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자녀들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했습니다. (136)
하나님의 응답 후에 자신의 깊은 내면의 모습이 나타날 것입니다.
힘든 시간에는 하나님을 어렵지 않게 부를수 있습니다. 피할 방법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붙잡지 않고는 살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이라면, 고난가운데 하나님을 부르짖게 될 것입니다. 그 시간이 하나님과 가장 뜨거운 교제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비록 육적으로 많은 것들이 막혀 있다고 할지라도, 영적으로 하나님과 깊은 생명력을 누리는 특권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고통스러워서 한순간도 견디기 어렵겠지만, 이 고난의 시간만큼 깊은 기도를 할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사람은 한결같기가 힘듭니다. 항상 변덕이 있습니다. 하루에도 수십번 쉽게 변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부르짖었던 시간을 기억 못할 때가 많습니다. 조금 편안한 상황이 되면, 하나님에 대한 마음부터 달라집니다. 도저히 안 그럴것 같은 사람도, 편안하고, 많은 축복들이 주어 지는 시간에는 쉽게 마음이 변하는것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할 것입니다. 사람은 그렇게 연약한 존재입니다. 마지막까지 영적으로 정복해야 할 대상은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을 잘 다스리는 사람이 정말 능력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응답에 초점을 둡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마음 중심과 내면을 보십니다. 우리는 주변에 많은 응답을 받는 사람을 보면서 부러워 할때가 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하나님께서 저렇게 놀랍게 응답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럴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러나, 응답과 마음중심과는 전혀 별개 일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크시기 때문입니다다. 비록 우리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그릇이 아닐지라도 예수 이름으로 부르짖는 모습에 크게 응답하실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을 떠나 있을지라도...하나님께서 응답하실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응답이 있다고,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는 것과는 별개 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과 늘 함께 하느냐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때로는 이적과 기적도 일어날수 있습니다. 수많은 영적 경험과 체험도 할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특별한 것이 있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착각합니다. 은사와 능력이 쏟아지고, 하나님께서 수많은 일들을 행하실때, 우리 믿음과 내면이 하나님앞에서 기뻐받을 만한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그러한 일을 행하시는 것이라고 착각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이름때문에 행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때문에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응답 받기 전과 응답 받은 후의 태도가 한결같아야 합니다. 지식으로는 잘 압니다. 그러나, 삶으로 실천하기는 힘듭니다. 하나님을 갈망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기의 상황에 하나님을 찾을 것입니다. 응답 받은 후에 크게 두가지를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을 하나님의 날개 그늘아래 숨겨야 합니다. 고통의 상황에서 하나님의 날개 그늘은 피난처 입니다. 응답의 상황에서 조차 하나님의 등뒤에 숨을수 있다면,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는 간증 속에서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 질수 있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자랑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이 영광을 취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내면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는지...하나님의 응답 뒤에도 응답의 결과 보다 여전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고 있는지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이 하나님앞에서 한결같다면 진정한 은혜를 누리는 사람입니다.
응답 후에 축복에 취해서 비틀거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리가 하나님앞에서 자신을 쳐서 복종하기를 원하실 것입니다.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많은 경우... 응답을 받고 나서는 초심을 잃어버립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되어 버립니다. 힘든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영혼들을 은연중에 비웃게 됩니다.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세상가운데 높은 곳으로만 올라가려고 합니다. 지위와 명예가 있는 사람들과만 친하려고 합니다. 부와 귀를 누리는 사람들만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눈여겨 보실 것입니다. 응답 후에도 자신보다 어려운 영혼을 보살피고, 하나님 앞에서 더 조심하려고 하는지 유심히 보실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더 큰 것으로 채우려고 하실 것입니다.
연단 받은 우리 세대는 훈련때문에 조금 더 나을수 있습니다. 항상 자녀들인 2세대가 문제입니다. 자녀들은 부모세대의 힘든 어려움을 모릅니다. 연단이 없기에 자신을 지탱하고 다스리는 능력이 작을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때로는 삶의 높은 기준을 가르쳐 줄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에게서 강한 훈련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앞에서의 삶이 상대적으로 쉬울수 있습니다. 이미 많은 말씀과 삶의 교훈을 부모에게서 날마다 배우기 때문입니다.
