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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ing 칼럼] 부활 이후, 닫힌 문 가운데 서시는 주님 <피스티스- πίστις>

■Loving Column(5050회)■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요20:26-29) 부활 이후 우리가 가져야 할 믿음은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믿음은 눈으로 확인하는 데서 오는 반응이 아니라, 마음으로 자신을 맡기는 인격적인 선택입니다. 삶의 방향의 전환이 이루..

2026 Column 2026.04.06

[Loving 칼럼] 부활, 내 인생을 다시 해석하게 하다<에게이로- ἐγείρω>

■Loving Column(5049회)■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16:6-7) 의 말씀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을 뒤흔드는 선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절망이 비참한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주어진 삶을 해석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시각- 살아 가는 ..

2026 Column 2026.04.05

[Loving 칼럼] 십자가, 죽음을 넘어 우리에게 열린 길<에게르데산- ἠγέρθησαν>

■Loving Column(5048회)■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27:51-54) “마27:51-54”의 말씀 안에는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거대한 전환의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죄의 저주로 시작된 죽음의 질서, 그 견고하던 흐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헬라어 단어는 에게르데산- ἠγέρθησαν>, 곧 “..

2026 Column 2026.04.04

[Loving 칼럼] 고난 주간: 내어주심의 길 위에서, 물러서는 나를 마주합니다<파라도시스- παράδοσις>

■Loving Column(5047회)■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마26:74-75) 겟세마네의 어둠이 짙어 질수록, 제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민망함과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회와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지만, 그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정면으로 마주하..

2026 Column 2026.04.03

[Loving 칼럼] 고난 주간: 그 사랑, 비워낼수록 선명해지다 <케노시스- κένωσις>

■Loving Column(5046회)■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26:26-28) 골고다 언덕, 십자가로 향하시기 하루 전, 예수님은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주 잠시 동안의 이별이지만, 주님은 제자들을 준비하셔야 했습니다. 고난 주간의 목요일, 비움, 자신을 비워 내어 주시는 사랑예수님은 계속해서 자신을 비우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주님은 스승의 자리를 내려놓고 종의 자리로 내려 가셨습니다. 친히 ..

2026 Column 2026.04.02

[Loving 칼럼] 고난 주간: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전혀 다른 이야기 <아가페- ἀγάπη>

■Loving Column(5045회)■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14:3-6) 고난 주간의 수요일… 침묵의 날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조용히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긴장이 흐르는 날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향유 옥합을 깨뜨리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극진하게 부어지고, 다른..

2026 Column 2026.04.01

[Loving 칼럼] 고난 주간: 갇힌 생각을 넘어, 진리에 머물다 - 로지스모스(λογισμός)

■Loving Column(5044회)■ “우리가 육신으로 행하나 육신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10:3-5) 고난 주간의 화요일...성전 안은 조용한 경건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끊임없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부활 때에는 누구의 아내가 됩니까?”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들의 질문은 호기심을 넘어 치밀하게 계산된 논쟁이었습니다. 어떻게든 주님의 말씀을 꼬투리 잡아 무너..

2026 Column 2026.03.31

[Loving 칼럼] 고난 주간: 익숙함 속의 거룩함을 깨우시다.<나오스- ναός>

■Loving Column(5043회)■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1-13)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그 다음날, 아직도 어제의 환호가 남아 있었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왕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에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상들이 뒤엎어지고, 동..

