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45회)■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는가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만 두라 너희가 어찌하여 그를 괴롭게 하느냐 그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막14:3-6)
고난 주간의 수요일…
침묵의 날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조용히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조용하지만 깊은 긴장이 흐르는 날이었습니다. 한쪽에서는 향유 옥합을 깨뜨리며 주님을 향한 사랑이 극진하게 부어지고, 다른 한쪽에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 은밀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향유옥합을 깨뜨린 여인의 행동은 순전한 사랑이었습니다. 값비싼 향유를 한 번에 쏟아붓는다는 것은 자신의 전부를 드리는 결단이었습니다. <아가페- ἀγάπη>는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낭비처럼 보이는 넘치는 헌신입니다. 사랑은 이성의 합리성을 넘어섭니다. 주변 사람들은 그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왜 이렇게 허비하는가?”라고 묻습니다. 하지만, 사랑은 설명보다 표현으로 나누는 언어입니다.
그 곳에 가룟 유다도 있었습니다. 그는 마리아가 향유 옥합을 깨뜨려 주님의 머리에 부었을 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의 말은 겉으로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긍휼함을 외치지만, 그 내면에는 탐욕이 가득했습니다. 사랑의 결핍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그가 그렇게 된 것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아가페 사랑 앞에서 현실적인 욕심이 들어 갔습니다. 영혼 사랑이 아닌 돈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방향이 뒤틀려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하나님 보다 다른 대상에 더 깊이 묶여 있었습니다. 헬라어 <필라르기리아- φιλαργυρία>는 곧 돈을 사랑하는 탐욕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고난 주간의 수요일,
예수님의 침묵은 우리 마음 중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묻고 계십니다.
한쪽 마음에는 향유 옥합을 깨뜨리는 마리아가, 다른 한 쪽에는 세상의 것을 깊이 사랑하는 가룟 유다가 자리 잡고 있을 지 모릅니다.
가룟 유다도 예수님을 조금 사랑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처럼 끝까지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한 여인의 사랑은 우리에게 사랑의 향기로 남아 있고, 유다의 선택은 어둠 속 깊은 후회로 남아 있습니다.
베다니에 계셨던 예수님과 함께 했던 같은 시간, 같은 공간 그러나, 전혀 다른 이야기
우리를 멈춰 서게 합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은 지금도 조용히 묻고 계십니다.
나는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향유를 깨뜨릴 만큼 주님을 사랑하는가?
아니면 여전히 세상의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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