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그가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139)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7:11

그가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139)

"비록 무화과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영장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josephlee0212@gmail.com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가장 보고 싶어 하시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 하는 것 같을때 마음에 만족감을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도 하고, 교회 활동도 충성되게 할때 하나님앞에서 무슨 일을 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 몸을 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뛰어 다닐때,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실 것같은 생각을 합니다. 만일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있는 시간을 오랫 동안 가진다면, 때로는 버림 받은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될때가 있습니다.

초점이 자기가 중심인 자기 열심과 자기 의는 때로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는것과 같은 영적인 희열과 만족감을 줍니다.

 

자기 의. 다른 영혼을 쉽게 판단하고 정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다른 사람의 약한 모습을 지적하고, 가르칠때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 한 것같은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자기 의입니다. 다른 사람의 부족한 모습을 자신의 방법으로 바꿔주려고 합니다.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그렇게 하려고 합니다. 못마땅한 것을 못봅니다. 교회나 다른 영혼의 잘못된 모습을 보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이 모든 것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그것을 바로 잡기 위해서 온 몸을 불사르려고 합니다. 열정으로 불태우려고 합니다. 저항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에 마땅한 걸로 생각합니다. 불의를 못보는 태도입니다. 남들의 불의는 보지만, 자신 안에 있는 깊은 불의는 보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사울이 다메섹에서 회심하기 전에 그랬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서 죽일때도 조금의 죄책감을 갖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걸로 생각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를 죽일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당연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자기 의는 다른 영혼들을 죽이면서도, 자신은 무감각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한다고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움을 자신의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교만입니다. 자신은 깨끗하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부족한 것을 보고, 바로 지적하지 않으면 못 견딘다면... 자신의 의로 충만한 사람일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 가득채워진 사람은 자신의 모습을 먼저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떠한 사랑으로 자신을 지금까지 감싸 안으셨는지 되돌아 보면서 부족한 영혼들을 안으려고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지적하는 은사는 없습니다. 오직 사랑의 은사만 있을 뿐입니다. 허물과 약점을 들추어 내는 은사는 없습니다. 마귀는 늘 정죄하고, 고소하려고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사랑과 온유함으로 감싸 안으려고 하십니다. 자기 의가 늘 문제가 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반복되는 관계적인 문제를 가지게 될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허물은 들춰내면서 자신은 완벽하려고 애씁니다. 자신을 늘 거룩하게 포장하고,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다른 모습으로 보여 주려고 애를 쓰다 보니 항상 긴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에도 자유합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있는대로 보여 주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을 내려 놓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있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 주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크게 누리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기 열심.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신앙입니다. 좋은 말 같지만, 행위에 집중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하는 봉사와 일에 집중하다 보니, 실제적으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는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누리기 보다는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하려고 합니다. 봉사와 선행, 활동에 집중하려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주도 하려고 합니다. 자기 열심은 자기 만족으로 연결됩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하면 만족감을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 일도 하지 않는 하루를 보낸 것 같으면, 마음 속에 깊은 죄책감을 가지게 됩니다. 조용히 하나님을 묵상하고, 누리는 시간이 별로 없습니다. 자기 열심으로 가득 찬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듣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무척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큰 정당성을 부여 하려고 합니다. 굴러가는 바퀴같습니다. 잠시 멈춰서면 쓰러지는 모습일수 있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으려고 합니다. 자기의 노력과 방법만 있을 뿐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열심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는 그 뜻을 이뤄 드릴수 없으니 깊이 기도하게 됩니다. 늘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열심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하셔야 한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하나님의 주권과 하실 일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일하시는 것을 분명히 믿는 사람입니다.

 

자기의와 자기 열심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위해서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착각속에 빠지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영혼을 무감각하게 만드는데 사용하는 나쁜 도구들입니다. 독선적이거나, 강팍한 마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과 뜻대로 무엇을 계속 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종교 행위일 뿐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도로 묻고 또 여쭈어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와 열심에 Focus를 맞추는 사람은 하나님을 조용히 갈망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답답할수 있을 것입니다. 할수 있는 일인데도, 오랫동안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구하기에 그럴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무척 좋은 조건인데 오랜 기도후에 이 모든 것을 내려 놓기에 어리석어 보일수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만 그럴 뿐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이보다 더 기쁜 모습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내려 놓고,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상급이 큰 영혼입니다. 하나님의 이름때문에 자신을 내려 놓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하늘의 상급으로 채우십니다. 부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의의 열심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조용합니다. 잠잠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려고 애쓰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태도와 뜻을 금방 꺽으려고 합니다. 자아가 강한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님앞에서 굴복하려고 애씁니다. 항상 기도합니다. 기도없이는 살아갈수 없는 사람입니다. 억울한 일과 원통한 일이 있어도 참고 견딥니다. 하나님의 뜻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사람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하십니다. 무슨 일이 성취가 되어서 기뻐하시는 것도 있겠지만, 온갖 어려움과 핍박이 넘치는데도 하나님앞에서 순전하게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의 모습을 사탄과 세상앞에서 자랑하고 싶어하십니다. 욥에 대해서 하나님이 그러셨습니다. 욥의 믿음과 마음 중심을 기뻐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 일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가운데서 믿음을 보고 싶어하십니다. 누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지 그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마음 중심에 깊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눈여겨 보십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도...때로는 아픔을 허락하시는 목적도...우리에게서 믿음을 보시고 싶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을 차지 하고 싶으셔서 못 견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귀도 하나님께서 마음 중심을 얼마나 즐거워 하시는지 잘 알기게 마음을 도둑질 하려고 합니다. 믿음가운데 서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공격합니다.

