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43회)■ “무리가 이르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마21:11-13)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그 다음날, 아직도 어제의 환호가 남아 있었을지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려가지를 흔들며 왕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환호가 채 가시기도 전에, 주님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전에 사랑으로 품어 주시는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상들이 뒤엎어지고, 동전이 바닥에 흩어지며, 소란이 일어납니다. 성전에서 매매를 하는 자들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모습과는 다르게 느껴질 수 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너무 깊어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조용히, 잠잠히, 깊이 품어 주시며 기다려 주시지만, 기도와 예배에서 만큼은 전혀 타협을 하지 않으십니다. 성전은 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침묵 속에서 기도가 올라가고, 그 간절한 마음이 하나님께 닿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거룩해야 할 공간이 어느새 이익을 위한 계산과 거래의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모습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의 절규에 가까운, 일깨우기 위한 외침으로 행동하셨습니다. 우리가 잊어 버리고 있었던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부르짖음이었습니다.
그날, 주님이 뒤엎으신 것은 장사를 위한 상이 아니라 사람들이 익숙해져 버린 성전 매매에 대한 태도였을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도 괜찮다고 여겨왔던 마음,
형식만 남고 중심은 사라진 신앙,
익숙함 속에 묻혀버린 거룩함.
고난 주간에 이 말씀을 대하면서 깊은 묵상의 여정을 떠나 봅니다.
성전을 히브리어로는 <헤칼- הֵיכָל>이라고 합니다. 왕의 궁전이나 하나님의 처소를 의미하며, 하나님이 거하시는 거룩한 공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는 <히에론- ἱερόν>과 <나오스- ναός>가 사용됩니다. “히에론”은 성전의 뜰과 건물을 포함한 외적인 구조를 의미하고, “나오스”는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중심, 곧 본질적인 성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눈에 보이는 <히에론- ἱερόν>도 중요하게 여기시지만, 더 깊이 바라보시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머무는 <나오스- ναός>일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 Loving Zoom Prayer 모임 ●
Today!
미국 Pacific 서부 시간, 오늘 월요일 저녁 7시(한국 시간, 화요일 낮 11시)에 Zoom으로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고난 주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 사랑은 이미 십자가에 닿아
말없이 고이 감싸고 있습니다.
상처 입은 자의 이름을
오늘도 조용히 부르십니다.
한번도 멈춘 적 없는
그 사랑 앞에서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Joseph Lee 목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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