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7회)■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시27:1-5)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시편 27편을 노래했던 다윗이 말하는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 비롯되는 존재의 고백임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평안해지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두려움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사람은 두려움을 이겨 내기 위해 더 많은 것을 붙잡으려 합니다. 더 많은 능력, 더 많은 준비, 더 많은 의지할 대상을 찾습니다. 그러나,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는 오직 하나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다윗이 노래했던 히브리어 <오르-אוֹר>는 빛이라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영광을 뜻합니다. 빛은 스스로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빛이 비추는 순간 모든 것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면 인생의 문제를 뛰어넘어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깊은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상황이 변해서가 아니라 존재의 중심이 하나님으로 충만해지기 때문입니다.
영성의 여정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에서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에 관심을 갖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에 마음이 머물게 됩니다.
그리고, 영성이 깊어질수록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욱 갈망하게 됩니다.
다윗은 원수들의 위협 속에서 승리를 구하지 않았습니다.
안전을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 가지"를 구했습니다.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삶이었습니다.
영혼이 성숙해질수록 소원은 줄어들고 갈망은 깊어집니다.
많은 것을 원하던 마음이 하나님 한 분만을 원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움은 눈으로 보는 형상이 아닙니다.
그분의 거룩하심과 오래 참으심, 흔들림 없는 신실하심, 끝없이 흘러나오는 사랑의 영광입니다.
영혼은 그 아름다움을 경험할수록 세상이 약속하는 수많은 빛들이 잠시 반짝이다 사라지는 불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깊은 영성은 하나님을 찾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 외에는 더 이상 찾을 것이 없음을 발견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됩니다.
그래서 환난은 하나님을 더욱 간절히 찾게 하시는 하늘의 방법이 됩니다.
평안한 날에는 자신의 힘을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지만, 광야에서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게 됩니다.
잃어버림은 때때로 더 깊은 갈망의 시작이 되고, 침묵은 더 선명한 음성을 듣게 하는 거룩한 기다림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이 말씀 속에 감추어진 영적인 비밀은 하나님께서 환난으로부터만 지키시는 것이 아니라, 환난 가운데서 하나님 자신 안으로 숨기신다는 데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하나님께서 고난을 제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종 고난보다 더 깊은 은혜를 허락하십니다. 상황을 바꾸시는 것보다 사람을 변화시키시고, 환경을 옮기시는 것보다 영혼을 하나님의 품 안으로 이끄십니다.
더 깊은 영성의 여정을 걸어갈수록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그 평안은 문제가 해결되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을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을 더욱 깊이 신뢰할 때 흘러 들어오는 하늘의 선물입니다.
한밤중 하늘의 별은 낮에 사라진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도 그러합니다.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에도, 응답이 더딘 것 같은 순간에도, 주님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영혼을 붙들고 계십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보이는 일을 하셨기에 믿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함께 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시편 27편>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부르는 평안의 노래가 아닙니다.
두려움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발견한 사람이 부르는 Song of Songs, 영혼의 가장 깊은 찬양입니다.
원수보다 크시고
환난보다 깊으시며
어둠보다 먼저 계셨던 하나님
이 세상 누구보다도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오늘도
그분의 <오르-אוֹר>
두려움이 끝나는 곳에서 시작되는 빛
그 빛이 영혼 깊은 곳에 비추기 시작할 때 삶은 더 이상 상황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 빛은 인생의 길을 비추실 뿐 아니라 존재를 새롭게 하십니다.
폭풍은 멈추지 않았으나
영혼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파도는 여전히 높았으나
마음은 더욱 깊어졌습니다.
주님은 폭풍을 거두시기보다
폭풍 한가운데 빛이 되어 오셨고
어둠을 없애시기보다
어둠 속에 함께 서 주셨습니다.
어느 날
깊은 침묵 속에서 깨닫게 됩니다.
평안은 바람이 멈춘 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은 문제가 사라진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거룩한 빛이 영혼에 스며들 때
폭풍은 더 이상 두려움이 아니고
주님은 더 이상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빛은 길만 비추지 않고
존재를 새롭게 하며
마침내 영혼은 잠잠히 노래합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것이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깊은 안식임을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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