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83회)■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딤후4:7-10)
신앙은 개인적인 결단으로 시작되지만, 결코 혼자 완성되는 길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영적인 거장이라 할지라도 홀로 끝까지 걸어갈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함께 걷는 사람들”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붙드십니다.
사도 바울 역시 그러했습니다. <디모데후서>를 읽는 가운데 영적인 큰 울림 앞에 멈추어 서게 됩니다.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고, 십자가 복음의 놀라운 계시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수많은 교회를 세웠고, 복음 때문에 자신의 생명까지도 내어드린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 시간은 의외로 너무 인간적이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외로움을 느꼈고, 사람을 찾았으며, 동역자를 기다렸습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딤후4:9)
이 말씀 앞에서 오래 머물러 봅니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순간까지 디모데를 보기를 원했습니다. 누가만 곁에 남아 있었고, 마가는 다시 유익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두기고는 보냄을 받았습니다. 어떤 이는 바울을 떠났고, 어떤 이는 끝까지 남았습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영적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사람을 살리십니다!”
신앙의 여정이 깊어질수록 혼자 이겨내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사람들의 소중함을 더 깊이 알게 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강한 믿음이란 홀로 견디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아픔도, 사명도, 눈물도 조용히 감당하는 것이 영적인 성숙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힘겨운 시간을 지나오며 깨닫게 됩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위로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만져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헬라어 <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를 묵상해 봅니다. “옆에서 도와주는 분, 위로자, 돕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령님이 도우시는 분인 보혜사 <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우리를 혼자 이겨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곁에 성령님을 두시고, 또한 하나님의 사람들을 붙여 주셔서 함께 걸어가게 하셨습니다.
바로 곁에서 도우시는 성령님의 은혜 없이는 사람은 결코 혼자 살아갈 수 없음을 깊이 깨닫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귀한 사람들을 곁에 세워 주셨습니다. 힘들 때 함께 기도해 주었던 기도의 동역자들, 어려운 시간에 아무 말 없이 섬겨 주었던 사랑의 손길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믿어 주었던 고마운 사람들, 스스로를 포기하려 할 때 끝까지 붙들어 주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다시 일으켜 세우실 때가 많았습니다.
더 깊이 깨닫아 갑니다. 믿음의 길은 경쟁이 아니라 동행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의 마지막은 비록 감옥 안에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사람들 속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관계 안에서 끝까지 믿음을 지켜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4:7)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기까지, 그리고, 그 사역이 열매 맺기까지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함께 울고, 함께 기도하며, 함께 복음을 짊어진 동역자들의 눈물이 있습니다.
혼자 강한 사람이 되기보다 함께 걷는 사람이 되기를 사모합니다. 그리고 누군가의 곁을 끝까지 지켜 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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