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0회)■ "그 때에 예수의 어머니와 동생들이 와서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를 부르니 무리가 예수를 둘러 앉았다가 여짜오되 보소서 당신의 어머니와 동생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찾나이다 대답하시되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내 어머니와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막3:31-35)
“누가 내 어머니이며 동생들이냐?”
이 말씀 앞에 설 때마다 멈추어 잠시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은 혈연을 가장 깊은 관계로 여기지만, 주님께서는 그보다 더 깊고 영원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밖에서 주님을 찾고 있었지만, 주님께서는 둘러앉아 말씀을 듣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진정한 가족의 의미를 새롭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주님께서 혈연을 부정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형성되는 더 높은 차원의 관계를 가르쳐 주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가족은 현실의 시간 속에서 주어지지만, 영의 가족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가운데 영원 속에서 맺어집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를 우리의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부르셨습니다.
한 가지 깊은 영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까이 있는 사람이 가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사람이 가족이라는 사실입니다.
주님 곁에 앉아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비록 혈연이 없어도 가장 가까운 가족이 됩니다.
반대로 육신적으로 가까워도 하나님의 뜻 밖에 머물면 영적인 친밀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헬라어가 있습니다. <아가페- ἀγάπη>입니다.
아가페는 조건과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영적 가족은 혈통이 아니라 아가페로 연결된 공동체입니다.
같은 아버지를 모신 자녀들이기에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함께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람들의 인정과 관계에 마음을 두곤 합니다.
누가 저를 알아주는지, 누가 저를 가까이 여기는지에 민감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님께서는 더 중요한 질문을 하고 계십니다.
“너는 나의 뜻 안에 머물고 있느냐?”
주님께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사람과 연결되어 있는가보다, 얼마나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살아가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이미 예수님의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나 같이 부족한 자를 향하여 주님께서 "내 형제요, 내 자매요, 내 어머니라" 부르시는 그 은혜가 참 감사합니다.
주님의 가족이 되는 길은 특별한 능력이나 공로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에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 나라 가족의 표지이며, <아가페- ἀγάπη>는 그 가족을 하나로 연결하는 하늘의 끈입니다.
또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누가 내 어머니냐"라고 물으셨지만, 결코 어머니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 가운데서도 어머니를 제자에게 맡기시며 끝까지 돌보셨습니다(요19:26-27).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는 사람은 세상의 관계를 끊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으로 관계를 더욱 온전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의 형제들은 주님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들의 불신을 정죄하기보다 기다리셨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변화되었습니다.
주님의 동생 야고보는 초대교회의 기둥이 되었고, 유다는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 부르며 믿음의 편지, <유다서>를 남겼습니다.
주님의 침묵은 포기가 아니었고, 주님의 기다림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 지금은 멀리 있는 사람, 지금은 믿음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때에는 놀라운 은혜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오늘 주님 곁에 앉아 있는 사람보다, 지금은 밖에 서 있는 누군가가 내일 하나님 나라의 기둥이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기에 사람의 현재를 보고 판단하기보다,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영성을 소유하고 싶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가족은 혈연으로 맺어진 공동체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 된 거룩한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족은 같은 믿음과 같은 소망, 그리고 같은 아가페의 사랑으로 연결되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함께 이루어 가고 있기에요.
그 이름이 바로 성도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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