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3회)■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그 때에 그가 자기 처소에 누웠고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사무엘은 하나님의 궤 있는 여호와의 전 안에 누웠더니 여호와께서 사무엘을 부르시는지라 그가 대답하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고”(삼상3:1-4)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삼상3:1)
이 말씀 앞에 머물면 먼저 시대의 어둠이 보입니다.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적인 모습과도 닮아 있습니다.
말씀은 희귀해 보이고, 하늘의 음성은 멀어진 듯하며, 사람들은 빛보다 익숙한 어둠에 길들여져 갑니다.
그러나, 말씀은 어둠보다 더 중요한 사실을 조용히 들려주고 있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삼상3:3)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 빛을 거두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사람의 눈은 어두워질 수 있지만,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습니다.
엘리의 눈은 흐려졌지만 하나님께서 바라 보시는 눈은 여전히 깨어 있었고, 시대의 귀는 닫혀 있었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여전히 누군가를 찾고 계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서 영혼을 울리는 히브리어가 있습니다.
“부르시는지라”에 사용된 <카라-קָרָא>입니다.
이름을 단지 한 번 불러보는 행위가 아닙니다.
히브리어에서 <카라-קָרָא>는 자신의 뜻과 사랑 안으로 초청하는 부르심입니다.
존재를 깨우고, 사명을 일으키며, 영혼을 하나님의 마음 가까이 이끄는 음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셨다는 것은 한 소년의 이름을 부르셨다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영혼을 향해 다가오셨다는 뜻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수록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침묵이 아니라 그 음성을 들을 귀가 희귀해졌다는 데 있었습니다.
말씀이 희귀했던 시대에 하나님은 군중에게 외치지 않으셨습니다.
조용한 성전 안에서, 아직 어둠이 완전히 걷히지 않은 새벽의 미명 속에서, 깨어 있는 한 영혼을 찾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마음이 깊은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하나님의 음성은 더 낮고 깊은 속삭임으로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잠든 시간에 하나님은 깨어 있는 영혼을 찾으십니다.
많은 것을 아는 사람보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고 응답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사무엘은 처음에 그 음성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완전한 이해가 아니었습니다.
부르심 앞에 반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삶에도 그런 밤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들
기도는 하늘에 닿지 않는 것 같고
응답은 먼 곳으로 떠나버린 것 같고
말씀은 닫힌 문처럼 멀리 느껴지는 순간들.
그러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면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사무엘의 새벽처럼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 곁에서
조용히 이름을 부르고 계셨는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내가 여기 있나이다”(삼상3:4)
이 짧은 대답 안에 영성의 깊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명보다 먼저 임재로 부르십니다.
사무엘은 사명을 듣기 전에 자신을 드렸고, 계시를 받기 전에 먼저 귀를 열었습니다.
영적인 성숙은 더 많은 것을 아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자신을 열어 놓는 데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카라-קָרָא>의 음성으로 부르십니다.
상처를 지나 부르시고
기다림을 지나 부르시고
침묵처럼 보이는 시간을 지나 부르십니다.
지금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아!”
그 부르심은 결국 모든 하나님의 사람에게 들려오는 사랑의 음성입니다.
오직 그 영혼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하늘의 속삭임입니다.
세상이 어두워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은 더욱 선명해집니다.
엘리의 눈은 어두워졌어도 하나님의 눈은 어두워지지 않았고,
시대의 등불은 흔들렸어도 하나님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은 새벽에 깨어 있었습니다.
세상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사람의 생각이 멈추고
자신의 힘에 대한 확신마저 고요해질 때
그 비워진 자리 속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스며들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영혼의 문을 열어 봅니다.
새벽은 단지 시간이 아닙니다.
새벽은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밤이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빛이 오고 있기 때문에 새벽이 됩니다.
환경이 변해서 소망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시기에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은 보이는 것을 따라가는 힘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발걸음을 먼저 듣는 은혜입니다.
밤이 가장 깊은 곳에서 새벽이 태어나듯
침묵이 가장 짙게 드리운 자리에
하나님의 음성은 다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음성을 듣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 하나가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등불 곁에서 다시 고백합니다.
“주님, 내가 여기 있습니다.”
그 한마디가 모든 부르심의 시작이며,
모든 은혜의 문을 여는 가장 아름다운 순종이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 Loving Zoom Prayer 모임 ●
Today!
미국 Pacific 서부 시간, 오늘 월요일 저녁 7시(한국 시간, 화요일 낮 11시)에 Zoom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등불은 기름으로 타오르지만
영혼은 부르심으로 살아납니다
새벽은 태양으로 밝아지지만
영혼은 말씀으로 밝아집니다.
밤이 아무리 길어도
새벽을 막을 수 없듯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하나님의 음성을 가둘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등불은 꺼져가고 있었어도
하나님의 등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Join Zoom Meeting
https://us02web.zoom.us/j/86550653514?pwd=7lOjmepqDkXNDFFaLyO4NvvpQjcs7q.1
Meeting ID: 865 5065 3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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