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2회)■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그가 여호와 앞에 오래 기도하는 동안에 엘리가 그의 입을 주목한즉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엘리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느냐 포도주를 끊으라 하니 한나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 주여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삼상1:11-15)
“나는 마음이 슬픈 여자라…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 (삼상 1:15)
말씀이 깊어질수록 한나의 기도는 간구를 넘어 영혼의 신비로 다가옵니다.
처음에는 아들을 얻기 위한 간절한 부르짖음처럼 보였지만, 오래 묵상할수록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소원을 이루시는 Story보다 한 사람의 영혼을 하나님께로 이끌어 가시는 과정을 보여주고 계심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람은 고통이 사라지는 것을 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을 더 깊은 응답으로 허락하시는 것 같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얻지 못한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의 진짜 결핍은 아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외에 어느 것으로도 채워질 수 없는 영혼의 갈망이 그의 안에서 깨어나고 있었습니다.
그의 눈물은 슬픔을 넘어 하나님께로 쉼 없이 흘러 가는 탄식의 강이었습니다.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혼을 깊게 만지실 때 종종 먼저 결핍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배부른 사람은 떡을 찾지 않습니다.
목마르지 않은 사람은 샘물을 찾지 않습니다.
어둠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은 빛의 소중함을 알지 못합니다.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결핍이라는 옷을 입고 찾아오십니다.
가까이, 아주 가까이...
때로 기다림이라는 얼굴로 다가오십니다.
때로 침묵이라는 방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육신은 그것을 고난이라 부르지만 영혼은 그것을 하나님께로 가는 통로라고 부릅니다.
한나는 그 통로로 인도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시간이 갈수록 소원을 향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문제를 안고 성전에 들어갔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그의 기도가 되었습니다.
호흡이 눈물이 되고, 그 눈물이 간절함이었습니다.
한나의 깊은 영성의 비밀입니다.
기도가 성숙해질수록 사람은 응답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들게 됩니다.
처음 믿음은 하나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 나아갑니다.
그러나 영혼이 성장할수록 하나님만이 목적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평안이 되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이 되시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위로가 되십니다.
그때부터 영혼은 환경을 초월하는 영적인 세계를 배우기 시작합니다.
한나가 기도하는 모습을 보며 엘리는 술 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깊은 영성은 사람이 보기에 쉽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입술은 움직이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사람의 언어가 끝나는 곳에서 하나님의 언어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어떤 슬픔은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아픔은 문장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기다림은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때 영혼은 침묵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침묵을 들으십니다.
사람은 음성을 듣지만 하나님은 마음의 깊이를 들으십니다.
사람은 문장을 듣지만 하나님은 심령의 중심을 들으십니다.
가장 강력한 기도는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녹아 내리는 기도입니다.
히브리어로 <카바드- כָּבַד>는 무겁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할 때도 사용됩니다.
영광은 가벼움이 아닙니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은혜의 무게입니다.
깊은 눈물을 통과한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오랜 기다림을 견딘 사람의 침묵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서진 사람의 사랑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무게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을 응답으로 주시기 전에 먼저 한나를 만드셨습니다.
사무엘은 응답이었지만, 한나는 작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응답보다 사람을 먼저 빚으십니다.
응답은 한순간에 주실 수 있지만,
영혼은 시간을 들여 다듬으십니다.
그래서 기다림의 시간은 버려진 시간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빚으시고 만드시는 은혜가 계속되는 시간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시간에 하나님은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다듬고 계십니다.
한나의 눈물은 결국 아들을 얻기 위한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 한 분으로 만족하는 영혼으로 빚어지는 눈물이었습니다.
돌아보면 영혼의 가장 깊은 성숙과 성장은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분이 없었던 그 시간에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버려진 것 같았지만 가장 가까이 안기고 있었고,
침묵하시는 것 같았지만 가장 깊이 일하고 계셨으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으로 채우고 계셨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Announcement>
Loving Worship이 기도로 준비하는 특별한 예배
RUACH CONCERT
오는 8월 1일(토) · 2일(일) 6:30PM
LA The Novo Theater
소향 · 션 · 조혜련 · 리노
"RUACH(루아흐)"는 성령의 임재를 뜻합니다.
이번 콘서트는 공연을 넘어, 찬양과 간증 가운데 하나님의 위로와 회복을 경험하는 깊은 예배의 자리입니다.
가족과 친구, 믿지 않는 이웃까지 초대하여 복음을 나누고 함께 은혜를 경험하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SPECIAL PROMOTION
(5월 23일 ~ 6월 말까지)
티켓 3장 구매 시 1장을 선물로
($50 & $60)
한 사람을 향한 초대가 한 영혼의 인생을 바꾸는 은혜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Ticket 문의
562-766-9494
213-357-1565
Ruach 홍보영상_3 |Praise & Talk Concert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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