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Column

마귀는 우리가 두려워 할 때, 더 힘을 얻습니다. 두려움을 대적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Joseph Lee 목사 2015. 12. 23. 16:59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3:25) 생각지 못한 일이 생길 때, 두려움이 생깁니다. 두려움처럼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마귀가 이 두려움을 통해서 강하게 역사한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되면, 하나님보다 자신의 문제가 훨씬 더 커 보이게 됩니다. 경외와 두려움은 모두 같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Fear이지만,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두려워하는 것도 Fear입니다. 마귀가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사람에게 두려움으로 역사해 왔습니다. 두려움은 큰 파괴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쩔쩔 매게 합니다. 실제로 일어나지도 않았는데, 두려움에 잡히게 되면, 이미 현실이 되어 버린 것과 똑같습니다. 두려움의 또 다른 파괴력은 우리가 두려워할수록, 그 두려움은 현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욥이 가장 두려워 했던 것은 자녀들이 하나님을 배반해서 무슨 일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그에게 현실로 왔습니다. 그에게 재앙이 왔을 때, 욥은 "나의 두려워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그의 신앙이 순전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두려움의 불신앙이 내재 되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하나님께서 벌을 주시면 어떻게 하나?' 물론 이런 두려움 때문에 재앙이 임했던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고백을 통해서 보았을 때, 욥 안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동시에, 하나님께서 "혹시나 어려움을..."하는 불신도 있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하게 신뢰하지 못했던 욥의 모습이었습니다. 연단을 통해서 그는 귀로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땅에서 두려움처럼 강하게 역사하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두려움이 더 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두려움을 기도의 능력으로 정복해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을 예수의 이름으로 대적해야 합니다. 그럴 때, 두려움이 현실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