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48회)■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그들이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백부장과 및 함께 예수를 지키던 자들이 지진과 그 일어난 일들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이는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마27:51-54)
“마27:51-54”의 말씀 안에는 사람의 이해를 넘어서는 거대한 전환의 순간이 담겨 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죄의 저주로 시작된 죽음의 질서, 그 견고하던 흐름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근본부터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헬라어 단어는 <에게르데산- ἠγέρθησαν>, 곧 “일어났다”, “깨워졌다”는 뜻입니다. 깊은 잠에서 깨어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말씀에서 자주 “부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마27>에서 성도들이 “일어났다”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이 죽음을 뚫고 승리를 가져온 사건을 가리킵니다.
<에게르데산- ἠγέρθησαν>는 수동태 형태로 “그들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일으켜진 것”을 강조합니다. 이 능력의 역사의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오히려 죽은 자들을 깨우시는 시작이 됩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지만, 그 죽음으로 인해 다른 이들이 살아납니다. 세상적인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사건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많은 이들의 생명이 되는 것,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그들이 “예수의 부활 후에” 거룩한 성에 들어갔다는 사실입니다. 거룩한 성은 예루살렘을 의미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영적인 공동체를 가리킵니다. 이것은 질서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첫 열매이며, 그 뒤를 따라 다른 이들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일시적인 기적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부활의 역사에 대한 서막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 <에게르데산- ἠγέρθησαν>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때로 영적으로 잠들어 있고, 절망과 낙심속에 마치 무덤에 갇힌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오늘도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를 깨우는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에 의해 다시 일으켜지는 것,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그가 죽음으로
우리가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압니다.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그 약속은 지나간 말씀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서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음을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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