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91회)■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딤후 4:6-8)
사도 바울의 마지막 고백에는 사람이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깊은 고요함이 흐릅니다.
그것은 죽음을 앞둔 사람의 언어라기보다, 오래 기다리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의 사랑의 노래처럼 들립니다.
억울함도 없습니다. 원망도 없습니다. 두려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영혼에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평안이 깊이 흐르고 있습니다.
문득 생각해 봅니다.
어떻게 사람은 인생의 끝에서 저토록 담담할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의 생명이 다해 가는 순간까지 오히려 충만할 수 있을까?
그 답은 바울이 남긴 한 헬라어 단어 안에 담겨 있습니다.
바로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이것을 단순히 “왕관” 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단어 안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는 황제의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눈물과 인내를 지나 끝까지 견뎌 낸 자에게 씌워 주던 승리의 화관, 면류관입니다. 그리고, 그 화관은 금으로 만든 영원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경기의 우승자들에게 씌워 주던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는 대부분 월계수 잎으로 엮은 화관이었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시들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세상이 주는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스테파노스- στέφανος>를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더 높아져야 합니다.”
“더 인정받아야 합니다.”
“더 강해져야 세상이 알아 줄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세상의 면류관은 손에 쥐는 순간부터 두려움이 시작됩니다.
잃어버릴까 불안하고, 비교당할까 두려워집니다.
사람의 인정과 박수는 잠시 뜨겁다가도 금세 식어 버립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생의 마지막 앞에서 전혀 다른 영광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것도 자유조차 없는 감옥 안에서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마지막이 사람들의 눈에는 실패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완성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의 중심은 결과가 아니라 헌신이었기 때문입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딤후4:6)
여기서 “전제”는 제물 위에 포도주를 남김없이 쏟아 붓는 제사를 의미합니다.
조금 남겨 두는 것이 아닙니다. 아낌없이 전부 드리는 것입니다.
이 말씀 앞에 오래 머물게 됩니다.
왜 여전히 붙들고 놓지 못하는 것이 이렇게 많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계산과 방법은 끝까지 남겨 두고 싶어 합니다.
헌신을 말하면서도 상처받을까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남김없이 부어지는 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는 단지 사역을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단지 말씀을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존재 자체를 복음 안에 녹여 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지막은 공허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인생이었지만, 가장 충만한 순간이었습니다.
점점 깨닫게 됩니다.
신앙은 결국 사랑의 방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시간을 붓고 있는가?”
“무엇에 마음을 쏟으며 살아가고 있는가?”
영적인 삶의 원리는 얼마나 많이 소유했는가에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깊이 자신을 하나님께 내어드렸는가에 있습니다.
바울은 죽음을 앞두고도 생명을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영원을 살아가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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