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6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시22:6-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시편 22편은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나는 믿음의 노래입니다.
벌레라 불리고, 조롱당하며, 철저히 낮아진 영혼의 눈물입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다윗이 사람들의 조롱보다 더 깊은 영적 세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현재의 고난을 넘어 존재의 근원으로 내려갑니다.
상처보다 깊고, 눈물보다 오래된, 모태의 침묵 속으로 내려갑니다.
그곳에서 발견하는 것은 자신의 연약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먼저 다가오신 사랑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마음 깊은 곳에 울림으로 다가오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가알 – גָּאַל>
<가알 – גָּאַל>은 잃어버린 것을 되찾기 위해 기꺼이 값을 치르는 가장 가까운 친족 구속자를 의미합니다.
멀리서 불쌍히 여기는 사랑이 아니라 자신의 일처럼 책임지고 품는 사랑입니다.
말씀 가운데 하나님은 언제나 <가알 – גָּאַל>이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사람이 손을 내밀기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붙드셨습니다.
다윗은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도 그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셨나이다”
이 고백은 기억의 시간을 넘어 존재의 근원을 드러냅니다.
믿음은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영혼이 하나님을 알기 전에 이미 하나님께서 영혼을 알고 계셨습니다.
사랑을 배우기 전에 사랑받고 있었고, 의지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붙들고 계셨습니다.
이 깨닫음 가운데 영성의 깊은 문이 열립니다.
주님을 향해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미 내려와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먼저 찾아오셨고
주님께서 먼저 기다리셨으며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자신이 하나님을 붙들고 있다는 생각은 점점 사라집니다.
오히려 한 걸음 한 걸음 지나온 길을 돌아볼 때마다 붙들고 있었던 분은 언제나 하나님이셨음을 깨닫게 됩니다.
모태는 빛이 없는 곳입니다.
기억 이전의 시간이며
언어 이전의 시간이며
존재 이전에 창조주의 손길이 머물던 시간입니다.
그 침묵 속에서 생명은 자라나고 있습니다.
영혼도 그러합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하시고
먼저 품으시며
먼저 함께하십니다.
가장 깊은 믿음은 많은 것을 아는 상태가 아닙니다.
존재의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는 것입니다.
설명할 수 없어도 알게 되고, 보이지 않아도 신뢰하게 되는 거룩한 모습입니다.
이제 현실로 돌아와 봅니다.
조롱은 현재를 흔들 수 있습니다.
상황은 마음을 흔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태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사랑은 존재 자체를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파도가 수면을 뒤흔들어도 바다의 심연은 고요하듯
삶의 풍랑이 거세게 몰아쳐도 하나님 안에 감추어진 영혼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가알 – גָּאַל>의 사랑은 조건이 아니라 본질입니다.
필요할 때만 찾아오는 도움이 아니라
존재의 처음과 끝을 감싸는 언약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영혼이 성숙해질수록 흘러나오는 고백은
내면의 깊은 질서가 있습니다.
고요함 속에서 흘러 나오는 영혼의 심연
침묵 속에서 더욱 깊어지는 영혼의 비밀입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이 짧은 고백 안에는 측량할 수 없는 영적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알고 계셨던 하나님
눈물 흘리기 전부터 품고 계셨던 하나님
길을 잃기 전부터 기다리고 계셨던 하나님.
인생의 한 밤중의 시간을 지나며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구원의 시작은 영혼의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었고,
믿음의 뿌리는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이었습니다.
진정한 영성은 더 높이 올라가려는 열심이 아니라,
이미 영원한 사랑 안에 잠겨 있음을 알아가는 은혜의 거룩한 깨달음입니다.
바람은 나뭇잎을 흔들지만 뿌리를 흔들지 못합니다.
세월은 시간을 바꾸지만 언약을 바꾸지 못합니다.
모태의 침묵 속에서 시작된 <가알 – גָּאַל>의 사랑은 오늘도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잔잔히 흐릅니다.
강물처럼 흐르고
새벽빛처럼 스며들고
숨결처럼 머무르며
마침내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갑니다.
그분이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깊어지는 영성, 넓어지는 지경: 네 가지 영적 디딤돌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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