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Weekly칼럼(51-100)

마음은 영적 세계의 통로다. (55)

Joseph Lee 목사 2013. 10. 31. 05:03

 

 

마음은 영적 세계의 통로다. (55)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삼상 30:6)

"사울이 갑자기 땅에 완전히 엎드려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로 말미암아 심히 두려워 함이요 또 그의 기력이 다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루 밤낮을 음식을 먹지 못하였음이니라" (삼상 28:20)

 

 

인생의 삶 속에서 가장 힘든것은 마음을 지키는 일인것 같다. 사탄의 불화살이 날아 올때 깨어서 대적하고, 마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묶는 순간에는 승리하는 삶을 사는것 처럼 느껴지지만, 얼마 가지 못해서 광야 길에서 맛본 마라의 쓴물처럼 이해되지 못하는 일들, 지금 까지 기대했던 일과 달리 바로 눈앞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펼쳐 질때의 마음의 갈등과 요동은 이전의 승리의 기쁨보다 몇배 더 큰 아픔을 주는것 같다. 이럴때 무엇보다 마음이 강팍해지기 쉽다. 기쁨을 잃어 버리게 된다. 마음 한 가운데 우울한 감정이 자리 잡게 된다. 마귀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적 전쟁 하는것보다 내 안의 기질과 자신과의 싸움이 훨씬 어려운것 같다.

죄의 본성이 있기 때문일것이다. 하나님보다 내 자신을 찾고 싶은 그 본성...

 

다양한 방법으로 마귀는 우리를 공격한다. 가장 핵심적인 공격의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 버리도록 하는것이다. 우리의 생각과는 다르게, 기도와 정반대의 일이 되도록 끊임없이 공격하며, 하나님에 대한 절대 믿음을 놓게 하려고 가장 민감한 수단을 동원해서 무너뜨리려고 한다. 핵심 목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믿음이겠지만, 마귀가 가장 차지 하고 싶은것은 우리의 마음 중심이며, 생각의 중심이다.

마음은 영적 세계의 중요한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영이 자리 하는 부분도 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중요한 Key가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신 세계와도, 영적인 세계와도 동시에 연결 시키는 고리 역할을 한다.

"하나님을 신뢰하면 뭘 하나, 일이 이렇게 어려운데...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매달린다고 되는것이 뭐가 있나...

꼭 기도를 해야 하나. 바로 눈앞의 응답이 보이지 않을때 기도하는것이 오히려 더 좌절이 되는데. 기도하고 좌절을 느끼는것보다 기도하지 않고 편안하게 있는게 더 나은것 같은데..."

처음에는 단순한 마음의 갈등으로 시작된 생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영적인 기질로 자리잡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영적인 color가 되어서 무색 무취한 그리스도인이 되어 버리고 만다.

세상에 나가서도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특별한 아무런 소명과 사명...아무런 도전도 하고 싶지 않는 떠밀리는 인생. 이래도 저래도, 되는대로 사는 인생이 되어 버린다. 나중에는 주변이 어떻게 돌아가며, 영적인 세계에서 무슨일이 일어나며, 그 가운데 내 모습은 어떤지...통찰력을 상실하게 되어 버린다. 대충...되는대로...크리스챤이 되어 버린다.

 

당장에는 표가 나지 않을수 있다. 지금은 괜찮을 수 있다. 그러나, 마귀는 가만히 있지 않는다.

어떻게든 중요한 영적 통로가 되는 가장 핵심되는 부분인 마음을 완전히 마비 시키려고 노력할것이다. 이 세상에서 거룩한 영적인 반응을 하지 못하도록, 영적 도전보다는 무기력한 마음을 먼저 불어 넣어 줄것이다. 영적으로 마비가 되었기에, 사탄의 불화살과 영적 전쟁에 둔감할수 밖에 없다. 무관심하게 만든다. 영적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그 자신의 마음이 이미 영적 그로기 상태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 상황은 이미 영적으로 둔감한, 무지한, 마비된 상태일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도 그러한 영혼을 사랑하시기에 그냥은 내버려 두시지 않으실것이다. 돌이키시려고, 영적인 중요한 통로인 마음 중심을 다시 차지하시려고 일하실것이다.

