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1회)■ “그 때에 히스기야가 병들어 죽게 되니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가 나아가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네 집에 유언하라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하고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 하고 히스기야가 심히 통곡하니 이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히스기야에게 이르기를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내가 네 수한에 십오 년을 더하고”(사38:1-5)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사38:5)
히스기야의 Story를 묵상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 <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라는 헬라어 단어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는 후회나 감정적인 회개가 아닙니다.
내면의 중심이 하나님께로 옮겨지는 영적인 거룩한 전환을 의미합니다.
생각이 바뀌고, 시선이 바뀌고, 삶의 근거가 바뀌는 삶의 방향 전환입니다.
히스기야는 죽음의 선고를 들었습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선지자를 통해 전해진 확정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더 이상 기도할 이유도, 기대할 이유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히스기야는 죽음의 선고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크게 바라보았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할수록 깨닫게 되는 것은, 히스기야가 얼굴을 벽으로 향한 행동이 슬픔의 표현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 벽은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선택하는 영적인 경계선과도 같습니다.
사람들은 절망 앞에서 문제를 바라보지만, 히스기야는 벽 너머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육신의 눈에는 벽이 있었지만 영의 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열려 있었습니다.
믿음의 여정 가운데 가장 어려운 순간은 고난 자체보다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인 것을 보게 됩니다.
열심히 살아왔고, 최선을 다해 섬겨왔는데도 예상치 않은 한 밤중의 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히스기야 역시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히스기야는 자신의 열심과 공로를 내세우기보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내면의 모든 것을 쏟아놓았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주장이 아닌 그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깊은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은 문제를 먼저 해결하시는 분이 아니라, 먼저 사람의 중심을 깊이 만나 주시는 분이십니다.
히스기야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15년의 생명 연장이 아니었습니다.
기도를 들으시고 눈물을 기억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난 것이었습니다.
생명이 연장된 것은 그 만남의 열매였을 뿐, 본질은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이었습니다.
특별히 “내가 네 눈물을 보았노라”는 말씀은 영혼 깊은 곳을 울리게 합니다.
하나님께는 나의 눈물이 언어가 됩니다.
사람에게 설명할 수 없는 탄식, 입술로 표현하지 못하는 아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상처가 하나님 앞에서는 가장 진실한 기도가 됩니다. 눈물은 믿음이 약해서 흘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 외에는 붙들 것이 없음을 아는 영혼에게서 흘러나오는 거룩한 고백입니다.
<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의 은혜는 바로 여기서 시작됩니다.
문제가 해결되어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과정 속에서 문제를 바라보는 눈이 변화되는 것입니다. 죽음의 선고는 여전히 변함이 없어 보였지만, 하나님 앞에 엎드린 히스기야는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선은 운명에서 하나님께로, 두려움에서 신뢰로, 절망에서 소망으로 옮겨졌습니다.
묵상할수록 마음에 새겨지는 영적인 원리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의 벽 앞에서 무너진 사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그 벽 앞에서 하나님께 얼굴을 돌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벽은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더 깊은 은혜로 이끄시는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히스기야가 마주한 벽은 절망의 상징이었지만, 결국 그 벽은 하나님의 긍휼과 생명을 경험하는 거룩한 성소가 되었습니다.
막혀 있는 벽 너머로 하늘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의 가장 깊은 성숙은 형통한 날보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는 날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심을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믿음은 더욱 깊어집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말보다 마음을 들으시고, 믿음의 외형보다 눈물 속에 담긴 진실을 보시는 분이심을 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흘려진 눈물 한 방울도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 눈물은 하나님의 기억 속에 간직되어 있다가 마침내 은혜의 열매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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