2026 Column 2026.03.30

[Loving 칼럼] 환호 뒤에 감춰진 마음, 끝까지 등 돌리지 않으시는 하나님 <포이닉스- φοινιξ>

■Loving Column(5042회)■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요12:12-15) 종려나무를 헬라어로 포이닉스- φοινιξ>라고 합니다. 종려나무를 의미하기도 하고, 문맥에 따라서는 “불사조(phoenix)”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종려나무는 혹독한 광야와 같은 환경에서도 생명력을 잃지 않고, 강한 바람 속에서도 다시 제자리를 회복하며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는 특징이 있습니다.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

2026 Column 2026.03.29

[Loving 칼럼] 이미 이긴 싸움, 반드시 다시 이깁니다. <휘페르니카오- ὑπερνικάω>

■Loving Column(5041회)■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넉넉히 이기다”라는 말은 헬라어 휘페르니카오- ὑπερνικάω>에서 나온 표현입니다. 이 단어는 “압도적으로 이기다, 완전한 승리를 거두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휘페르- ὑπέρ> “넘어서, 초월하여”와 니카오- νικάω> “이기다”가 결합된 말로, 겨우 이기는 승리가 아니라 넘치는 승리를 뜻합니다.휘페르니카오- ὑπερνικάω>는 롬8:37>..

2026 Column 2026.03.28

[Loving 칼럼] 다시, 첫사랑으로 <아가페토스- ἀγαπητός>

■Loving Column(5040회)■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1:6-8)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설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귀로만 듣던 예수님이 제 마음 깊은 곳으로 찾아오셨던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길을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제 안에 가득했습니다.아마 주님을..

2026 Column 2026.03.27

[Loving 칼럼] 그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의 이름에 심장이 뜁니다. <Ἰησοῦς-이에수스>

■Loving Column(5039회)■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11:24-27) 예수 그리스도는 그 어떠한 진리보다도 진리이시며, 살아 계신 구원자이십니다. 주님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그 어떤 만남보다도 더 선명하게 주님을 만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2000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고, 죽음을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사실은 지금도 우리 삶 속에서 역사하고..

2026 Column 2026.03.26

[Loving 칼럼] 길이 막혀도, 하나님은 길을 잃지 않으십니다.<엥기조- ἐγγίζω>

■Loving Column(5038회)■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0-21)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막1:15) “가까이 오다”라는 뜻의 헬라어는 엥기조- ἐγγίζω>입니다. 이미 가까이 와서 임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실 때 이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이는 죽음 이후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나라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되어 누리게 되는 하나님 나라를 뜻합니다.곧,..

2026 Column 2026.03.25

[Loving 칼럼] 성령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영혼 <프뉴마- πνεῦμα>

■Loving Column(5037회)■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3:8)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3-24) 영>을 의미하는 히브리어는 루아흐- רוּחַ>이며, 헬라어로는 프뉴마- πνεῦμα>입니다. 이 두 단어는 공통적으로 “숨, 호흡 그리고 바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 하나님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원리가 됩니다. 성령은 흔히 생각하는 힘이나 기운이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있는 숨이며, 인격적인 하나님..

2026 Column 2026.03.24

[Loving 칼럼]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 <카바츠- קבץ>

■Loving Column(5036회)■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렘29:11-13) 인생의 여정 속에서 많은 것들이 흩어 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마음이 흩어지고, 관계가 흩어지고, 꿈이 흩어지고, 믿음조차 완전히 흩어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히브리어 카바츠- קבץ>는 “모으다, 수집하다”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말씀에서 카바츠- קבץ>는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다시 끌어 모아 주시는 것을 뜻합니다. 흩어져 있는 모습과 상황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으시고..

2026 Column 2026.03.23

[Loving 칼럼] 간절함의 끝에서, 주님의 만지심 <합토마이 - ἅπτομαι>

■Loving Column(5035회)■ “한 나병환자가 예수께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시니 곧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떠나가고 깨끗하여진지라”(막1:40-42)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며 이스라엘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며 상심한 자들을 고치시며 그들의 상처를 싸매시는도다”(시147:2-3) 헬라어 합토마이 - ἅπτομαι>는 “손을 대다” Touch의 뜻과 함께, “붙잡다, 매달리다, 연합하여 하나가 되다, 깊은 관계로 만들어지다”는 의미도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깊은 만지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아무도 가까이하지 않던 이들에게 다가가시고, 사람들이 ..

2026 Column 2026.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