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olumn

[Loving 칼럼] 유카리스테오(εὐχαριστέω), 현실보다 하늘의 풍성함을 바라보는 영혼

Joseph Lee 목사 2026. 5. 20. 19:07

■Loving Column(5094)■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시매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떡을 먹은 남자는 오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6:41-46)

 

오병이어의 기적을 묵상할수록 마음 깊은 곳에서 깨닫게 되는 말씀의 원리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떡이 많아진 후에 감사하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인 상태에서 먼저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축사하시고라는 표현의 헬라어가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입니다. 감사의 인사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의 뜻과 충만을 더욱 깊이 받아들이는 영적인 신뢰의 표현입니다.

아직 손에는 부족함뿐이지만, 영혼은 이미 하늘의 풍성함을 바라보며 감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깊이 묵상하며 새롭게 깨닫게 되는 것은, 사람의 감사는 대부분결과 이후에 나온다는 점입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감사하고, 길이 열리면 감사하고, 응답 받으면 감사하려 합니다.

삶 속의 연약함 앞에서 저 역시 그러한 모습이었음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은 순간에 먼저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를 선포하셨습니다.

상황을 보고 드리는 감정의 감사가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존재의 감사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감사는 반응이 아니라 믿음의 선언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감사였고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환경보다 먼저 감사를 무너뜨리려 합니다.

감사가 무너지면 영혼은 결핍의 세계에 갇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곳에는 강퍅함과 원망과 불평이 자라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무너졌던 이유도 먹을 것이 없어서만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함께하고 계시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결핍을 더 크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원망은 현실의 어둠을 확대시키지만,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는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선명하게 바라보게 만듭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은 떡이 많아지는 역사 이전에인식의 전환이 먼저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땅을 바라보지 않으시고 하늘을 우러러보셨습니다.

그 모습이 깊은 영적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공급의 근원을 환경에서 찾지 않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필요 역시 하나님께로부터 흘러온다는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이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의 영성의 믿음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충분합니다.”

감사는 현재의 부족함을 외면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부족함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믿음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감사는 상황이 아니라 바라보는 시선에서 시작됩니다.

하늘을 우러러보는 순간, 생각은 더 이상 땅의 논리에 붙들리지 않게 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감사하신 후 떡을 떼셨습니다.

여기에도 놀라운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는 움켜쥐려는 손을 놓고 흘려 보내게 만듭니다.

진정한 감사는 붙드는 삶이 아니라 나누는 삶으로 드러납니다.

감사 없는 사람은 결핍의 두려움 때문에 쉽게 놓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나누면서도 메마르지 않는 하늘의 공급을 경험하게 됩니다.

결국 오병이어의 본질은 떡이 많아진 사건 이전에, 예수님의 영 안에 이미 충만함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늘과 연결된 영혼은 현실의 가능성만으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유카리스테오- εχαριστέω>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말하는 긍정의 언어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충만을 실제로 바라보는 영적인 눈입니다.

 

기적은 떡이 많아지는 순간보다, 부족한 현실 속에서도 먼저 감사할 수 있는 영혼이 되는 순간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