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영혼을 기다려 주어야 한다. 예수님처럼...(57)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 14:26)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행 2:33)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것이 믿음이다. 남편, 아내, 자녀, 친척, 친구...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변화를 놓고 기도하는 것은 상당한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오랫동안 기도했지만, 조그마한 변화도 없고, 그 문제들이 여전히 눈에 훤하게 보일때는 때때로 인간적인 어떤 방법으로 행동해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 온다. 하지만, 싸움밖에 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아니면 피해 버리던가...말로 어떻게 해 보려고 하지만, 대화가 통하지 않아서 하나님께 무릎 꿇어 본다. 그 갈등이 일어나는 여러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거기서 오는 고통은 이루 헤아릴수 없다.
분명한것은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내 자아를 다듬고 계시며 나를 먼저 만들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또한, 이 시간동안 인내하며 참고 기다리는것을 순교의 삶의 일부분으로 받고 계신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흔적으로 하나님은 보고 계실것이다. 그만큼 기다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무나 쉽게 감당할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다른 어떤 일보다 가까운 사람의 변화... 영혼의 변화를 놓고 하나님안에서 다듬어 지기를 기다리는것은 엄청난 인내와 눈물을 요구한다. 골고다에 걸어가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 그 안에 담겨져 있을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걷지 않는다면 결딘코 그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 드리며 기다려 주지 못할것이다. 인내는 하나님으로 부터 오는 능력이다.
한 영혼이 변화 되는것은 기적이다. 그러한 기적에는 배후의 눈물과 생명건 기도가 필요하다. 한 영혼이 변화하기까지 하나님도 기다리시겠지만, 배후에 있는 사람 또한 엄청난 인내의 시간이다.
우리에게 가장 힘든 것 중에 하나가 기다림일것이다. 사람의 약속이나 계약 이행을 기다리는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계약서가 있는것도 아니고, 귀에 들리는 음성이 녹음 된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안다. 어떤 약속보다도 하나님의 약속은 선명하다. 분명하게 이루어 질것이라는 응답을 믿음으로 받아 들인다. 그 믿음에 대해서 하나님은 반드시 응답하시며, 기뻐하실것이다.
문제는 보이지 않는 믿음이라는데 있다. 믿음에는 갈등과 기다림이 함께 동반한다. 눈에 보이는 응답이 금방 있으면 그렇게 많은 갈등을 하지 않아도 된다. 많은 시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될것이다. 그 만큼의 깊은 믿음도 필요하지 않을것이다. 조금만 기도해도 눈에 보이는 응답이 있기 때문에 그럴것이다.
가끔은 조금만 기도해도 기적적인 방법으로 문제가 해결되거나, 이루어 지기도 한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기다리지도 않을때도 있다. 그 순간은 좋아서 어쩔줄 몰라 하지만, 얼마 지나면 금방 잊어 버린다. 마치 그러한 은혜를 당연하다는듯이 생각한다. 은혜가 은혜처럼 느껴지지 않을때는 상당한 영적인 위기다. 감사가 없다.
조금만 좋은 일이 생기면 펄쩍 뛰고, 안 좋은 일이 생기면 금방 실망해 버리고 뒤돌아 서 버린다.
누구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런 속성에 대해서 잘 아신다. 깊은 훈련과 가다림을 허락하시기 전에 가끔은 인내없는 빠른 응답도 체험하게 하게 하실때가 있다. 하지만, 쉽게 변하고 잊어 버리는 우리의 속성을 잘 아시기에 늘 허락하시는 빠른 응답은 아닐것이다. 다른 어떠한 기적보다, 응답보다... 하나님 자신을 우리에게 채우시기를 원하신다. 그 방법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기다림이다. 이 시간에 엄청난 영적인 성장을 허락하실것이다. 동시에, 엄청난 영적인 갈등과 좌절도 함께 겪게 하실수 있다.
이 시간에는 마치 모든것이 동문서답하시는것 같다. 우리가 올려 드리는 기도에 하나님은 완전히 귀 막고 계시는것 처럼 느껴지고, 말씀으로 응답해 주시는 내용도 지금의 상황과는 전혀 먼 약속을 주실때도 있다.
여러가지 아픈 기도 제목때문에 기도하다가 가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도 있다.
"내가 사랑한다. 내가 다 알고 있다. 평안하라. 내가 동행하고 있다." ...
