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40회)■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롬1:6-8)
처음 주님을 만났던 그 설렘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 귀로만 듣던 예수님이 제 마음 깊은 곳으로 찾아오셨던 그날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길을 혼자 걷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이후 저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흘렀고,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제 안에 가득했습니다.
아마 주님을 만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와 같은 첫사랑의 추억을 마음에 품고 있을 것입니다.
찬양할 때마다 주체할 수 없이 흐르던 눈물,
주님의 이름을 부르다가 목이 메어 더 이상 고백할 수 없던 순간들,
말씀을 들을 때마다 마치 예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했던 그 뜨거움.
강단 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차마 얼굴을 들지 못하고 무릎 꿇던 그 시간들.
어쩌면 그때의 모습이
가장 순수한 사랑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모든 시간이 예수로 충만했던 날들,
다른 이들의 예수 만난 이야기를 들으며
그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던 시간들.
하나님의 사랑이 참 좋았습니다.
그저 행복했습니다.
저를 감싸 안아 주시던 그 손길은 따뜻했고,
두려움과 상처, 아픔을 어루만져 주시던 주님을 만날 때마다
제 마음은 깊은 평안으로 채워졌습니다.
세상에서는 결코 누릴 수 없던 그 평안.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 하나로 충분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주님은 제 곁에 계시고,
저 또한 주님을 사랑합니다.
그때의 고백도 여전히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새
주님의 나라와 사명,
선교와 전도, 제자 사역이라는 이름 아래
더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저를 발견합니다.
이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문득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지금의 나는,
그때처럼 순전하게 순종하고 있는가?
순수했던 믿음에 세상의 기준이 스며들고 있지는 않은가?
주님을 향한 사랑 위에 내가 원하는 열심만 쌓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제는
제 자신과 깊이 마주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주님 앞에서
가장 진실했던 그 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내면을 향한 조용한 여정을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주님과의 첫사랑,
그때 가졌던 순전함이
아직도 제 안에 살아 있기를 소망하며…
사랑을 의미하는 헬라어 <아가페- ἀγάπη>에서 나온 형용사 <아가페토스- ἀγαπητός>는 “매우 사랑받는, Beloved”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부르실 때 사용되었고,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을 향해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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