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세 친구중 한명인 빌닷은 법률가였습니다. 역사에도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논쟁하는 것을 상당히 즐겼습니다. 모든 것이 흑백 논리 였습니다. 옳고 그름이 분명했습니다. 빌닷에게 하나님은 오직 심판하시는 주님이셨습니다. 죄를 지었으니 응당 벌을 받아야만 한다는 논리였습니다. 욥을 자신이 가진 논리 대로 끌고 가려고 했습니다. 그는 욥에게 죄인이라고 쏘아 붙였습니다. 악인은 반드시 고통을 당해야 한다는 분노를 보이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빌닷에게 하나님은 채찍을 들고,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고 있는지 감시하는 그러한 분이셨습니다. 이런 신앙은 율법적인 모습으로 연결 됩니다. 숨이 막히게 됩니다. 빌닷은 욥을 위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처음 받았던 모세는 백성들이 범죄할때마다 여호와께 엎드렸습니다. 살려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런데, 빌닷의 모습 속에서는 자비와 사랑이 없었습니다. 오직 법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이 율법이 욥만 고통스럽게 한게 아니라 나중에는 예수 그리스도까지 못 박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율법의 저주를 다 짊어지시고, 죽음으로 대가를 지불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다른 영혼들을 율법으로 죽이려고 할때가 있습니다. 흑백논리로, 율법주의로 정죄하는데 익숙할 수 있습니다. 세 친구와 욥의 변론이 깊어 질수록 빌닷의 대화는 적어집니다. 인생에 대한 깊은 대화로 들어갈수록,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경륜에 대해서 빌닷의 말수는 줄어듭니다. 율법의 한계입니다. 율법은 정죄와 조소만 있을뿐 해결책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신도 욥을 정죄했지만, 정작 인생의 깊이를 법으로 다 해석할수 없는 것을 발견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모든 문제들이 공식대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생각을 넘어서는 이해 안되는 일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그렇게 자신 만만했던 빌닷의 대화도 점점 발언권이 약해 지는 것 또한 율법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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