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두려움 없는 삶? 두려움을 이기는 삶? (145)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7:18

두려움 없는 삶? 두려움을 이기는 삶? (145)

"너는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희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중에 계심이니라"(신 7:21)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이까"(시 56:11)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은 믿음을 통해서 역사하시고, 사탄은 두려움을 통해서 일합니다.

믿음의 반대말은 불신이 아닙니다. 교만입니다. 하나님을 바라 보지 않는 것은 갈망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힘으로 살수 있다는 교만이 마음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없이 살수 있다고 생각할때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중요성을 모를 것입니다. 게을러서 기도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자신의 힘으로 살수 있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의 방법으로,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나아갈수 있다고 생각할때는 무릎보다 자신의 힘으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비웃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이 보기에 기도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어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죄성때문에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살아 가는 존재입니다. 자신의 몸이 편안한 대로 하고 싶어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께서 Calling하시지 않으시면, 어느 누구도 하나님께 나아갈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조그마한 관심도 가지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Calling으로 부르실때는 믿음이 마음 중심에 뿌리 내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주님으로 받아 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순간부터 하나님을 믿는 인생은 말씀과 기도로 영혼의 호흡을 하는 삶이 되게 될 것입니다. 영적으로 다운 될때 힘들어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믿음의 영성이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망때문에 영이 목말라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센서가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침체 될때는 두려움과 혈기, 짜증이 올라 오게 마련입니다.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마음 중심에 틈 탈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영혼에 하나님과의 교제로 충만하게 되면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자유하게 됩니다. 평안과 영적인 즐거움이 흘러 넘칩니다. 마음이 부드러워 집니다. 하나님과 영혼에 대해서 넉넉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영적인 기본적인 원리를 안다고 할지라도, 매순간 성령과 영혼의 호흡을 하기는 어려울수 있습니다.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방법을 몰라서 그럴수 있습니다. 성령을 깊이 못만나서 그럴수 있습니다. 또는, 교만해서 자신의 힘으로 사는 것이 훨씬 더 낫다고 생각해서 그럴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각 개인을 영혼의 파산이 일어나는 시점까지 이끄시기도 합니다. 그 어떠한 인생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과의 영혼의 호흡을 통해서 생명력이 가득 하길 원하십니다. 성령 안에서 열매맺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령 충만한 삶은 성령께서 원하시는 성품으로 닮아가는 과정입니다. 넘어졌다가 일어설수 있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서 주님께 점점 가까이 가게 됩니다.

마귀는 이러한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으려고 부단히 노력합니다. 세상적인 기준과 가치로 살게 하려고 합니다. 영적인 만족이 아니라 세상적인 만족으로 살게 하려고 합니다. 이럴때 영적으로 둔감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대로 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들어도 딴 생각을 하거나, 듣고서 여전히 자신의 방법대로 살게 합니다. 마귀는 하나님을 믿는 영혼에게 두려움을 주려고 합니다. 두려움으로 충만하게 해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게 하려고 합니다. 크신 하나님이 보잘것 없이 작아 보이게 하려고 합니다. 자신의 문제가 가장 크게 보이고,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을 무능하게 보이도록 만듭니다. 자신의 두려움에 사로 잡히게 합니다. 처음에는 조그마한 두려움에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두려움에 사로 잡혀서 아무것도 못 할 정도의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영적인 모든 센서가 다 망가집니다. 무기력해지고, 무감각해지도록 만듭니다. 아담이 범죄 후에 느낀 처음의 감정이 두려움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에서 부터 시작된 마귀의 역사입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이러한 두려움과의 영적 전투가 치열했습니다. 하나님의 지성소로 깊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것을 방해하는 마귀와의 치열한 영적인 전투가 있을 것입니다. 그 두려움은 안개와 같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두려움의 능력은 결코 간단하지 않습니다.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이성, 감성, 지성의 모든 영역을 마비 시킵니다.

 

그 어떠한 인생도 두려움 없는 삶은 없습니다. 천국에서나 가능할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마귀가 역사하는 동안에는 반드시 두려움과의 치열한 영적 싸움이 필요할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삶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오직 두려움을 이기는 삶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두려워 하는 일의 90% 이상은 기도할때 현실에서 이루어 지지 않는 것들입니다. 나중에는 왜 이렇게 두려워 했을까? 할 정도로 지나놓고 보면 별일이 아닌 경우도 많을 것입니다. 실체라기 보다 허상입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허상입니다. 그 두려움 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 만큼은 결코 간섭하지 않으실거라는 마음의 의심이 있습니다. 또는, 하나님보다 자신의 문제가 훨씬 더 커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인생의 처음 전쟁도, 최후의 전쟁도 두려움에 대한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 믿음을 드리면 드릴수록 성령의 역사는 더 커질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삶속에서 개입하시고, 일하시는 것을 총천연색으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두려움이라는 마귀와 치열한 전쟁을 치뤄야 할 것입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그대로 믿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 말씀에 믿음으로 반응할때는 기적과 이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속에서 갇혀서 나오지 못할때는 그 두려움이 그대로 현실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부분의 두려움은 과거에 받았던 상처와 쓴뿌리, 아픔, 좌절과 낙심에서 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기질적으로 두려움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또한, 극심한 연단속에서 수많은 고통을 받았던 경우도 두려움이 많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평탄하게 지내오다가 갑자기 생각지 못한 인생의 굴곡이 올때도 두려움은 극심해 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겨야 합니다. 극복해야 합니다. 두려움은 믿음으로 정면돌파하려고 할때 결코 현실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말씀을 말씀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럴때 더 기도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두려움이 현실이 될 것 같습니다. 기도해도 처음에는 그럴수 있습니다. 그럴때, 좀 더 엎드려야 합니다. 화도 나고, 분노도 날수 있습니다. 영적 전쟁중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기도하다가 영적으로 더 눌릴수 있습니다. 두려움을 주는 영이 짖밟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땀을 흘리면서 기도하시듯이 기도로 하늘문을 열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마귀가 더 발악합니다. 그 정도로 마귀의 왕국이 타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정복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이기게 될때 하늘의 많은 권세를 받게 될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첫번째, 하나님에 대한 불신에서 오는 두려움을 이겨야 합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가 올때 두려움때문에 못 견디게 됩니다. 조금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당장 응답하시지 않을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극도의 순간에서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 어떠한 인간적인 방법도 없을때, 그 순간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에 가장 좋은 시간입니다. 때로는 그 극도의 시간이 우리 생각과 다를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조금 더 견디기를 원하실때가 있습니다. 이 시간에 걸어가는 문을 조금 열어 주셔서 겨우 나갈수 있을 정도로 도와 주십니다. 이러한 극도의 시간에는 마치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같이 느껴집니다.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렇게 아프게 하실까? 어떻게 이토록이나 고통스럽게 하실까? 하나님에 대한 좌절과 낙심으로 믿음이 보이지 않는 시간일수 있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영적인 세계는 수학 공식처럼 우리 생각처럼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시간에,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불신이 생길때 마다...하나님에 대한 성품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만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서 그럴뿐, 하나님께서 이 길을 함께 걸어 주십니다.