자녀를 아끼면 아낄수록, 마음을 더 냉정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자녀는 사랑스럽습니다. 자신의 자녀를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객관적으로 볼수 있는 시야를 가져야 합니다.
잘한 것보다 잘못한 것에 대해서 어린 나이때는 분명하게 가르쳐 줄수 있어야 합니다. 훗날...청년부터 노년까지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평안한 시간을 보내게 될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자신의 맨 나중의 시간을 준비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부르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늘과 내일에 대한 소망과 비젼을 늘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 시간을 최선을 다해서 주님앞에서 살면서,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하늘 나라로 갈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슬픈 종말이 아니라, 오늘과 내일의 희망이 있는 시간입니다. 이 땅에서 살때는 예수 이름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실때는 예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영혼들을 준비시키고, 자녀들을 준비시키는 사람은 참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출애굽 후 광야 생활을 한 1세대들은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자신들의 마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마음이 불평으로 표출되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불만이흘렀습니다. 그런 그들은 비록 가나안 땅에는 들어갈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크신 기적과 이적을 누리는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진로와 상관없이 흘러 넘쳤습니다. 부모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향한 태도와 신앙의 경륜을 배웠던 2세대들은 어린 시절 부터 말씀으로 양육되었습니다. 10대와 20대...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을 깊이 배웠던 그들의 삶은 달랐습니다. 순종하는 세대였습니다. 거룩이 몸에 깊이 배인 세대였습니다. 가나안 땅에 결국 들어갔습니다. 약속의 땅이었지만, 다른 족속들이 그 땅을 이미 차지 하고 있었습니다. 2세대들은 여호수아를 리더로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순종했습니다. 가는 곳곳마다 하나님의 강한 개입이 있었습니다. 족속들을 정복했습니다. 약속의 땅을 차지 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셨던 그 언약이 여호수아의 세대에 온전하게 응답되었습니다.
비록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고통을 받아왔지만, 큰 민족을 이룰수 있었습니다. 농경문화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애굽의 정착 문화였기에 야곱의 후손들은 그곳에서 깊이 뿌리 내리며, 생육하고 번성할수 있었습니다. 만일 가나안땅에서 유목민으로 생활했었더라면, 큰 민족을 이루어 나갈수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롯을 봐도 분명하게 알수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민족이 만들어지는 것이 불가능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계획이 함께 하셨습니다.
첫번째, 그 어떠한 일에도 하나님의 깊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은 태어날때부터 노예 생활을 했습니다. 이방 민족에게서 가혹한 대우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그 어떠한 약속일지라도 십자가의 길을 반드시 걷습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 땅의 우상들과 영적인 싸움을 합니다. 백성들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했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능력으로 도와 주셔야만 할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지팡이는 율법을 상징합니다. 기적을 상징합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애굽을 덮고 있었던 우상을 상대하는데는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밖에 없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크게 응답하셨습니다. 출애굽 전에 그 땅의 공중권세 잡은 자들과 영적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마지막 최후의 결전이 여호와의 유월절이었습니다. 애굽의 장자가 무너졌습니다. 그 배후에는 그들의 신들이 무너지는 하나님의 거룩한 선포였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은 여호와밖에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 어떠한 결박도 풀어지려면... 반드시 치열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승리할때 어두움의 영이 완전하게 물러 가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앞장서시는 각자의 영적인 전쟁이 있습니다. 마귀가 완전하게 무너 질때 출애굽의 역사가 각자의 인생에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서대로 일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최전선에서 눈물흘리면서 거룩하게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반드시 여호와의 유월절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최후의 결전입니다. 어린 양 독생자 아들의 피흘림으로 마귀의 정수리가 완전하게 깨어 지는 시간입니다. 기도하는데도 여전히 치열한 영적 싸움이 있다면 이스라엘 백성처럼 거룩한 성전을 지금도 행하는 중입니다. 애굽에서 곧 풀려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신 약속입니다.
