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115회)■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시5:1-5)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이 말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기도란 하나님께 무엇을 알려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모든 것을 아시는 분 앞에서 나라는 존재와 절대자와의 거룩한 만남임을 깨닫게 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고 간구하지만, 곧 더 깊은 자리로 내려갑니다.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여기서 “심정”은 탄식으로 가득한 마음이지만, 질서정연한 언어로 정리된 생각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은밀한 곳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이며 하나님을 향해 흐르는 영혼의 떨림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하가- הָגָה>는 특별한 울림을 가지고 있습니다.
“묵상하다, 읊조리다”라는 의미를 넘어, 사자가 낮게 포효하듯 영혼 깊은 곳에서 흘러나오는 신음과 갈망까지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기도보다 먼저 <하가- הָגָה>를 들으십니다.
말은 사람을 향하지만, 하가는 하나님께 향합니다.
입술은 종종 믿음을 설명하지만, 하가는 영혼의 깊은 실제를 드러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름다운 문장보다 진실한 갈망이 더 귀합니다.
유창한 기도보다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영혼의 목마름이 더 깊은 울림이 됩니다.
영적으로 성숙해질수록 기도의 내용은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향한 갈망이 깊어집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점점 주님을 알아갈수록 깨닫게 됩니다.
응답이 기쁨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축복이 평안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환경의 변화가 만족의 근원이 아니라는 것을
영혼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안식을 얻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아침에 기도하며 하나님을 기다린다고 고백합니다.
어쩌면 기도보다 기다림이 더 어려울 것입니다.
기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다림은 믿음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기다림은 하나님께 시간을 온전하게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마저 사랑으로 받아들이는 믿음입니다.
영혼이 가장 깊이 다듬어지는 곳은 응답의 순간이 아니라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시는 것보다 먼저 영혼을 변화시키시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 주시는 것보다 문 앞에서 기다리게 하심으로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발견하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넓은지를 배우게 됩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이 말씀 또한 영적인 깊은 비밀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는 이유는 정죄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죄를 미워하십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영혼의 시선을 창조주가 아닌 자신에게 묶어 두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사람과 종교적인 사람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납니다.
종교적인 사람은 죄의 결과를 두려워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죄 자체보다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더 슬퍼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할수록 죄에 대한 민감함도 깊어집니다.
죄책감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입니다.
빛 가까이에 갈수록 작은 먼지까지 보이듯, 하나님 가까이에 갈수록 영혼은 더욱 정결함을 갈망하게 됩니다.
결국 시편 5편의 기도는 문제 해결을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연합을 향한 기도입니다.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새롭게 깨닫습니다.
가장 큰 축복은 형통이 아니며
가장 큰 응답은 소원이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고,
가장 큰 은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영혼이 하나님 안에 거할 때 광야에서도 샘이 흐르고,
밤하늘 아래에서도 길이 보이며,
눈물 가운데서도 찬양이 흐릅니다.
오늘도 <하가- הָגָה>를 올려 드립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리움으로
표현할 수 없는 갈망으로
주님의 임재를 향한 거룩한 목마름으로.
영혼 가장 깊은 곳에서 조용히 고백합니다.
말로는 다 닿을 수 없는 그리움으로
눈물로도 다 흘려 보낼 수 없는 사랑으로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주님의 이름을 부릅니다.
세상은 수많은 소리로 가득하지만
하늘은 언제나 하가하는 영혼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니다.
사람은 언어를 듣지만
주님은 침묵까지 들으시고
사람은 눈물을 보지만
주님은 눈물 이전의 아픔까지 아십니다.
오늘도
새벽 이슬이 햇살을 기다리듯
들꽃이 봄을 기다리듯
파도가 바다를 향해 쉬지 않듯
내 영혼도 주님의 때 안에서
고요히 기다리게 하소서.
응답보다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은혜보다 주님을 사모하게 하시며
선물보다 주님의 얼굴을 구하게 하소서.
그리고 하가의 가장 깊은 자리에서
깊이 알게 하소서.
주님을 기다리는 시간이 큰 은혜였고
주님을 갈망하는 마음이 이미 축복이었으며
주님 자신이 내 영혼의 가장 크고 영원한 응답이심을.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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