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74회)■ “회오리바람 중에 주의 우렛소리가 있으며 번개가 세계를 비추며 땅이 흔들리고 움직였나이다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곧은 길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주의 백성을 양 떼 같이 모세와 아론의 손으로 인도하셨나이다”(시77:18-20)
지금까지 인도하신 손길을 돌아보면, 분명 은혜였음을 압니다. 그러나, 때로는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그 은혜가 너무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환경은 낯설고, 익숙했던 지식과 경험은 더 이상 힘을 잃은 듯 보이며,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내디뎌야 할지 선명하지 않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질문이 올라옵니다.
“혹시 잘못된 길로 가면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음에도 어리석음으로 그 길을 놓치면 어떻게 합니까?”
이때 떠오르는 히브리어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테호마- תְּהוֹמָה>. “깊음, 심연, 방향을 알 수 없는 혼돈의 깊이”를 뜻합니다. 창세기 1장 2절에서 땅은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 “깊음”입니다. 아무 길도 보이지 않는 상태,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영이 수면 위를 운행하시던 그 깊음을 의미합니다.
지금의 마음이 마치 이 <테호마- תְּהוֹמָה>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무것도 분명하지 않고, 발을 디딜 곳조차 불확실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깊음 위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영은 움직이고 계심을 붙잡게 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멈추신 것이 아니며, 느껴지지 않는다고 해서 떠나신 것도 아니십니다.
영적인 원리는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사람의 이해 위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신뢰 위에 이어집니다. 다음 걸음을 다 알지 못해도, 지금 내딛는 한 걸음에 작은 순종으로 반응할 수 있다면,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서 있는 것입니다. 길을 잃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조차,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길을 간절히 찾고자 하는 마음의 표현일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여 실수할까 염려가 됩니다.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지금까지의 여정도 우리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넘어짐 속에서도 붙드셨고, 어리석음 속에서도 방향을 돌이켜 주셨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길 또한 동일한 은혜로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돌아볼 때 보이는 은혜입니다.
<테호마- תְּהוֹמָה>의 깊음 위에서 배우게 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깊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의 시간이라는 사실입니다. 혼돈 속에서도 “빛이 있으라”는 말씀이 임했던 것처럼, 지금의 어둠과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로운 질서와 방향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아직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어리석어서 길을 완전히 알지 못해도 괜찮습니다. 연약함으로 실수할 가능성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쓰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도 다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함께하신다면, 이미 인도하심 가운데 있는 은혜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 깊음, <테호마- תְּהוֹמָה> 위에서도 여전히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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