꼭 이런 음성이 아니라도 영적인 상식에서 다 아는 이야기인데... 이런 말씀을 왜 하실까? 사랑하신다면서 왜 이런 일까지 허용하시는것일까? 하나님께서 다 아신다고? 아신다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건져 주실수 있을텐데. 다 아시면서 내 버려 두시다니...오히려 더 섭섭한 마음까지 든다. 하나님께서 동행하신다고? 동행하시면 내 문제에 깊이 개입을 해 주시면 안되나?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해 왔는데... 그래도 기도외에는 어떤 답이 없는것 같아서 투덜대기도 하면서 하나님앞에 무릎 꿇어 본다. 똑같이 말씀 하신다. "내가 사랑한다..."
지금 이 시간에는 그러한 음성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응답을 먼저 보고 싶은데...
솔직한 내 마음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신다.
그러나, 더 이상 길이 없다고 생각되는 시간에, 더 이상 나아 갈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에...
이렇게 좌절하고 낙심하고 있던 우리 자신이 부끄러워 지게 될것이다. 감사없이 입술로 불평하던 우리가 한없이 부끄러워서 견디지 못하게 되는 시간이 올것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때문이다.
길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어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한 하나님은 이러한 우리를 오랫동안 참아 주셨다. 모든 일에 어린 아이처럼 분별하지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잠잠히 붙잡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알수도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새로운 문을 준비해오셨는데 우리는 길이 없다고 불평하고 있었던것이다.
어떤 기도 응답의 기다림에 대해서 후회가 없을것이다. 하나님의 기다림에는 반드시 뜻이 있으며, 큰 은혜가 함께 할것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중 많은 부분의 사역이 질병을 고치는 신유와 귀신을 내어 쫓는 축사 사역이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계심을 보여 주고 계셨다. 광야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 라파.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보여 주셨던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가 친히 한 사람, 한 영혼에게 임하고 계심을 보여 주고 계셨다. 또 한가지,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역의 지속성을 위해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영적인 원리에 대해서, 사명에 대해서 많은 말씀과 가르침을 주셨다.
짧지 않은 시간이었고, 예수님께서는 모든것을 함께 하셨다. 모든것을 Open하셨고, 나누어 주셨고, 제자들의 영육간의 필요에 민감하셨고, 채우셨다. 그리고, 사랑하셨다.
사역 중간에 제자들의 고백을 보면, 어느 정도 높은 영적 수준에 도달하는것 처럼 보여진다.
예수님께서 하셨던 질병 치유와 귀신도 쫓겨 나가며,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다. 때로는 제자들의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놀랍기까지 하다. 예수님께서 늘 함께 하셨으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공생애가 마무리 되는 시점에 제자들의 수준은 상당한 위치에 올라선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십자가앞에서 완전하게 무너 졌다.
십자가의 능력이 없었던것이었다. 동상이몽이었다. 하나님의 나라와 제자들의 나라가 너무나 달랐다.
제자들속에 있는 야망과 하나님 나라의 순전한 꿈과는 너무 차이가 컸다. 모두가 흩어졌다.
십가가에서 인류의 죄를 향한 구속 사역은 완전하게 이루어 지는것 같았지만, 제자 사역은 허무하게 연기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고난앞에서 처절하리만큼 자신들을 위해서 도망갔던 제자들의 모습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 사역은 완전히 실패한것 처럼 보였다.
우리에게도 그렇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하늘 문을 열어 달라고 많은 기도를 하고, 또 응답을 받는다.
때로는 지연되기도 하고, 거절 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더 좋은 모양으로 응답을 받게 된다. 하나님 시간까지만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그 시간을 통해서 영적인 성장과 성숙을 체험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른 어떤 기도 제목보다 다른 영혼의 내면의 변화를 위한 기도 제목이 힘들다.
다른 기도 제목은 빨리 응답하시는것 같은데 내면을 위한 기도제목은 시간이 오래 걸리는것 같다.
영혼의 변화에 대한 기도처럼 오랫동안 기다리게 만드시는 부분은 없는것 같다. 누구보다도 자녀, 남편, 아내, 가족...가까운 사람일수록 기다림의 고통은 강하고 절박하다.
그렇게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것 처럼 보일때가 많다.
분명한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고, 즐거워 하시는 기도가 영혼에 대한 기도일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그 곳에 임하기 때문이다. 한 생명이 하나님께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춤을 추시며 일어나신다.
어떤 기도 제목보다 영혼에 대한 기도가 어려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 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억압과 강요가 아닌 자유 의지로 선택을 할수 있도록 길을 열어 두시기에 그렇다.
한 영혼이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선택하도록, 하나님께로 돌아 오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많은 일을 하신다. 우리가 다 볼수는 없지만, 그 영혼의 선택을 돕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은 무척 강렬하실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열심을 위해서 함께 중보하게 하는 사람이 바로 우리이다.
