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69회)■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사43:2-3)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 가운데서도 불과 물을 지나는 시간은 여전히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견뎌야 할 고난으로만 바라본다면, 그 안에 담긴 중요한 원리를 놓칠 수 있습니다. 광야의 여정을 지나오며 깨닫게 되는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연단”과는 또 다른 흐름, 곧 “통과의 원리”입니다.
히브리어 <아바르-עָבַר>는 “지나가다, 건너다, 통과하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이 단어가 가리키는 깊은 핵심은 머무름이 아니라 이동입니다. 어떤 상태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머물고 있는 지점에서 다른 지점으로 옮겨가는 방향성의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생의 여정 가운데 다가오는 불과 물은 더 이상 머무는 장소가 아니라,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경계가 됩니다. 과거로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변곡점입니다. 그래서 통과의 시간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익숙한 환경이 흔들리고, 기존의 질서를 떠나야 하며, 그동안 서 있던 자리의 안정감이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에서 <아바르-עָבַר>의 영적인 본질이 드러납니다. 이 시간은 멈춤이나 무너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향한 이동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통과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라기보다,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입니다.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고, 되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마치 강을 건너는 순간처럼,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이미 이전의 땅과는 분리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얼마나 빨리 지나가느냐보다,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가 더 본질적인 질문이 됩니다.
또한, <아바르-עָבַר>는 경계를 넘어 이동하는 동안, 정체성의 변화가 따라옵니다. 같은 존재로 출발하지만, 같은 영적 상태로 도착하지는 않습니다. 통과 이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시선이 열리고, 이전에는 붙들고 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됩니다. 이 변화는 통과의 여정 속에서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불과 물의 시간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지나가야 할 여정입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건너가야 할 경계입니다. 이 차이를 깨닫는 순간, 고난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집니다. 왜 이 자리에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관점이 옮겨집니다.
<아바르-עָבַר>는 결국 멈추지 않는 하나님과의 여정을 말해줍니다. 하나님은 한 자리에 머물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때마다 새로운 자리로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불과 물은 그 여정 속에서 반드시 지나게 되는 통로이며, 그 통로를 지나며 삶은 이전과는 다른 지경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여전히 통과의 여정은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은혜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벼랑 끝에서 더 강해지는 기름부으심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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