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사람 비위가 아니라 하나님 비위다. (53)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01

사람 비위가 아니라 하나님 비위다. (53)

"...사울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여호와께서 보내신 길로 가서 아말렉 왕 아각을 끌어 왔고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으나 다만 백성이 그 마땅히 멸할것중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길갈에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끌어 왔나이다 하는지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삼상 15:20-22)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일은 참 어려운 일이다. 특별히 어려운 일이 있을때는 당황스럽고, 혼란스러운 나머지 더 깊이 분별하기 어려울때가 많다. 그럴때는 보이는 사람의 조언을 더 듣고 싶어 한다.

마음에는 불안이 가득하고, 모든 것을 잃느냐 아니면 다른 어떤 길이 있느냐 하는 순간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있기는 정말 힘들다. 스스로를 위로한다. "이럴때 기도만 한다고 되는게 아니라 빨리 다른 사람의 의견을 구하고, 무엇인가 대책을 세워야지. 이렇게 기도만 한다고 되는것인가?"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이다.

하나님께서도 많은 분야에서 지혜와 지식을 허락하셨고, 사회 System을 만들어 나가시며, 그 구성 요소들을 세워 주셨다. 우리의 지혜가 아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것이다. 과학도, 의학도, 경제도...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이끌어 나가시기에 가능한것이다. 선와 악의 개념이 아니다.

문제는 우선순위다.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하나님께 먼저 여쭈어 보고, 기도의 태도를 갖추는게 우선이다.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는것이다. 평상시에 기도를 많이 하는것 같지만, 진정한 기도의 모습은 위기의 상황에서 보다 선명하게 나타난다. 기도하는 사람은 어떤 일에서든지 하나님께 먼저 물어 보게 되어 있다.

사람의 눈에 아무리 좋아 보여도, 아무리 지혜로와 보이고, 100% 예측 가능한 좋은 결과가 있다고 할지라도

다시 한번 하나님께 의지하며, 나아가는 사람이다.

때로는 하나님도 우리를 Test하신다. 아무리 물어 보고, 기도를 하고, 분명히 하나님이 이끄신다는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는데도 실패의 연속일 수있다. 하나님은 그 순간, 하나님을 진심으로 구하는지, 자신의 성공과 이득을 위해서 하나님을 사용하는지... 우리 마음의 중심을 저울질 하고 계실것이다.

많은 경우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는것 보다 보이는 사람들을 의지하는것이 더 큰 힘이 되는것 처럼 느껴질수 있다. 돈의 힘도 상당하다. 인맥과 학연도 작지 않은 힘이다. 사람의 힘도 생각보다 클수 있다.

전혀 힘이 안되는것은 아니다. 어떨때는 기도 하는것 보다 그런 것들을 의지하는것이 당장 눈 앞에 분명한 결과를 가져 올때가 있다. 기도하는 사람조차 이런 결과에 시험들기도 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서도 심한 갈등에 빠지기도 한다. 기도 할때마다 금방 눈에 보이는 응답이 있었으면 하지만, 많은 경우에 그렇지 않다.

그 순간에는 눈에 보이는 응답보다 아픈 마음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갈등중에 애쓸것이다.

그러나, 항상 기도의 자리에 있느냐? 하나님을 매순간 의뢰하느냐? 하는 질문에는 시간이 가면서 확실하게 인생의 획을 긋는 환경과 그림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실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에게 하나님 없는 형통함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을 의지 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인생의 최고의 목적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것이라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기 위해서 어느 순간부터 우선 순위가 잘못되어져 있는 인생에 반드시 개입하신다.

그 시간이 사람마다 다를것이다. 개입하시는 방법도 다를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루시는 수만 가지의 방법을 가지고 계실것이다. 가장 평범해 보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최상의 효율적인 방법을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실것이다.

그동안은 세상에서 살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수완과 수단이 있었을것이다. 지금까지는 자연스럽게 아무런 문제없이 잘해 왔던 자신의 방법들이 이 시간부터는 철저하게 막힐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며, 영적으로 형통함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모든 부분이 막히면서 그만큼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이 시간부터 은과 금으로 바꿀수 없는 영적인 형통함의 축복이 함께 한다.

