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80회)■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출14:13-16)
오늘은 제 마음이 유난히 깊이 가라앉아 있는 하루였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영혼들의 얼굴이 하나씩 떠오를 때마다, 그들의 고통이 제 안으로 깊이 스며드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병으로 지쳐가는 숨결
길이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는 영혼들의 멈춰 선 눈빛
일터를 잃고 아무 말 없이 허공을 바라보는 가장들의 낙심
무너져가는 사업 앞에서 밤을 견디는 이들의 지친 모습
관계의 깨어짐 속에서 조용히 부서지는 마음
그리고,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중독과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잃어가는 영혼들까지…
그들의 고통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용히 제 마음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 들어옵니다.
저는 그들에게 보내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아프고 힘든 영혼들에게…
광야를 지나온 사람으로서 그 절규가 얼마나 처절한지 그 침묵이 얼마나 무거운지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말씀을 전하고,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들의 질문이 제 안에서 떠나지 않습니다.
“기도하면, 무엇이 달라지나요?”
이 질문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리 기도해도 더 이상 소망이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이 마지막으로 절규하는 처절함과도 같은 고백입니다.
저는 쉽게 대답할 수 없었습니다.
약속의 말씀이 삶에서 이루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침묵의 시간을 지나야 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
하늘이 닫힌 것처럼 느껴지는 그 시간
그 시간을 지나본 사람만이 아는 마치 영혼이 녹아내리는 듯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시간,
깊은 침묵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제 마음 깊은 곳을 잔잔히 그러나 분명하게 흔드십니다.
“너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느냐?”
그 음성은 상황에 대한 답이 아니라, 제 존재의 자리를 묻는 질문이었습니다.
사람들의 문제 한가운데 서 있기 전에 제가 정말 하나님 앞에 서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안에 한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히브리어 <아마드-עָמַד>
“서 있다”는 의미를 넘어 어떤 흔들림 속에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믿음을 다시 세우는 상태.
자신의 방법과 해석, 관점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을 향해 시선을 고정하는 결단.
그 <아마드-עָמַד>의 의미가 제 마음 깊은 곳을 조용히 울립니다.
다시 마음에 새깁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은 무언가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때 다시 제 영혼을 깨우듯 말씀이 임합니다.
“내 이름으로 선포할 수 있는데,
왜 너는 침묵 속에서 낙심하고 있느냐?”
그 질문 앞에서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아왔으면서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순간에는
하나님께서 아무 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느껴지며 낙심에 잠기곤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시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은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가장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고 계신 시간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오늘 <선포>라는 단어가 제 마음을 다시 뜨겁게 합니다.
그것은 현실을 밀어내기 위한 외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약속을
보이는 현실 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덮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빛을 선포하라는 말씀도 그렇습니다.
어둠이 사라진 후에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둠이 여전히 짙게 머물러 있는 그 자리에서
이미 빛이 임했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며 서 있는 자리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만 같았던 이 시간 속에서, 제 영혼은 다시 깨어나고 있습니다.
깊이 가라앉았던 내면의 어느 깊은 웅덩이에서,
조용하지만 분명하고 강력한 힘이
다시 위로 밀려 올라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임을 압니다.
제 안의 중심이 다시 세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믿음으로 다시 선포하려 합니다.
더 크게 외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이 믿기 위해서.
응답은 하나님의 영역이지만, 그분 앞에 서 있는 것은 저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나님 앞에 다시 설 것입니다.
흔들리는 세상 한가운데서
그러나, 하나님 앞에 머무는 흔들리지 않는 그 은혜의 자리로.
하나님의 존전에서,
끝까지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보여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그 언약을 따라
말씀 가운데 신실하게 일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고, 믿는 자들은 다시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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