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olumn

[Loving 칼럼] 헤벨(הֶבֶל), 붙잡을 수 없는 것을 붙들다

Joseph Lee 목사 2026. 5. 2. 18:57

■Loving Column(5076)■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2:13)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 하니 백성이 말 한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는지라 엘리야가 백성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왕상18:21-22)

 

오늘 하루 종일 마음 깊은 곳에 맴도는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헤벨-הֶבֶל>입니다. “숨결, 안개, 붙잡으려 하면 사라져 버리는 허무를 뜻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삶의 깊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집니다. <헤벨-הֶבֶל>이라는 단어 앞에 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겼는지, 그리고 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도 멀게 느껴졌는지를 조금 더 깊이 바라보게 됩니다.

 

오늘날 이 시대의 모습 또한 그 안에 담겨 있는 듯합니다.

광야를 지나며 하나님을 경험했음에도, 그들은 다시 눈에 보이는 것들로 마음을 기울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보다,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형상과 눈에 보이는 형통을 약속하는 존재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믿음을 막연한 기다림으로 여기고, 그 기다림 속에서 인내하지 못했기에 스스로 보기에 더 확실한 대상을 찾았습니다. 그때 우상은 너무나도 분명한 답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우상 세 가지가 떠오릅니다. 먼저 바알은 비와 풍요를 주는 신으로 여겨졌습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를 내려준다는 약속은 곧 생존의 문제였기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눈앞의 필요를 해결해 줄 것 같은 확신이 그들의 마음을 열었습니다. 또 하나는 아세라입니다. 다산과 번영의 상징으로, 지경의 확장과 눈에 보이는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자손의 번성과 풍요로운 삶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인 약속이었기에, 그 유혹은 쉽게 거부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몰렉은 가장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보호와 번영을 얻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까지 내어놓게 만드는 신. 극단적인 희생을 요구하면서 안전을 보장한다고 외치는 그 우상의 목소리는, 두려움의 시간 속에서 더욱 선명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이 우상들이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오늘날에도 변하지 않는 욕망들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더 잘되고 싶은 마음, 그리고 안전하게 지켜지고 싶은 갈망. 그러나, 그것들은 붙잡을 수 없는 안개와 같고, 채워지는 듯하지만 결국 사라져 버리는 것들입니다. 얻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이미 우리 손 사이로 흘러 나가고 있는 것들입니다. 잡은 듯하지만 결코 완전히 쥘 수 없는, <헤벨-הֶבֶל>의 허무한 실체입니다. 

그 대가는 분명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점점 흐려졌고, 마음의 중심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우상을 더 붙들수록 더 큰 불안이 찾아오고, 채우려 할수록 더 깊은 공허가 남습니다. 우상은 결국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소모시키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 돌아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이미 손에 쥔 것을 내려놓는 일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익숙해진 방식, 사람의 눈에 보이는 확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고 믿는 안정감. 그것들을 내려놓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그것들은 가까이에 있었고,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것은, 붙잡고 있던 것이 결국 안개와 같은 것이었음을 인정하고, 영원한 것을 향해 온 마음을 드리는 일입니다.

 

오늘도 조용히 고백합니다. 손에 쥐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 안정감을 준다고 여겼던 것들, 확실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헤벨-הֶבֶל>일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앞에 깊이 무릎 꿇어 봅니다.

하나님의 존전에서, 사라지지 않는 것만을 다시 붙들고 싶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