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32회)■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육체와 마음은 쇠약하나 하나님은 내 마음의 반석이시요 영원한 분깃이시라”(시73:25-26)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앞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하나님을 붙들면 살 수 있나요?
살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 위에 서 있는 듯한 때가 있습니다.
아마 지금 이 시간이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계획은 무너지고, 확신은 흔들리며, 내일조차 짐작할 수 없는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습니다.
스스로 묻습니다. “이 상황에서 내가 붙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조심스럽게 떠오르는 또 하나의 질문, “하나님을 붙들면 정말 살 수 있을까?”
히브리어 단어 <히타흐즈쿠트- הִתְחַזְּקוּת>는 “강해지다, 단단해지다, 붙들다, 굳세게 하다”의 뜻입니다.
‘힘내라”는 의미를 넘어섭니다. 뿌리 단어인 <하자크- חזק>는 “강해지다, 붙들다”라는 뜻을 가지는데, <히타흐즈쿠트- הִתְחַזְּקוּת>는 그 강함을 “의지적으로 다시 붙드는 행위, 곧 “흔들리지만 다시 하나님을 향해 스스로를 붙잡는 내면의 결단”을 의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히타흐즈쿠트- הִתְחַזְּקוּת>어가 “이미 강한 상태”를 말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약해진 상태, 무너진 상태를 전제로 합니다.
“나는 지금 무너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향해 다시 나를 붙든다.”의 의미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붙든다는 것은,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된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현실은 여전히 불확실하고, 상황은 여전히 거칠며, 감정은 여전히 요동칩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달라집니다. 내가 서 있는 “기준점”이 바뀝니다.
예측 가능한 미래를 붙들고 살던 사람은 미래가 무너지면 함께 무너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붙드는 사람은, 미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려고 합니다.
“문제가 사라지느냐”가 아니라, “그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찾습니다.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살리실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러빙 Zoom 기도] 믿음의 결단이 삶의 방향을 바꾸다! (마11:12) | Joseph Lee 목사 | Loving Worsh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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