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계십니다. (147)
성령께서 지금도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해서 쉬지 않고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지 않으셨더라면 그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만날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찾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르시는 시간과 방법이 다 달라서 그랬을뿐,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 예수와의 깊은 만남이 있습니다. 인생의 획을 가르는 History가 다들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르실뿐만 아니라 늘 동행하시면서 한순간도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 생각에 "이럴때는 하나님께서 떠나시겠지..." 하는 순간도 하나님은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부르실때...각자의 인격적인 선택이 중요합니다. 기계처럼 자동으로 마음을 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인격적인 존재로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가 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또한, 인격적인 영접의 순간에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 인생의 길을 걷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때 주시는 은혜가 참 큽니다. 인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과 의인이 되는 영적인 축복을 함께 누리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과거와 현재, 미래의 모든 죄악들이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영생의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미 구원을 얻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와 이 땅의 길을 걸으면서 동행하게 되는 축복을 함께 받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과 만난 이후로 영적으로 깊은 시간을 보낸다고 할지라도 이 또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주님께서 돕기에 가능한것입니다.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를 돕는 자 가운데 계십니다. 인생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보호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루 말할수 없는 탄식으로 함께 기도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함께 기도 해 주시기에 우리가 기도할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성령께서 함께 찬양하시기에 마음으로, 영으로 찬양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십니다. 말씀 가운데 기록해 두신 하나님의 음성이 무엇인지 깨닫도록 도와 주십니다. 말씀을 더 사모하도록 도와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성령께서 눈을 여서서 영적인 원리와 말씀의 깊이를 주셔야만 모든 것을 깨달을수 있습니다. 신령한 은사와 능력을 주시는 분이 바로 피 묻은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하나님으로 오신,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피흘려 죽으셨다가 십자가에서 우리 죄때문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육체의 몸으로 부활하신후, 우리를 위해서 보내신 하나님의 영이 예수의 영이신 성령이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과 예수께서 하셨던 일들을 깨닫게 하십니다. 인격적이십니다. 성령과 깊은 교제를 나눌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됩니다. 그리스도안의 영적인 신비입니다.
주님을 늘 품에 그리워하면 할수록 말과 행동도 닮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늘 부족해서 자신의 마음을 찢고 자신의 모습이 주님을 전혀 닮은 것 같지 않아서 통곡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사랑할때 이루어집니다. 자신의 마음에 예수 닮은 모습이 없어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잘하고, 잘못했는지 죄를 계수하는 것이 아니라...사랑하는 주님을 닮고 싶어서 몸부림 치는 것이 회개입니다. 영혼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씨앗을 깊이 새기고 싶어서 하늘을 향해서 울부짖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힘으로 갈수 없는 존재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애통해 하는 마음으로 불쌍히 여겨 달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이미 예수께서 길과 진리와 생명 되셨습니다. 그러기에 회개후에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이미 다 이루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예수를 호흡해야 합니다. 말을 해도 예수처럼, 행동을 해도 그리스도 처럼 하기를 주님이 원하십니다.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할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도우십니다. 성령께서는 인격적인 존재이십니다. 강압적으로 두렵게 하시지 않습니다. 평안과 기쁨의 영이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하는 회개는 기쁩니다. 마음을 찢는데 평안이 옵니다. 자신의 모습을 애통하는데 기쁨 가득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기에 가능합니다.
성령께서는 지식의 영이십니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또 어떻게 도와야 하시는지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계획이 무엇인지, 그 계획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루고자 하시는지 성령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성령과 깊은 교제를 가지는 사람은 성령의 지혜를 선물로 받습니다. 그전까지 깨닫지 못했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져서 세상 일에도 하나님의 비젼으로 분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발견하고 그 뜻을 이루고자 애쓰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의지의 영이십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지 가장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기 위해서 사람을 사용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사람을 일으켜서 하나님의 비젼을 심어주고, 계속 전진해서 나가도록 돕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격려와 위로의 영이시기도 합니다. 성령의 의지가 우리로 기도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처음도, 마지막도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의 통로에 Pipeline으로 연결되도록 돕는 것이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가장 큰 관심을 가지시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도와 금식으로만 능력이 나타날수 있도록 제한을 두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과의 교제 방법도 기도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역사하시도록 부르짖는 것도 오직 기도입니다.
성령께서도 감정을 가지고 계십니다. 기쁨과 희락의 영이십니다. 온유의 영이십니다.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영이십니다. 또한, 죄를 무척 싫어하시는 분이십니다. 거룩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하나님과 어긋나는 길을 걸을때 누구보다 고통하십니다. 괴로와 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께서도 우셨습니다. 성령께서도 슬퍼하십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부인할 때처럼 성령께서 슬퍼하시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 앞에 돌이킬때 성령께서는 춤을 추실 것입니다. 성령과 깊은 교제를 가지게 될때 감정적인 상처가 치유 될 것입니다. 온전한 감성과 감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밝고 즐겁고, 쾌활한 모습을 가지게 될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내면에 계시면서 마음의 상처를 만져 주기를 원하십니다. 슬픔과 좌절, 우울한 마음을 깊이 Touch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가장 잘 분별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고 싶으셔서 애를 쓰시는 분도 성령이십니다. 때로는 어렵지 않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는 충분한 기도를 심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들을 먼저 깨닫게 하고 싶으셔서 입니다. 그 뜻을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도 다양합니다. 어느 하나라고 국한 시킬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시는 방법은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마음을 열어 두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성령과 깊은 교제가 없는 삶을 사는 사람은 강팍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친밀한 교제가 살아 있는 사람은 늘 자신이 틀릴수도 있다는 전제를 둡니다. 고집스럽지 않습니다. 강팍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자신을 꺽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면 즉시 순종하려고 합니다. 성령의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령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 하고 계십니다. 성령의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시는지 집중해야 합니다. 모든 일에 전반적으로 개입하십니다. 성령의 방법과 전략이 무엇인지 깨닫는것도 중요합니다. 성령을 깊이 사모할때 가능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나주십니다. 기도는 사모하는 이들이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사모할때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사모하는 심령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깊은 균형과 영성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도 그 성령께서는 말씀 하고 계십니다. 때로는 너무 바빠서, 분주해서 못 깨달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단단해서 그럴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마음의 문을 닫아서 그럴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서 못 깨달을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지라도 성령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손에 이미 붙잡혀 있는 사람입니다. 영혼의 소원의 항구를 향해서 하나님은 계속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우리에게는 전적인 의지와 감사만이 있을 뿐입니다. 감사와 찬양만큼 성령을 즐겁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후에 성령을 보내 주셔서 깊은 교제를 갖는 축복도 주셨지만, 아브라함 때도 하나님의 음성을 꾸준하게 들려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늘 우리와 동행해 주십니다. 너무 나 큰 은혜로 함께 하시지만 우리가 못 깨달을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있을때 성령께서 특별히 함께 하고 계심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도 그랬습니다.