골고다의 십자가로 올라가는 길이라서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예하기에 그렇습니다. 이 시간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믿음으로 이길수만 있다면, 여러가지 상황이 극적으로 변화되는 응답의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이 시간을 결코 이길수가 없습니다. 기억해야 합니다. 그 어떠한 고난보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는 훨씬 더 큽니다. 이 시간에는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에서 내려 오셔서 길을 함께 걸어 주십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길에서 하나님께서 부어 주셨던 은혜가 얼마나 컸었는지 분명히 알게 될것입니다. 나중에 다른 영혼이 흔들릴때 확신을 가지고 세워 줄수 있을 것입니다. 지식으로 만난 하나님이 아니라 삶속에서 깊은 경험으로 만난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 누가 뭐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살아계시다라고 분명히 외치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람은 의문과 갈등, 하나님에 대한 불신을 믿음으로 이겨낸 사람들입니다.

 

두번째, 과거의 처절한 상처에 대해서 치유가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것 같지만, 상처가 치유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 상처와 쓴뿌리가 두려움으로 연결됩니다. 삶이 위축되게 만듭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현재의 시간에 과거를 사는 것입니다. 과거의 어두운 생각속에서 쳇바퀴 도는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조금이라도 어려움이 온다면 "거봐...그럴줄 알았어. 내 주제에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 내 인생은 항상 이렇잖아." 부정적인 생각이 마음 중심에 차지 할때가 많습니다. 피해의식과 열등감으로 연결됩니다. 결국은 삶의 두려움으로 연결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들이 조금도 사용되지 못하도록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수리로 키우시길 원하시는데 혼자서 계속 병아리라고 합니다. 날수 없다고 합니다. 자신의 인생은 그런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삶에는 기대감이 없습니다. 두려움만 있을 뿐입니다. 좋은 일에 대한 기대보다 두려운 일이 이젠 안 일어났으면 하는 생각이 있을 뿐입니다. 상처는 기대감을 막습니다. 두려움이 점점 커지게 만듭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사회생활과 모든 영역의 삶에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과 힘이 넘치게 됩니다. 자신도 힘들지만, 옆사람도 힘듭니다. 만일 이 시간에 하나님께 계속 해서 감사의 입술을 드릴수 있다면, 많은 치유가 내면에서 일어나게 될것입니다. 감사는 감사의 환경을 만드는 Key Word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감사의 고백이 성령께서 주신 강력한 능력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번째, 하나님께서 일하실때는 두려움도 크게 역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때는 마귀도 치열하게 방해하려고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대적일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마귀의 공격을 허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열망하게 하려고 하나님게서 일시적으로 허락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좋은 일이 가득할때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조금 어려워 지면 절대자를 찾게 됩니다. 힘들때는 하나님을 더 뜨겁게 갈망하게 됩니다.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입니다.그래서 마귀의 역사를 허용하실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때 하나님의 나라가 크게 확장될 것입니다. 마귀는 어떻게든지 방해하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방법이 두려움입니다. 영적인 세계의 협박입니다. 위협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손에서 놓으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들도 괴롭히지 않겠다고 합니다. 편안한 삶을 살라고 합니다. 육신의 소욕대로 살라고 합니다.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하라고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게 하려고 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서 하나님은 누가 알곡인지 가라지인지 구별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방해가 많습니다. 마귀가 절대로 놓아 주지 않을 것입니다. 마귀가 더 많이 훼방한다면 성령께서 더 크게 역사하시고, 영광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의 영이 역사하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시고, 여실지 기대해야 합니다. 계속 엎드리는 것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기도와 금식으로, 찬양과 감사로 이러한 두려움의 영을 대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적인 공격이 많을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크게 드러날 것입니다. 또한, 영적인 눈과 센서도 더 깊이 계발 될것입니다. 마귀가 역사하면 할수록 성령안에서 더 깊은 임재와 영적 체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정한 시간까지만 역사 할것입니다. 회복과 부흥의 시간에는 물러 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의 시간에는 근심을 겸하여 주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두려움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두려움을 이겨나가는 인생이 있을 뿐입니다. 믿음이냐 두려움이냐의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지속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우실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일이 클수록 두려움의 영이 더 크게 역사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