사사기에 흐르는 핵심된 내용이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죄라고 하신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가장 친밀한 표현이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영적인 고백이다. 호흡이 없으면 영혼이 탁해지며, 메마르게 된다. 메마른 영혼은 생각의 혼란을 가지고 오게 하며, 분별력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당연한 영적인 원리이다. 기도가 없으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읽을수가 없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며, 어떻게 하길 원하시는지에 대해서 아무런 반응이 있을수 없다.

기도가 없는데서는 믿음의 표현도, 하나님을 움직일수가 없다.

가장 타격을 받는 부분이 생각과 마음이다. 하나님과 점점 분리되어 지고 있다는 죄책감, 두려움과 강팍한 마음이 서서히 자리 잡게 된다. 숨고 싶은 마음, 가만히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강해진다.

기도와 예배의 자리를 멀리 하게 되고, 말만 잘하는 능력없는 사람이 될수 있다.

마음의 혼란. 복잡한 생각들. 갈등. 좌절. 낙심...기도없는 사람들에게 가득 차 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기도 하는 사람에게도 있을수 있는 가능한 모습이지만 곧 회복될것이다. 그것이 기도의 능력이다. 기도 없는 사람은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해 버리고, 기도 하기도 전에 미리 그 엄청난 기도의 능력을 무시해 버린다.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필요하다. 마음을 지키는것은 영적 세계에서 중요한 문제이다. 마음이 영적인 세계를 들어가는 통로가 되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것이요.(마 5:8)

마음을 잘 지키는 사람은 늘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게 되어 있다. 실수와 넘어짐에서 금방 돌이키게 된다. 모든 것을 하나님 관점으로 보게 된다. 그것을 통해서 비젼과 사명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역사의 크신 손길을 보게 된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로운 자는 없다. 그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한것이다. 그 은혜 가운데 사모함은 우리의 의지와 감정이 포함될수 있다. 마음을 지키는데는 은혜속에서 선택의 문제가 있을때가 많을것이다. 하나님앞에서 결단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지키는 순간, 하늘 나라의 영적인 통로가 열리는것을 체험하게 될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기도는 마음에 하나님으로 채워지게 된다. 자신을 위해서 간구하던 기도가 하나님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 마음에 하나님이 충만해 지기 때문이다.

반대의 악순환 또한, 우리에게 많이 일어난다. 불만, 불평이 강팍한 마음으로 연결되어 지고, 그 마음이 서서히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세속적인 관점의 신앙, 자기 중심적인 믿음 생활... 사탄이 마음과 생각을 장악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기에 우리에게서 종종 볼수 있는 모습이다.

 

영적인 통로인 마음을 어떻게 지켰는지에 대한 좋은 예가 두사람을 통해서 분명하게 볼수 있다. 사울왕을 피해서 사글락에서 피신을 하면서 성읍에 정착했던 다윗과 따르는 사람들이 전투에 나가 있는 동안 아말렉에 의해서 도적질당하고, 처자식들이 끌려 갔다. 함께 한 사람들이 화가 난 나머지 돌을 들어서 다윗을 치려고 했을때 다윗의 마음은 다급해졌다. 무척 혼란 스러워졌다. 당황스러웠다. 순간 어쩔줄 모르는 상황이 되어 버렸지만, 다윗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마음속에 늘 채워져 왔던 하나님을 찾게 된다. 그는 하나님 나라의 통로를 어떻게 여는지, 어떻게 들어갈수 있는지 아는 사람이었다. 다른 어떤 방법으로는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육적인 다급한 문제를 하나님께 의지하기 시작했다. 하나님의 평안이 함께 하셨다. 하나님께 물어 보았다. 따라 가면 모든것을 되찾을수 있는지...기도부터 시작했다. 그 영적인 통로인 마음을 가득 채웠던것은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용기였다. 하나님께서 그 통로를 통해서 열어 주셨던 부분이다. 다윗은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것을 아는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에서도 마음 중심을 잡는 모습,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지키려고 애썼다.