첫번째,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성령께서 특별한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아무것도 모를때, 하나님의 존재가 누구신지 모를때...성령께서는 강권적으로 부르십니다. 하나님이심을 보여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그러셨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축복과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큰 민족을 만드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절대자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주셨던 그 음성에 순종해서 올라 갔습니다. 깊은 신앙과 믿음이 있으면 가능하더라도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시점에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입니다. 이 또한 성령께서 강권적으로 도우셨기에 가능합니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지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에 깊은 감동을 주셨습니다. 이 또한, 성령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재산과 가족들을 데리고 움직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시작도 성령께서 동행하셨습니다. 영적인 신비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믿어지도록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말씀의 축복입니다. 그 말씀에 의지해서 올라갑니다. 단을 쌓습니다. 그런데 기근이 옵니다. 어려움이 옵니다. 그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전혀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침묵하십니다. 아브라함이 하고 싶은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 같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자신이 걱정했던 것처럼 아내 사라가 바로에게 빼앗깁니다. 이 순간에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합력하여서 그 또한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극적인 순간에 개입하셔서 애굽왕에게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함께 하심을 보이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올때는 많은 소유를 들고 나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말씀 하실때도 있지만, 말씀이 없으시더라도 늘 동행하시면서 지극정성으로 개입하고 계심을 볼수 있습니다.
두번째, 마음에 깊은 슬픔과 두려움이 있을때 성령께서 특별한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평안할때는 찬양이 흘러 나옵니다. 좋은 일이 생길때는 감사가 넘칠수 있습니다. 사람이기에 육적인 응답도 중요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이 생길수 있습니다. 아픈 일이 있을수 있습니다. 성령께서도 감정이 있으시기에 그러한 아픔과 상처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하시며, Touch하십니다. 아브라함이 롯과 함께 동거할수 없을 정도로 소유가가 많아 졌을때, 아브라함은 롯에게 원하는 땅을 먼저 차지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롯은 자신이 좋아하는 소알땅을 차지합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사랑했습니다. 자녀가 없었던 아브라함은 롯을 아들처럼 아끼고 사랑했던것 같습니다. 그 조카가 아브라함을 떠날때 아브라함은 슬픔에 마음 아파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슬픔으로 마음에 고통할때 개입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다시 재확인 시켜 주시면서 아브라함을 위로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슬퍼할때 성령께서는 결코 가만히 내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도와 주십니다.
소돔 땅으로 이주한 롯이 사해 5개국을 침공한 가나안 군대에게 포로가 됩니다. 아브라함은 300여명의 자신의 군사를 이끌고 롯을 구출해 옵니다. 사랑하는 조카라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롯을 구출하고 구해오는 것에만 초점이 맞추어 졌을 것입니다. 구출한 후...복수를 당할까봐...자신의 작은 군사를 이끌고 감행했던 일이라서 그 이후에 이들이 세력을 모아서 오게 되면 감당할수 없을수 있기에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두려움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에게 깊이 반응하셨습니다. 슬플때 뿐만 아니라 두려울때도 하나님은 깊이 반응하십니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15:1) 하나님께서 방패이심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동시에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몸에서 날자가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슬플때와 두려울때...하나님은 미래에 대한 소망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와 하나님께서 하실 일에 대한 기대 모두 갖도록 성령께서는 소망의 음성을 들려 주셨습니다.
세번째, 낙심할때...기다리다가 지쳤을때, 하나님의 약속이 취소된 것 처럼 보일때 하나님은 음성을 들려 주십니다. 20년 이상 기다려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자 아브라함은 깊은 낙심에 빠집니다. 자신의 힘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했습니다. 사람의 방법이 이스마엘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99세에 인간적인 조그마한 가능성도 없는 그 시점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 주십니다. 그동안 몇번 들었던 하나님의 약속이 이제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던 시점이었습니다. 사람인지라 깊은 낙심에 빠졌습니다. 더 이상 그 어떠한 가능성도 없는 것을 보고 좌절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은 반드시 일으켜 세워주십니다. 이 길을 함께 걷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을 키우시기 위해서, 믿음의 조상으로서 그릇을 만들기 위해서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지만...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시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년...내년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언약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시간이 되자, 그 말씀은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할수 없을때 하나님은 약속을 주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생각할수 없는 시간에... 마른뼈가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약속을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정확하게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는데는 슬픔과 두려움, 낙심이 따르는게 당연할 것입니다.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방해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에 성령께서는 결코 내버려 두시지 않으십니다. 개입하셔서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약속을 향해서 나아가게 도와 주십니다. 오늘에도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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