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ving Column(5031회)■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의지하고 그의 이름으로 맹세하라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 눈으로 본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신10:20-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30:20)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어느 때보다 “연결”이 강조되는 시대입니다.
손안의 작은 화면 하나로 세계와 이어지고, 수많은 사람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의 영혼은 점점 더 분산되고, 더 깊은 고립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연결은 많아졌지만 중심은 흐려졌고, 관계는 넓어졌지만 내면은 점점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 시대를 향해 조용하지만 본질적으로 깊은 울림으로 다가오는 히브리어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데베쿠트- דְּבֵקוּת>입니다.
이 단어는 “가까움”을 넘어, “붙어 있음, 밀착됨, 끊어질 수 없는 연합”을 의미합니다.
물리적인 거리가 아닌 존재의 상태, 즉 마음과 영혼이 어디에 “붙어 있는가”를 드러내는 단어입니다.
말씀이 말하는 하나님과의 관계는 <데베쿠트- דְּבֵקוּת>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필요할 때만 찾는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붙들려 있어야 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믿음의 길은 어떤 행위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흔들리고 있는 마음의 중심을 다시 하나님께 “붙이는” 깊은 회복의 여정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다른 것들에 붙어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사람의 인정, 결과에 대한 집착, 설명할 수 없는 불안과 염려들.
그것들은 때때로 우리를 잠시 붙잡아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더 큰 흔들림 속에서 영적으로 방황하게 만들 때가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붙들 수 있는 “영원한 중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의 영혼은 지금 어디에 붙어 있는가?”
이 질문은 쉬워 보이지만 우리의 삶 전체를 드러냅니다. 우리가 무엇에 붙어 있는지가 곧 우리의 방향이 되고, 우리의 정체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붙어 있는 삶은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말씀 앞에 머무르는 시간, 간절한 기도의 호흡, 순간순간 하나님을 의식하는 내면의 중심.
그렇게 우리의 마음이 조금씩 하나님께 머물기 시작할 때, 우리는 어느새 “붙어 있음” 연합의 상태로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Joseph Lee 목사 (https://my-jc.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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