 

하나님의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비굴해 질수 있다. 때로는 인간적인 자신의 방법에 비참해 지기도 한다.

자신의 방법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다른 사람에게 아부도 해야 하고, 사람 비위도 맞추어야 하니깐 힘들기 까지 하다. 자신이 의지하는 사람의 말과 감정에 따라서 많은 부분이 흔들리게 된다. 

자신의 힘으로 지금 자리에 올라 왔다고 생각하니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 어느 누구도 믿을수 없을 뿐만 아니라 때론 도움을 얻기 위해서 힘있어 보이는 사람에게 거짓 아부까지 해야 할때가 분명히 있을것이다.

사람 중심의 삶이다. 외롭고, 힘든 인생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다가 언제 무너 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마음을 엄습한다. 보통때는 강해 보이는것 같고, 능력도 있어 보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넘어서는 문제가 오면 어느 순간부터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스스로 무너 지기도 한다. 자신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훈련을 통과한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공급되어 지고 있음을 확실히 안다. 이 모든 환경도, 물질도, 만남들도...모든것이 하나님께로 왔음을 믿음 가운데 분명히 알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은 모든 축복이 하나님께서 온다는 사실을 믿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리는것이다. 이 시간까지 하나님을 절대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까지 인내하는것이다. 매순간이 순교의 시간일것이다. 그냥 마냥 쉽게만 기다리는것이 아니라 수많은 시련과 인간적인 방법에 대한 유혹이 다가오기 때문에 절대로 간단하지는 않다.

 

믿음은 사람의 비위가 아닌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것이다.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존감을 무너뜨리고, 다른 사람앞에서 비굴해질 필요도 없다. 기도로 하나님을 상대하기에,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삶이 그 사람의 전부일것이다. 그러면서도 겸손하다.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실것이다. 영육간의 지경이 넓어 지는 지름길이 될것이다. 인생의 성공의 원리이며, 인생의 위기에서 든든한 반석이다.

 

주의 해야 할 부분은 하나님의 비위를 맞춘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상당한 압박감을 줄 수 있다는것이다. 주변의 사람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가족에게 대해서 이런 태도를 흔히 발견 할수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겠어? 이러니깐 하나님이 일을 못하시지... 당신, 잘 생각해봐.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살면 하나님이 뭐라고 하시겠어? 내가 그렇게 기도해도 당신때문에 모든 일이 안된다니깐. 내가 기도하면 뭐해. 당신때문에 응답을 못받는데. 기도하려면 같이 해야지. 나 혼자 한다고 되겠어?"

사람이기에 가까이 있는 사람의 태도가 못마땅 할수 있다. 특히, 내가 기대하고 생각했던 부분이 상대방에게서 제대로 보이지 않으면 쉽게 판단한다... 저런 모습 때문에 기도 제목이 응답 받지 못한다고... 일이 안된다고.

알면서도 쉽지 않고, 어려운 부분이다.

그 숨어 있는 마음 중심에는 자신은 하나님의 비위를 잘 맞추려고 하는데 상대는 전혀 못 맞춘다고 생각한다.

그 판단이 맞을 수도 있다. 문제는 그 생각을 풀어 나가는 과정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고 할지라도 행동에서 인간적인 방법이 나타나면 사탄이 그 틈을 놓지 않을것이다.

하나님의 비위를 함께 맞추었으면 하던 그 중심 생각이 "저 모습을 더 이상 못 보겠어..." 인간적인 방법으로 바뀌게 된다. 그 순간 부터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마음속의 분노가 중심을 차지 하게 된다. 그리고, 그 분노에 따라서 행동하게 된다.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인간적인 분노와 함께 섞이게 되는 순간, 사탄의 불화살이 정신없이 쏟아지게 된다. 다른 어떤 부분 보다 서로의 마음에 더 깊은 상처를 주게 된다. 영적인 부분도 함께 상처 받기 때문이다. 삶가운데 많이 겪는 참 힘든 부분이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시간까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중보 기도하는것은 어렵다. 그 시간까지 그 영혼의 변화를 위해서 기도하는것은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불가능하다. 남편, 아내, 자녀에 대한 문제일수록 그 정도는 더 하다. 믿음의 Color가 다르고, 차이가 크면 클수록  고민 또한 크다.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는 믿음은 분노와 혈기가 아닌 지혜와 슬기가 함께 따라야 한다. 시간을 기다릴줄 안다.

