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71회)■ “주께서 너희에게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시나 네 스승은 다시 숨기지 아니하시리니 네 눈이 네 스승을 볼 것이며 너희가 오른쪽으로 치우치든지 왼쪽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바른 길이니 너희는 이리로 가라 할 것이며”(사30:21-22)
결정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가야 할 길은 갈라져 있지만 바로 앞의 표지판은 보이지 않고, 마음은 떨리는데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듯한 시간입니다. 그럴 때 기도는 오히려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응답이 즉시 주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을 떼어야 하는 이유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때 붙들게 되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히브리어 <타흐블롯- תַּחְבֻּלוֹת>입니다. 이 단어는 잠언에서 “지략, 전략, 지혜로운 인도, 항해의 방향을 잡는 기술”로 번역되지만, 그 뿌리에는 “밧줄로 방향을 지탱하여 흔들리는 배를 끝내 목적지로 이끄는 능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눈앞에 육지가 보이지 않을 때, 노련한 선장이 별과 바람을 의지해 항로를 잡듯이,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삶의 여정을 세밀하게 조율하고 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중요한 결정 앞에서 망설이는 순간, 스스로의 확신이나 감정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하여 한 발을 내딛게 하시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말씀은 보이지 않는 인생의 항로를 따라가게 하는 영적 나침반입니다. 감정은 흔들리고 상황은 변하지만, 말씀은 변하지 않는 기준점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조차, 이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가장 정확한 길 위에 서 있다는 사실을, 시간이 흐른 뒤에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 과정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침묵 속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확실한 보장 없이 순종해야 하며, 결과를 알지 못한 채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시간에 하나님의 은혜는 가장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보이는 것이 있을 때는 자신의 판단을 의지하기 쉽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는 오직 하나님만을 붙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의존의 깊이가 더해질수록, 은혜 또한 더욱 깊이 스며들게 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뒤, 뒤돌아보게 됩니다. 그때의 선택이 얼마나 연약한 믿음 속에서 내려졌는지, 얼마나 두려움 속에서 떨며 내딛은 발걸음이었는지를요. 그런데 놀랍게도 그 모든 과정을 세밀하게 이끄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가장 정확한 시점에, 가장 선한 방향으로 이끌어 오셨다는 사실을요. 그때 비로소 <타흐블롯- תַּחְבֻּלוֹת>의 의미가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입니다. 보이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는 깨달음이 밀려 옵니다.
결국 결정의 무게를 견디는 힘은 자기 확신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오히려 확신이 없음에도 순종할 수 있는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그 믿음은 결과를 보장받았기 때문에 따라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기에 갈등 중에 올려 드리는 태도입니다. 그러한 선택 뒤에 하나님은 반드시 은혜를 더하십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내린 결정은 결코 헛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께서 가장 가까이에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 Loving Zoom Prayer 모임 ●
Today!
미국 Pacific 서부 시간, 오늘 월요일 저녁 7시(한국 시간, 화요일 낮 11시)에 Zoom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이해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으셨습니다.
여전히
기도의 자리에 머물러 있고
여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있는 한
은혜는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을 뿐
마침내 보게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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