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Column

[Loving 칼럼] 고난 주간: 내어주심의 길 위에서, 물러서는 나를 마주합니다<파라도시스- παράδοσις>

Joseph Lee 목사 2026. 4. 3. 19:32

■Loving Column(5047)■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13:1)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26:74-75)

 

겟세마네의 어둠이 짙어 질수록, 제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하기조차 어려웠을 것입니다. 말로 다할 수 없는 민망함과 물밀듯이 밀려오는 후회와 두려움이 그들의 마음 깊숙이 스며들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주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지만, 그 밤이 깊어질수록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과 정면으로 마주하게 됩니다. 그 모습은 어쩌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믿음의 자화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장면을 묵상할 때마다, 저 또한 깨닫습니다. 묵묵히 따르기보다 도망치기에 더 익숙한 제 내면의 깊은 모습을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은 헬라어 <파라도시스- παράδοσις>, 스스로를 내어주심의 길이었습니다. 누군가에게 떠밀려 넘겨지는 수동적 운명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자신을 온전히 맡기시는 능동적 순종의 결단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배신과 조롱, 십자가를 향한 길을 모두 아셨음에도 불구하고,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신을 내어 내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흔들렸고, 두려움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어떤 이는 도망하였고, 어떤 이는 주님을 부인하였습니다아마 그들의 가슴 속에는 “왜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을까라는 깊은 후회가 남았을 것입니다.

그 모습은 결코 낯설지 않습니다. 저 또한 수많은 순간 속에서, 주님보다 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물러섰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골고다 언덕으로 향하시는 주님의 걸음은 단호하고 고요하셨습니다.

그 발걸음에는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보다 깊은 고통을 아셨지만, 그 길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길은 끌려가는 길이 아니라 <파라도시스- παράδοσις>,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시는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두 모습을 마주합니다. 두려움 속에서 무너지는 제자들의 마음과 하나님의 뜻 앞에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시는 주님의 마음을.

오늘도 저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길 위에 서 있는가?”

여전히 저는 제자들의 자리에 서 있습니다. 은혜가 넘칠 때에는 세상을 이길 것처럼 기뻐하지만, 어느 순간 너무도 쉽게 무너지는 제 연약함을 마주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제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이유는 제가 강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저를 다시 일으켜 세워 주셨기 때문입니다. 제 안에는 여전히 가룟 유다와 베드로가 공존합니다.

후회와 연약함이 가득한

 

깨닫게 하실 때마다 다시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갑니다. 멀리서라도 주님을 따라가고 싶어서입니다.

마침내,

새벽 닭이 울면서 깨닫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셨지만 저는 여전히 그 뒤에 숨으려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십자가 위에 홀로 달리신 주님의 시선이

이토록 연약한 저를 향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죽기까지 사랑하였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