말하고 싶어도 Timing을 기다리며, 혈기와 분노로 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옆 사람을 어떻게 대할줄 아는 사람이다. 문제를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하는지 하나님께 인도를 받게 될것이다.

기도 가운데 그 지혜를 이미 충분히 받으며, 행동에 대한 Manual을 하나님께서 주실것이다.

그 중심은 사랑과 온유일것이다.

 

 

말은 쉬울수 있다. 내 스스로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참 약하다는것을 잘 알고 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마음을 중심에 심어 주셔야만 가능한 일일것이다.

 

특별한 연단의 시간없이 왕이 된 사울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조급해졌다.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어떻게 하면 스스로 자신의 나라를 잘 지킬수 있으며, 백성들의 마음을 잘 얻을수 있을까 항상 고심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자신을 세우셨음에도, 그 중심에는 자신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기에 하나님께서 지키실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하나님보다 백성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먼저 였으며, 자신의 위상을 지키며 높아지는것이 최우선이었다. 하나님의 마음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있었지만, 거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순간 모든것을 잃고 있었다. 모든것의 근원되신 여호와를 버리는 순간부터...

사울 스스로가 하나님을 버리고 있었다.

사무엘이 와서 사울을 책망하며 하나님의 뜻을 전했지만, 그 순간...사울의 관심은 오직 자신이었다.

 

"사울이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을지라도 이제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내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하더라"(삼상 15:30) 

 

사람의 비위만을 맞추는 사람은 자신만을 위하는 사람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열매를 원하는 사람이다.

기다릴줄 아는 여유가 없다. 모든 일에 조급하다. 두려움이 많다. 불안하다. 당장 무슨 방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죽을것만 같다. 할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하려고 한다. 사람을 붙잡고 많은 말들을 하려고 한다.

사람들의 위로와 인정을 받으면 한 순간에 행복해 한다. 주위에 사람이 없으면 고통스러워 한다. 사람들과 멀어지면 세상에서 버려진것 처럼 느껴진다. 자기 중심적이다. 하나님의 뜻을 자신의 행복과 성공을 위해서만 생각할수 있다. 사람의 비위만을 맞추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비위를 맞출수가 없다. 오직 자신을 높이는 일에, 자신의 만족을 얻는 일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경배와 찬양의 대상이 아니라 이용의 대상일뿐이다.

응답이 조금 주어 지면, 그때 잠시 하나님을 찬양 할 뿐이다.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 금방 투덜거리는 모습으로 바뀔것이다. 그러기에, 무릎 꿇기는 더 어려울수 밖에 없다. 사람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은 영적인 세계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가치를 알수가 없다. 오직 눈에 보이는 성공만이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모든것을 판단하려고 할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며,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는 사람은 무릎을 꿇게 될것이다. 걷고 있는 그 길이 힘들더라도,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마음에 품는다. 누가 알아 주든, 알아 주지 않든, 그 입술에는 하나님에 대한 노래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다.

어느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영육간에 보여 주고 싶은 응답이 많을것이다. 세상적인 방법과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의 시간까지 믿음으로 잘 견디었다고 하나님께서 칭찬하고 싶으실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형통함을 누리는 사람일것이다.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하시는 축복... 일의 성공.실패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늘 함께 하는 사람. 세상에 동요되지 않는 사람. 육신에 거하지만, 늘 하늘에 속한 사람. 하나님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형통함의 축복일것이다. 아브라함, 요셉, 욥, 다윗의 삶이 우리 앞에서 그 축복을 말해 주고 있다.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사울을 위하여 슬퍼함이었고 여호와께서는 사울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을 후회하셨더라" (삼상 1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