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34회)■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8:26-28)
우리의 삶에는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해도 달라지지 않는 것 같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속에 머무는 시간입니다.
그럴 때 조용히 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도 지금 이 순간을 사용하실 수 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로마서 8장"에서 한 은혜의 단어로 응답합니다.
<수네르게오-συνεργέω>
“함께 일한다”는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붙드시고 하나의 방향으로 작용하게 하신다는 깊은 신앙의 고백입니다.
사람의 눈에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이 흩어져 보입니다.
기쁨은 기쁨대로, 고통은 고통대로 서로 아무 관련 없는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순간까지도 붙드시고, 버리고 싶은 기억들까지도 놓지 않으시며, 마침내 모든 것을 하나의 선으로 만들어 가십니다.
그 "합력하여 이루시는 선"은 문제 해결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안으로 이끄시는 깊고 거룩한 완성입니다.
이 과정 속에서 성령께서는 놀랍게 일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없을 때,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를 때, 성령께서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 우리가 놓치고 있는 하나님의 뜻을, 우리보다 더 정확하게 붙들고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리는 은혜의 삶은 멈추지 않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는 이미 <수네르게오-συνεργέω>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손에 맡겨진 일은 흩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일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상처도, 실패도, 기다림도 그분의 손 안에서는 재료가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상상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선이 이루어집니다.오늘 우리의 믿음은 상황을 향한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신뢰입니다.
“이 일이 좋아질 것입니다”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붙들고 계십니다”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 고백 위에서 <수네르게오-συνεργέω>의 은혜는 지금도 조용히 흐르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이미 함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하나님을 감동시킨 세 족속: 기브온, 겐, 레갑"(렘35:6-10) | Loving Worship | Joseph Lee 목사
'2026 Column' 카테고리의 다른 글
| [Loving 칼럼]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모으시는 하나님 <카바츠- קבץ> (1) | 2026.03.23 |
|---|---|
| [Loving 칼럼] 간절함의 끝에서, 주님의 만지심 <합토마이 - ἅπτομαι> (1) | 2026.03.22 |
| [Loving 칼럼] 내면의 깊은 고요함, 더 깊은 임재로 <헤쉬키아- ἡσυχία> (1) | 2026.03.20 |
| [Loving 칼럼] 단 하나가 달라집니다. 기준점입니다. <히타흐즈쿠트- הִתְחַזְּקוּת> (2) | 2026.03.19 |
| [Loving 칼럼]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삶, 이 시대의 답 <데베쿠트- דְּבֵקוּת> (2) | 2026.03.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