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78회)■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4:2)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권능이 크시며 벌 받을 자를 결코 내버려두지 아니하시느니라 여호와의 길은 회오리바람과 광풍에 있고 구름은 그의 발의 티끌이로다”(나1:4)
매일 이어가고 있는 Loving Column은, 하나님 앞에서 마주하는 고민과 성찰의 순간들을 제 마음으로 담아내는 작은 기록입니다. 진정한 영성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오늘도 내면의 깊은 여정을 떠나봅니다.
<니느웨>를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히브리어 단어 <에레크 아파임- אֶרֶךְ אַפַּיִם>, 곧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는 하나님”을 떠올리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시되 영혼을 지극한 사랑으로 품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그 안에 담겨 있습니다. <에레크 아파임- אֶרֶךְ אַפַּיִם>은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긴 기다림과 일하시는 시간, 그리고, 사랑과 공의의 깊이를 깨닫게 합니다.
요나의 시대에 <니느웨>는 돌이킬 기회를 받았습니다. B.C. 760년경으로 여겨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가득한 그 도성에 선지자를 보내시고, 심판을 미루시며 회개의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비처럼 보이기도 했으나, 그것이 바로 <에레크 아파임- אֶרֶךְ אַפַּיִם>의 깊이였습니다. 당장 무너뜨리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다리시며, 돌아올 단 한 가지 가능성까지도 끝까지 붙드시는 크신 사랑이었습니다.
그러나, 나훔의 시대에 이르러, 회개의 기회를 받았던 <니느웨>는 결국 심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B.C. 650년에서 630년 사이, 다시 교만과 폭력으로 가득 찬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미루지 않으시고 심판을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B.C. 612년, 바벨론에 의해 실제 멸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에레크 아파임- אֶרֶךְ אַפַּיִם>은 심판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심판이 늦춰진다는 의미였음을 말입니다. 약 100년에서 130년에 이르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은 기다림이었으나, 그 기다림은 영원하지 않았습니다. 은혜의 시간에는 반드시 그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응답이 있음을 깊이 깨닫게 됩니다.
이 두 권의 선지서를 통해 마음 깊이 새겨지는 분별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은 무관심이 아니라 사랑이 허락하신 기회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가볍게 여길 때,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오늘 주어지는 시간이 영원할 것처럼 여기게 된다면, 언젠가는 나훔의 <니느웨>와 같은 일이 눈앞에 펼쳐질 수도 있음을 마음에 새겨 봅니다.
<니느웨>의 Story는 한 도시의 흥망을 넘어, 매일의 삶 속에서 반복되는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은혜를 경험한 자리에서 다시 돌아설 것인지, 아니면 그 은혜에 머물며 더욱 깊이 하나님께 나아갈 것인지… 그 선택 앞에 매일 자신을 돌아 보기를 사모합니다.
오늘도 <에레크 아파임- אֶרֶךְ אַפַּיִם>의 시간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 기다림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님을 알기에, 주어진 하루를 가볍게 흘려보내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통과의 원리: 인생의 물과 불 앞에서 (사43:2-3) | Loving Worship | Joseph Lee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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