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84회)■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그가 내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영으로 되느니라”(슥4:6)
믿음의 여정을 오래 걸어갈수록, 한 가지 깊은 영적 역설을 경험하게 됩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가장 많이 애쓰고 힘썼던 때보다, 오히려 제 힘이 완전히 꺾이고 하나님 앞에 멈추어 섰을 때 길이 열리는 순간들이 더 많았다는 사실입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어 왔음에도, 제 안에는 여전히 강한 <헤쉬본- חֶשְׁבּוֹן>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봅니다. 히브리어 <헤쉬본- חֶשְׁבּוֹן>은 “계산, 판단, 셈법”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숫자를 계산하는 차원이 아니라, 사람이 스스로 자신의 미래를 계획하고 통제하려는 내면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어떤 길이 더 효율적인지, 어떤 선택이 더 안전한지, 언제 움직여야 손해 보지 않는지,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할지, 열매는 언제 나타날지.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면서도, 실제로는 사람의 계산과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이 뒤섞여 있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상하리만큼 제가 가장 확신하고 있던 길을 자주 막으셨습니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무너지고, 이 정도면 괜찮을 것이라 여겼던 계획들이 멈추고, 사람의 힘으로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시간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막다른 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처음에는 그것이 실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막으신 것은 “길”이 아니라, 제 안에 가득했던 “자기 확신”이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사람을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의 힘을 비우게 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기다림 속에서 자신 안에 남아 있던 가능성이 죽어가는 시간을 지나야 했고, 야곱은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깨어진 후에야 비로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받았으며, 모세는 광야 40년 동안 자신의 열정과 혈기를 벗겨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 없는 사람을 쓰시는 것이 아니라, “자기 능력을 의지하지 않게 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람의 본성은 하나님의 영광조차 자기 성공의 장식으로 사용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때로는 반드시 “끝”까지 데려가시는 것을 봅니다. 내 계산이 무너지고, 내 경험이 더 이상 통하지 않으며, 내 방법으로는 아무것도 열 수 없는 그 시간까지.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을 배우기 시작합니다.
어쩌면 신앙의 깊이는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 “얼마나 하나님 없이는 할 수 없음을 아는가”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사람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충돌하는 가장 깊은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26:39)
이 기도는 체념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를 향한 가장 능동적인 순종이었습니다.
저는 여기서 한 가지 깊은 영적 원리를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열심 자체보다, 삶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선한 일이라도 하나님보다 앞서가면 육의 일이 될 수 있고, 아무리 느려 보여도 하나님과 함께 가는 길이라면 그것은 생명의 길이 됩니다.
그래서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높은 차원의 믿음입니다.
포기는 가능성을 버리는 것이지만, 내려놓음은 주권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 신기하게도, 제가 완전히 하나님께 맡겨 드릴 때 비로소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들이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제가 원해서 재촉할 때는 침묵하시던 하나님께서, 기다림 속에서 내려 놓을 때는 놀랍도록 정확하게 역사하시는 것을 봅니다.
그때마다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은 제 인생을 늦게 이끄시는 분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시간으로 인도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종종 “왜 빨리 응답하지 않으십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은 결과보다 먼저 우리의 존재를 다루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일을 이루시는 것보다, 그 일을 감당할 사람의 중심이 하나님께 붙어 있는지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앙은 점점 더 강해지는 훈련이 아니라, 점점 더 의지하게 되는 훈련인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많이 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깊이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깊어지는 영성, 넓어지는 지경: 네 가지 영적 디딤돌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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