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olumn

[Loving 칼럼] 스케노오(σκηνόω), 내 영혼에 장막 치신 하나님

Joseph Lee 목사 2026. 5. 15. 19:10

■Loving Column(5089)■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이 그에 대하여 증언하여 외쳐 이르되 내가 전에 말하기를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것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니라”(1:12-15)

 

<1:12-15>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신앙이란 하나님을 믿는 경외의 모습 이전에 하나님께서 영혼 안에 자신의 생명을 심으시는 영적인 신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1:12)

처음에는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주어지는 구원의 약속으로만 이해하게 됩니다. 그러나, 묵상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자격을 넘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존재적 변화라는 사실이 마음 깊이 새겨집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증명하라고 요구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증명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이 먼저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의 생명으로 자녀를 낳으십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말씀이 더욱 깊이 다가옵니다.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자들이니라”(1:13)

말씀 앞에서는 사람이 붙들고 있던 모든 논리가 무너져 내립니다. 혈통은 육체의 뿌리가 수는 있어도 영혼의 기원이 없고, 육정은 뜨거운 감정을 만들어낼 수는 있어도 거룩한 생명을 탄생시키지는 못하며, 사람의 뜻은 결단을 일으킬 수는 있어도 창조를 이루지는 못합니다. 

결국 거듭남은 사람이 하나님께 다가가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 안에 자신의 생명을 심으시며 시작하시는 거룩한 창조의 사건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진정한 신앙은 외적인 사람의 열심보다 근원의 변화가 먼저 일어납니다. 삶의 방식 이전에 존재의 근원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전에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갔다면, 이제는 하나님께로부터 생명 때문에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은혜의 가장 깊은 원리임을 깨닫게 됩니다. 삶의 존재 가치 전체에 영적인 거룩한 혁명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짧은 묵상으로 시작된 성찰은 점점 깊이 말씀 앞에 머물게 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1:14)

여기서거하시매라는 표현은 헬라어 <스케노오-σκηνόω>입니다. “장막을 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단어를 묵상하는 순간 영혼 깊은 곳에 잔잔한 울림이 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멀리 계신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 안으로 직접 들어오셔서 한가운데 장막을 치셨습니다. 함께 거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영혼의 변화가 시작되는 거룩한 출발점이 됩니다.

 

말씀은 지식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설명만 하지 않으시고, 말씀으로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진리는 이론이 아니라 살아 있는 존재가 되어 사람 가운데 거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을 가르치신 이전에, 말씀이 되어 오신 분이셨습니다.

묵상할수록 더욱 선명해집니다. 말씀은 많이 아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말씀이 존재 안에 거하기 시작할 생명이 됩니다. 마음의 생각과 시선과 언어와 태도 안에 말씀의 장막이 세워질 , 순간부터 사람은 하늘의 질서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져 갑니다.

 

또한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1:14) 말씀 안에서 예수님의 영광이 무엇인지 조금씩 배우게 됩니다. 세상은 강함과 높아짐을 영광이라 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낮아지심 속에서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셨습니다. 죄인을 정죄하지 않으시면서도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셨고, 진리를 선포하시면서도 사랑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은혜와 진리는 예수님 안에서 서로 충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서로를 온전하게 이루고 있었습니다. 안에는 갈등이 없는 완전함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고백은 영적인 시간의 비밀을 깨닫게 합니다.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1:15)

육신의 시간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보다 뒤에 오신 것처럼 보였지만, 영원의 시간 안에서는 이미 태초부터 계신 분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사람의 시간보다 앞서 일하십니다. 사람의 눈에는 늦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영원의 시간 속에서 시작되고 있음을 말씀을 통해 배우게 됩니다.

 

묵상 끝에 오늘, 가지 영적인 깨달음이 마음 깊은 곳을 가득 채웁니다.

신앙의 본질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 올라가는 열심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사람 안으로 내려오시는 은혜의 Love Story라는 사실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거쳐야 할 치유의 여정: 마라, 엘림, 르비딤 그리고 시내산 (출15:26) | Loving Worship | Joseph Lee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