귀가 서로를 향해서 전투하지 못하도록 그 부하인 마귀. 귀신들의 관심사를 영혼에게 집중하도록 만든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까지 어두움의 왕국이 분열없이 유지되며, 지탱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악한 목적이 같기 때문이다.
사랑과 용서의 속성은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 하나님이 바로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싶었던 사탄이 미워할수 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런데, 자신의 공격대상인 영혼이 하나님의 속성을 유업으로 받으니 그 분노가 넘칠수 밖에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꼼짝못하는 이유는 사랑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가장 크게 역사하기에 그렇다. 완전한 빛의 세계가 사랑이기에 그 곳에는 어두움이 자리 잡을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귀의 자녀로 만들고 싶어서 미움, 다툼, 시기, 질투...의 감정을 넣어려고 애쓰는데 오히려 모든것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사랑할때 마귀는 무기력감에 빠져 버릴수 밖에 없다. 마귀에게 주어진 한계상황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기에 어두움은 벌벌 떨수 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십자가의 극한 고통 속에서 모든 것을 용서하고, 사랑하시기에 그 사랑의 능력 앞에 굴복할 수 밖에 없는것이다.
마귀의 공격을 통해서 우리 안에 있는 이기적인 사랑과 모습도 다듬어져 간다. 불순물이 빠져 나가고, 그 공격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을 배워 나가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마귀가 실컷 공격해 놓고, 영광은 하나님께서 받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자들이 하나님안에서 누릴수 있는 특권이다. 감사하며, 사랑할때 우리를 공격하는 사탄은 무장해제 할수 밖에 없다. 마귀는 극심한 우울한 마음에 빠져서 공격할 의욕조차 가질수 없을것이다. 그럼에도 결코 만만한 존재는 아니다.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서 언제든지 공격할수 있기에 그렇다. 여러가지 다양한 어두움의 공격에 대한 영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앞에 올라가지 못하도록 사탄은 역사할것이다.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거나, 허탄한 마음으로 생각을 다른곳으로 유도하거나, 바쁜 일의 횡포에 휘둘리도록 할것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순간까지 해야 한다.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평안이 임할때까지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그 시간까지 못가도록 사탄의 방해는 극심할것이다. 물론 항상 그렇게 피부에 와 닿는 임재는 느껴지지 않을수 있다. 그런 방해를 뚫고 지속적으로 하늘 문을 여는 영적인 기도와 능력을 가지게 되면, 시간이 가면서 좀 더 쉽게 깊은 기도에 들어 갈수 있을것이다. 그만큼 영적으로 능력이 채워지기 때문이다.
어떤 하나님의 사람과 기도를 함께 하게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좀 더 쉽게 느껴지고, 하나님의 평안이 빨리 채워 질수 있는것은 그 하나님의 사람이 엄청난 영적인 전투를 치루면서 물러 서지 않고, 하늘문을 열려고 생명을 걸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에게 신유와 축사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두움의 영이 눈에 보일 정도로 물러 나는 역사가 좀 더 강하게 나타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한 기도의 능력이 있는 중보자나 동역자가 함께 기도 할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라도, 오늘 이 시간 하나님께서 친히 그 기도의 능력과 하늘문을 여는 능력을 직접 주시기 위해서 우리 안에서 우리와 함께 기도 하실것이다. 기도에 집중할 수 있다는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 다른 허탄한 생각없이 기도에 생명걸수 있다는것은 보통 능력이 아니다. 기도없이는 호흡이 불가능하다고 고백하는 영혼은 이미 영적 세계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성령님의 도움으로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 드리는 기도의 능력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다. 기도를 통해서 만들어지는 내면의 변화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어떤 환경이 만들어질지 기대되는 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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