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08회)■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이르시되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여짜오되 주의 영광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내가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내가 받는 세례를 받으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10:35-40)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줄 것이 아니라 누구를 위하여 준비되었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막10:40)
이 말씀을 묵상할수록 제자의 요청보다 주님의 대답이 더욱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영광의 자리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 대한 답을 주시지 않으시고, 먼저 잔과 세례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엉뚱한 대답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질문 속에 감추어진 영적 상태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들은 왕국을 원했지만 왕의 마음은 알지 못했고, 영광을 원했지만 영광이 어떤 대가를 통해 오는지는 알지 못했습니다.
아니 관심조차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막10:38)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이 주시는 것에는 관심이 많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시는 방식에는 관심이 적습니다. 축복은 원하지만 깨뜨림은 원하지 않고, 높아짐은 원하지만 낮아짐은 원하지 않으며, 부활은 사모하지만 십자가는 외면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의 원리는 사람의 생각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사명을 맡기기 전에 먼저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빚어 가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리를 먼저 주시지 않으시고 잔을 먼저 주십니다.
영적으로 잔은 고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잔은 하나님께서 한 사람의 자아를 다루시는 과정입니다.
사람은 능력으로 사역할 수 있지만, 자아가 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광의 자리보다 먼저 잔을 마시게 하십니다.
놀라운 것은 야고보와 요한이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을 구했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좌우편에는 다른 사람들이 서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사건을 보면 주님의 오른편과 왼편에는 두 강도가 있었습니다.
깊은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제자들은 영광의 날에 주님의 좌우편에 앉는 것을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먼저 십자가의 날에 주님의 좌우편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은 왕좌를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십자가를 생각하십니다.
사람은 결과를 바라보지만 하나님은 과정을 바라보십니다.
사람은 영광의 순간을 꿈꾸지만 하나님은 영광을 감당할 사람을 만드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자리를 구하는 제자들에게 자격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잔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잔이 사람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미리 정하다, 미리 준비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 <프로오리조-προορίζω>를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시고 준비하셨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 안에는 놀라운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리를 먼저 준비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먼저 준비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빨리 응답하지 않으시는지 궁금해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축복을 준비하는 것보다 축복을 받을 사람을 준비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십니다.
자리가 준비되는 것보다 마음이 준비되는 것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지연은 거절이 아니라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무관심이 아니라 다듬으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고난은 버려짐이 아니라 영광을 위한 훈련입니다.
깊이 묵상해 보면, 주님은 야고보와 요한의 요청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자리에서 사람으로, 영광에서 십자가로, 미래의 상급에서 현재의 순종으로 옮기고 계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높은 자리를 사모한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주신 잔을 끝까지 받아 마신 사람이 주님 곁에 가장 가까이 서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광은 자리를 구한 사람에게가 아니라, 순종의 길을 끝까지 걸어간 사람에게 맡겨집니다.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은 높은 자리에 앉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도 주님을 끝까지 따를 사람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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