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49회)■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 하라 하는지라”(막16:6-7)
<막16:6-7>의 말씀은 역사적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존재의 근본을 뒤흔드는 선언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절망이 비참한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 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주어진 삶을 해석하는 완전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의 시각- 살아 가는 방식이 바뀌다!
부활을 믿는 사람의 삶에는 끝이 없습니다. 모든 실패와 상처, 관계의 깨어짐과 인생의 막다른 골목조차도 하나님의 손 안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 과정으로 재해석될 수 있습니다. 이미 가장 절망적인 순간, 하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이라는 절대적인 Ending을 새로운 시작으로 바꾸셨기 때문이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상황이 아니라 약속을 기준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현실보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더 실제적인 것으로 붙들게 됩니다. 부활의 능력이 삶에 깊이 스며드는 역사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모든 사고가 “닫혀 있는 창”안에 머물 것입니다. 고통은 그저 견뎌야 하는 것이고, 실패는 회복하기 어려운 절망이 되며, 죽음은 모든 의미를 무너뜨리는 마지막 결론이 됩니다. 이 안에서는 소망도 결국 하나님의 말씀 보다 환경에 의존하게 됩니다. 좋아지면 기쁘고, 나빠지면 무너지는 반복 속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을 믿는 사람은 다르게 반응합니다. 같은 고통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같은 실패 속에서도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이미 죽음을 이기신 능력이 우리 안에 역사하고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며, 상황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끝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살아나는 사람입니다”라는 깊은 내면의 선언입니다.
부활은 죽음에서 일어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의 사건만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연결된 생명의 시작입니다. 주님과 연합된 자는 동일한 생명의 흐름 안에 들어가게 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단지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만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이 지금도 내 안에서도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때 삶에 생명과 능력의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두려움보다 담대함이, 죄책감보다 자유가, 절망보다 소망이 더 깊은 뿌리를 내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제가 경험한 부활의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만난 후, 부활 신앙은 오늘을 살아가는 방식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여기가 끝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되었습니다.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앞에서, “하나님은 죽은 관계도 살리신다”는 믿음으로 한 걸음을 내딛게 하셨습니다. 내 안의 연약함과 죄성 앞에서도, “나는 변화될 수 있다”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붙들게 했습니다.
부활을 믿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는 사람입니다.
그 반복 속에서 점점 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닮아가게 됩니다.
부활은 미래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의 능력입니다.
“다시 살아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헬라어는 <에게이로- ἐγείρω>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명할 때 이 단어가 사용되는데, 말씀에서는 종종 이 동사가 수동태로 표현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스스로 살아나셨다는 의미를 넘어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일으키셨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곧, 부활은 인간의 가능성이나 어떤 자연적인 회복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 전적인 능력의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그 산에서 시작된 구원, 십자가에서 완성되다 (삼하24:16-25) | Loving Worship | Joseph Lee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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