마귀가 수많은 부분을 공격한다고 할지라도 이 모든 것들은 허상입니다. 실제적인 공격의 대상은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과 사랑입니다. 공격 방법이 다양할 수 있지만, 초점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는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믿음을 빼앗는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어떠한 불시험 가운데 우리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믿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고, 생명보다 귀하게 여긴다면 하나님께서 이보다 기뻐하시는 일이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을때, 성령의 수많은 열매들이 인격과 삶속에서 열매 맺게 될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과 눈이 다른 곳에 초점을 맞추게 하려고 합니다. 행위와 일에 집중해서 바쁘게 만들어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빼앗으려고 합니다. 착각과 오해에 빠져서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키려고도 합니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 하는 것이 마음 중심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대로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믿음이 있다면 마귀도 예수 이름으로 묶여지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한 마음이 된다면 폭발적인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믿음만큼 사탄의 왕국에 치명적인 역사를 하는 하나님의 도구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움직이는 능력의 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와 자기 열심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자신에게 초점을 맞추게 하려근 사탄의 속임수이기도 합니다. 스데반을 죽였던 사울이 그랬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자신의 눈이 철저하게 가려 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안에는 하나님이 없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 들일수 있는 마음의 중심이 없었습니다. 자신의 방법대로 열심히 일은 했지만, 하나님을 깊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위해서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수 있습니다. 마귀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이 말씀대로 우리 삶에 적용되지 못하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영안은 하나님의 깊은 뜻을 깨닫는 것입니다. 마귀의 공격을 말씀으로 잘 분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누리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위해서 다른 무슨 일을 하는데 집중하기 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느끼는 것입니다. 지성소에 깊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하나님을 묵상하면서, 아바 아버지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해야 할 일들을 분명히 손에 쥐어 주시는 시간이 있습니다. 눈코 뜰새 없을 정도로 바쁜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전에 삶속에서 깊이 만났던 하나님에 대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쉴새없이 나와야 합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 아버지의 품 안에서 홀로 독대하면서 누렸던 하나님과의 비밀이 풍성해야 합니다.

사탄이 열심히 불화살로 공격하는 자기 의와 자기 열심을 이기게 되는 방법은 결국 하나님을 깊이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최고의 신앙은 그 어떠한 일에도 여호와를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손에서 응답이 있기 때문에 즐거워 하는 것은 누구든지 할수 있습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시간에 믿음으로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잠잠하신것 같지만, 결코 가만히 계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잠시 동안 하나님께서 그 믿음의 고백을 듣고 싶으셔서...침묵하시는 것 처럼 보일수 있을 것입다. 그 믿음에는 하나님의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선물로 주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믿음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 지는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깊이 즐기는 사람은 모든 믿음이 아버지의 마음을 향하게 되어 있습니다. 결국 어떠한 믿음의 고백이던지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도 그 마음을 흡족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의 응답이 먼저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어떠한 문이 열리지 않을때 고백하는 믿음을 정금보다도 귀하게 보십니다. 그 믿음에 하나님은 반드시 반응하십니다. 사랑하는 자의 마음의 소원을 들어 주시려고 하실 것입니다. 다른 어떠한 봉사와 행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믿음의 중심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시고 싶어 하시는 분이십니다. 먼저 깊은 고백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때,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일을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중보기도로 하나님 나라와 영혼을 품는 것입니다. 많은 영혼을 위로하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영혼에게 무엇을 줄꼬 하시면서 춤을 추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릴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기쁘게 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앞에 돌아오기를 원하십니다. 돌아오기만 하면 허락하시려든 재앙을 멈추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영혼이 없으시겠지만, 하나님도 인격과 감정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상대적입니다. 모두를 사랑하신다고 할지라도, 특별히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영혼들을 대하실때는 그 기쁨을 더 이기지 못하실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앞에서 특별하겠지만, 더 특별하게 여기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 마음을 하나님을 향해서 뜨겁게 사랑하는 그런 영혼을 바라볼때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속시원하게 해 드리는 신앙이 마지막 시대에는 더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 신앙도 주셔야 하겠지만, 그 어떠한 마음을 들여다 보아도... 중심에 오직 예수로 충만해서, 예수로 흘러넘치는 영혼을 바라 보실때.... 한 여름날의 시원한 생수처럼 여기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