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33회)■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시46:10)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크게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시62:1-2)
오랫동안 고독을 두려워하며 살아왔습니다.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제 안에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세상의 소음 속에 머물며, 제 마음의 공허함을 외면하려고 애써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고요 속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시간, 아무 말도 들리지 않는 공간.
헬라어 <헤쉬키아- ἡσυχία> - 내면의 깊은 침묵,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고요.
처음 그 고요는 평안이 아니라 두려움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동안 외면해왔던 감정들이 하나 둘 떠올랐고, 설명할 수 없던 불안이 조용히 저를 감싸왔습니다.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다시 사람들 속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무언가로 저를 채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러 보기로 했습니다.
그저 조용히 앉아, 제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지 않고 바라보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신기하게도 무언가가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토록 저를 괴롭히던 감정들이 더 이상 저를 흔들지 않았고, 설명되지 않던 공허는 서서히 잦아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이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어떤 고요가 스며들었습니다.
고요 속에 머물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을 더 깊이 뵙게 됩니다.
깊은 고요가 더 깊은 임재로 이끌고 있었습니다.
세상의 소음과 제 안의 분주한 생각들이 가라앉을수록,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임재가 마음 한가운데로 조용히 스며듭니다.
그 침묵은 모든 것의 모든 것 되시는 하나님의 충만으로 가득한 자리였습니다.
때때로 여전히 쉽게 분주해지지만, 다시 고요로 돌아갈 때마다 조금씩 더 분명해집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가장 깊은 침묵 속에서 가까이 다가오시는 분이십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그토록 피하려 했던 고독은 제 안의 소음을 잠재우고, 가장 깊은 제 자신을 만나게 하기 위한 길이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곳에서 저를 만나기 위해서 기다리고 계신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제 저는 더 이상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외로운 순간도 찾아옵니다.
하지만, 그 외로움조차도, 더 깊은 <헤쉬키아- ἡσυχία>로 이끄는 과정임을 조금은 알아 가고 있습니다.
오늘도 저는 조용히 제 안으로 돌아갑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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