두번째, 영적으로 이끌어 주는 리더가 있다는 것은 축복된 일입니다. 430년간의 애굽에서의 노예생활에서는 그들의 영적인 리더가 없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하시려면 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큰 은혜로 함께 하셨기에 계속 생육하고 번성할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시는 시간은 모세때였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을 깊이 체험합니다. 온전하게 굴복합니다. 그의 믿음과 생명력이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됩니다. 노예 근성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었던 백성이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특히,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순종하고, 찬양하기는 무척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들의 노예근성이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뒤에서 계속 불평하는 습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모세는 늘 중보기도자였습니다. 그의 기도로 백성들이 하나님을 따를수 있었습니다. 1세대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모세를 통해서 2세대, 3세대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수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생활속에 깊이 새길수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는 광야 생활 후에 모세를 하늘 나라로 데려 가시기로 결정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이끄실수 있었지만, 모세의 후계자로 여호수아를 세워주십니다. 비상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직은 완전하게 정착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의 사람을 견고하게 세워주십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그대로 순종할때는 하나님도 축복하셨습니다. 물론 리더가 하나님께 온전하게 따라 갈때만 가능한 일입니다. 백성들에게 가장 큰 축복중의 하나는 그들을 위해서 생명걸고 중보해 주는 리더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번째, 미래의 Vision이 있는 백성들은 기다릴수 있습니다. 1세대 백성들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허무할수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런 소망도 없는 백성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강한 책망으로 비록 약속의 땅으로는 들어갈수는 없었지만,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의 38년의 시간을 보냈지만, 그 땅은 기다림과 소망의 땅이었습니다. 자녀들이 커 나가는 것을 보면서 함께 꿈을 꾸었습니다. 자녀들이 누릴 축복을 기대하면서 부모로서 행복했습니다. 그 땅은 노예 근성이 치유되면서 하나님으로 채워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율법과 율례를 배우면서 영적으로 성장하는 시간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쏟아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결코 절망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자녀들인 2세대에게 부모와 같은 전철을 밟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가르쳤습니다. 자녀들만큼은 성공하게 하고픈 마음은 모두가 동일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하나님 나라의 법을 받았습니다. 자녀들은 그 법이 통치할 땅을 실제적인 유업으로 물려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들이 동일한 꿈을 꾸고 준비했습니다. 2세대들이 요단강을 믿음으로 지날수 있었던것도, 여리고 성을 침묵 기도로 무너 뜨릴수 있었던 것도 1세대 부모들의 교육도 한 몫했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순종하는 길만이 사는 것이라는 것을 마음에 새기도록 했습니다. 자녀들이 잘되는 것처럼 행복한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다릴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베풀어 주실 은혜와 축복을 기대하면서 가슴 두근거리는 소망을 함께 품을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망은 시간이 지나서 이루어지지 않으면 물거품이 될수 있지만, 하나님의 비젼은 반드시 성취 될 것이기에 백성들은 기다릴수 있었습니다.
네번째, 자녀의 신앙 계승은 부모의 책임입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했던 2세대는 영적으로 신앙을 잘 이어 받았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의 눈물과 기도, 수고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부모들의 헌신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 열매를 2세대들은 차지했습니다. 눈으로 보고, 만지면서 누릴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인 3세대는 고난과 역경을 모르는 세대였습니다. 가나안땅에서 태어나서 이미 그 열매를 쉽게 누리는 세대였습니다. 부모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가르쳤겠지만, 그렇게 절박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없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그다지 절박하지 않았습니다. 3세대 자녀들은 근성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부모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하고 율법을 배웠지만, 그들의 깊은 마음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부모들은 이 문제가 그렇게 심각한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온 가정이 하나님을 찾았기에 자동으로 하나님을 경배 하게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습니다. 부모의 세대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이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되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삶을 하나님께서 그리 오래 두고 보시지 않았습니다. 바로 사사기의 영적인 어두움을 보게 됩니다. 골짜기와 동굴, 계곡속에서 이방 민족을 피해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부르짖지 않았던 결과가 엄청났습니다. 그들 자신의 풍요를 위해서 다른 신을 찾았던 결과가 참담했습니다. 자유인에서 피난민의 모습으로 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인데도 자유롭게 누리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1세대 보다도 2세대가 신앙 계승에 더 소홀했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자녀들이 영적으로 저절로 자라게 될 것이라고 착각할때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3세대는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을 주셨지만은, 자신의 내면을 정복하지 못했기에...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리지 못했기에, 계속 이방 족속에게 쫓겨 지내는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에도... 자신을 주님으로 다스리게 될때, 이 땅에 허락하시는 영육간의 축복이 결코 작지 않을 것입니다. 내세에 소망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약속과 소망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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