기도만 많이 한다고 충분한것은 아니다. 영적 원리도 함께 알아야 한다. 더 중요한것은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마음을 잘 다스릴수 있어야 한다. 하늘 나라의 큰 능력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진정한 자유자의 모습이다. 마지막 시간까지 싸워야 할 대상은 우리 안에 있는 두려움일것이다.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어두움에서 부터 오는 두려움...

두려움이 머무는 곳에서 사탄의 역사가 함께 하기 때문에 꼭 이겨내야 한다.

 

한편, 마음을 못지켜서 무너진 사람이 있다.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고,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달란트로 나라를 이끌어 왔지만, 하나님보다는 자신의 힘을, 하나님을 찾기 보다는 자신의 명예를 더 소중히 여기며, 이 모든것을 자신의 힘으로 지키려고 온갖 힘을 다 쏟았다. 그 자신을 무너뜨린것은 외부의 적도 아니요, 그 자신의 마음이었다.

사무엘을 통해서 많은 경고를 받았고, 하나님으로부터 여러가지 권면을 받았지만, 사울은 그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데 어떤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 중요성조차 알지 못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그 마음이 이끄는대로 행동했다. 하나님을 버리는 곳에서 영적 진공상태는 존재하지 않는다. 영적인 변질만이 있을뿐이다. 영적인 세계는 빛과 어두움...두 세계만이 존재할 뿐이다. 마음을 지키지 못한다는것은 어두움에게 그 열쇠를 쥐어 주는것이다. 그 마음의 자유의지조차 어두움의 세력에게 넘겨 줄수 있다는 것이다. 사울에게 하나님은 이용대상이었다. 하나님을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하고 싶었다. 전쟁에서의 승리와 이스라엘을 견고하게 지켜 주는 역할만 하는 수호신일뿐이었다. 마음을 내어 주는 순간, 모든것을 다 잃어 버렸다. 사명, 비젼, 영적인 세계, 영적인 가치...모든 것이 그의 손에서 사라져버렸다. 영적인 상실은 시간이 흐르면 육적인 상실과도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도 기회를 주시다가 받아 들이지 못하면, 때가 되면 많은 부분을 거둬 들이실것이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던 사울에게 하나님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오직 심판자로서 다가 올뿐이었다. 그 순간, 사랑의 하나님을 상실해버렸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 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 (삼하 3:1)

그 마음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의 결과는 분명하게 차이가 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떄에 물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가서 보니 그 집이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눅 11:24-26)

사탄의 속성은 끈질김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처럼 지적인 능력이 있으며, 감정도, 의지가 있는 존재이다. 악의 근원이며, 하나님과의 모든 관계를 파괴하는것이 주된 목적이다. 할수만 있다면 하나님께서 택하신 영혼조차 무너뜨리려고 쉬지 않고 역사한다. 포기를 모를 정도로 달려든다. 결코 쉽지 않은 존재이다.

이러한 어두움의 세력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놀라운 권세 아래 묶일수 있다는것은 엄청난 기적이다.

그 권세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하다. 모든 믿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권세가 주어 졌지만 아무나 누릴수 있는것은 아니다. 영적인 원리를 알고, 기도를 통해서 그 권세를 사용하는 사람들만이 누릴수 있다.

사탄은 자신이 거했던 곳을 쉽게 놓지 않는다. 그곳이 우리의 육신도 될수 있지만, 우리의 마음을 차지 하고 싶어서 발버둥을 친다. 그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도 가장 충만하기 원하시는 곳이기 때문이다.

한번 물러 갔던 사탄은 꾸준히 틈을 볼것이다. 방심하면 안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돌아 올때는 또 다시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더 강한 세력을 데리고 들어 올것이다. 쉽게 내주지 않으려고 할것이다.