한 순간에 물리적인 변화를 통해서 일 하실수 있지만, 그 내면에 하나님에 대한 깊은 Touch를 느끼도록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주변의 모든 평범한 부분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하실까? 하나님께서도 얼마나 기대하실까? 그 영혼의 변화를 위한 기다리심이 우리의 생각 이상일것이다. 비록 그 죄가 밉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기회를 주고 싶어하실것이다.
이 시간에는 바로 옆에 있는 기도 하는 사람의 시간과 수고를 희생시키시는것 처럼 보인다.
가까이에서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선대하지 않는것처럼 보이면서, 중보 기도의 대상자에게는 힘을 실어 주는것처럼 느껴진다.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이미 하나님을 주셨기에, 천국을 소유하는 사람이기게 그렇다. 탕자의 비유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고 싶으셔서 하나님은 또 참고 기다리신다.
기다림가운데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큰 능력중 하나가 영혼의 내면을 만져 주시는것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하나님을 거절 하는 사람을 변화 시키는 일은 이 세상 사람... 아무도 할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의 마음을 변화 시키는 일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만이 하실수 있다.
하나님의 방법도 성령이시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중 제자 훈련이 실패로 끝난것 처럼 보였지만, 예수님은 조금도 실망하지 않으셨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부어 주실줄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비록 모든 제자들이 십자가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지만, 그들을 다시 일으키셔서 마음을 변화 시키실분이 성령이심을 예수님을 알고 계셨다. 그 일을 놓고 소원하셨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 전에는...성령 충만을 받기 전에는 그 어떤 제자도 자신의 힘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를수 없음을 잘 알고 계셨다. 이러한 제자들의 마음을 돕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 외에는 그 어떤 방법이 없음을 잘 알고 계셨다.
그리고, 오순절에 성령께서 이땅에 오셨을때, 지난 3년간 예수님께서 실패했던것 처럼 보였던 제자 훈련이 완전하게 열매 맺게 되었다. 제자들이 모두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말하기 시작했고, 가르치기 시작했고, 사랑했다. 사도행전이 기록되기 시작했으며, 성령행전 그리고 말씀 행전으로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성령께서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제자들로 다시 선포하게 하셨기에 말씀 행전이다. 성령께서 이 모든 사역의 주체가 되시며, 제자들이 가는곳마다 폭발적인 말씀의 부흥과 부활의 능력으로 함께 부어 주시기에 성령 행전이다.
예수님께서도 기다리셨다. 그리고, 그 자신을 온전하게 드리셨다. 그 대가가 부활의 은혜요, 성령의 강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기다리심에 기쁨으로 응답하셨다.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일들보다 더 놀라운 일들이 성령에 의해서 제자들에게 함께 일어났다.
하나님께서도 마냥 기다리게 하지 않으실것이다. 응답의 시간이 곧 다가 온다.
그리고, 반드시 대가에 대한 보상을 하실것이다.
우리의 대안도 성령이시다. 모든 부분에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셔야 한다. 생명걸고 사모 하는 부분이다.
성령께서 기름 부어 주실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그곳에 함께 하시기 때문이다.
모든 기도 제목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의미이다.
또한, 그 어떤 기도 제목보다 중요한, 영혼의 변화에 기름 부으심이 넘쳐야 한다.
주변의 영혼, 가까이 있는 영혼을 놓고, 성령께서 Tocuh하시도록 기도해야 한다.
남편, 아내, 자녀...가까운 곳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가정부터 이 일이 시작되어야 한다.
지금은 기다림과 갈등 고통스러운 과정일수 있지만, 예수의 영이 이 일을 기뻐하시며, 일을 하고 계신다.
예수님도 기다리셨다. 기도하면서 기다리면 된다. 쉽지만은 않다. 순교의 고통처럼 느껴질것이다.
예수님의 약속이시며, 사도행전을 통해서 분명하게 응답하셨던 그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제목에 레마가 될것이다.
기다리는것이 믿음이다. 기도이다. 그 수 많은 갈등과 인내에 대해서 성령께서 폭발적으로 역사하실것이다.
그 순간 보게 될것이다. 깨닫게 될것이다. 하나의 응답이 아니라 수 많은 응답이 함께 일어나고 있음을...
나의 변화, 그 영혼의 변화, 환경의 변화,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확장... 하나님의 깊은 뜻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놀라운 일의 연속일것이다. 이 일을 위해서 오늘날 성령께서 일하고 계신다.
기대와 소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응답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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