사탄이 차지 하고 있던 영혼을 다시 빼앗아 오는 것은 빛과 어두움의 영적 전투를 의미한다. 생명을 건 중보 기도없이는 사탄은 비웃을것이다. 기도와 금식외에는 그 어떤것도 사탄을 묶을수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어두움의 권세를 물리칠수는 있지만, 그것을 지키기는 더 어렵다는 것이다.

나와 함께 하지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눅11:23)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만 어두움이 마음을 차지 할수 없다는 영적인 원리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 이름의 권능이 입술의 능력이 되어서 사탄을 순간 쫓을수 있겠지만, 그 이름의 능력이 삶속에서 마음을 지키는것은 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탄이 마음을 차지하기 시작할때는 마음이 강팍해진다. 짜증과 혈기가 올라온다. 감사와 찬양이 사라져 버린다. 모든것이 귀찮아 지기 시작한다. 바로 옆 사람이 미워진다. 안 좋은 생각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용서가 되지 않는다.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쓸데 없는 말이 많아진다. 입술을 지키기가 힘들다. 세상에 관심이 많아진다. 예배의 자리가 멀어진다. 예수님의 은혜에 무감각해진다...등등. 하나님께서 마음의 영적인 상태를 가늠할수 있는 Index로 주신 측정 지표이기도 하다.

 

앞으로도 얼마든지 넘어 질수 있다. 문제는 다시 일어나야 하는것이다. 일어나지 못하는것이 문제이다. 방황도, 좌절도 충분히 가능하다. 연약함이 있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부족한 존재이기에 자신을 정죄하기도 한다.

넘어졌을때...사탄은 조소한다. 조롱한다. 그것밖에 안되는 존재가 바로 나라고 마음에 속삭인다. 마음이 녹아내린다. 기억해야 한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가 친히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을. 우리의 연약함을 홀로 지셨다는 진리를.

 

 

감사하고 찬양할때 기적이 일어난다. 마음 중심을 하나님이 차지 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가 우리 마음에 임재하기 때문이다. 입술의 능력이 아니라 삶의 능력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곳에서는 사탄이 거할곳이 없기 때문이다. 어두움을 향한 영적 통로가 완전히 닫히게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사탄의 모든 공격이 철저하게 무력화 되었다는 분명한 sign이기에... 감사는 능력이다. 감사할때 하나님께서는 함께 춤을 추신다. 찬양할때 성령께서는 함께 노래를 부르신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시간이며, 공간이다. 천국이 이 땅에서 우리의 것이 되는 시간이다. 그러기에 성령께서도 마음껏 역사하실수 있다. 육적인 찌꺼기들이 감사속에서 녹아내린다. 감사할수 없는 시간에 감사해야 한다. 찬양할수 없는 시간에 찬양해야 한다.

어두움의 역사가 무기력해지기 때문이다. 성령께서 즐거움을 감당하지 못하는 시간이 되실것이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은 이러한 영적인 원리를 잘 알고 있었다. 다른 어떤것 보다 하나님을 누렸던 사람이었고, 그 마음에 하나님이 충만히 거하는 사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다스릴줄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반면,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이스라엘 왕으로 세워졌지만, 사울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데 철저히 실패한 사람이었다. 수많은 달란트와 능력이 있었지만, 그 방향성이 잘못되었다. 그리고, 무너 졌다.

어두움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무기력해졌고, 영적으로 마비되었다. 하늘 나라와 소통할수 있는 통로가 완전하게 막혀버렸다. 그 자신이 막아버렸다. 조그마한 어두움이 점점 자라서 어두움의 왕국이 되어 버렸고, 그 마음 중심을 차지해 버렸다. 이러한 영적인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서 분명하게 육적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며, 마음 중심을 지키는것은 하나님을 위한 일이 아니다.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한 일이다.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이 땅에서 허락하신 축복의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