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Weekly칼럼(101-150)

자신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137)

Joseph Lee 목사 2013. 11. 1. 17:09

자신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137)

"여호야다가 나이 많고 늙어서 죽으니 죽을때에 일백삼십 세라 무리가 다윗 성 열왕의 묘실 중에 장사하였으니 이는 저가 이스라엘과 하나님과 그 전에 대하여 선을 행하였음이더라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유다 방백들이 와서 왕에게 절하매 왕이 그의 말을 듣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을 버리고 아세라 목상과 우상을 섬긴 고로 이 죄로 인하여 진노가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하니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선지자를 저에게 보내사 다시 자기에게로 돌아오게 하려 하시매 선지자들이 저에게 경계하나 듣지 하니하니라"(대하 24:15-19)

<josephlee0212@gmail.com

 

주변에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믿음이 크게 영향 받는다면 자신의 믿음이 아닐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의 결혼 동맹으로 이세벨 때의 북이스라엘의 우상이 남유다로 그대로 흘러 들어오게 됩니다.  북이스라엘의 역사상, 영적으로 가장 음란하고 악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에... 모두가 우상 앞에서 무너 질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사용하셔서 거대한 영적인 싸움을 하게 하셨습니다. 마귀가 바알과 아세라 신상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영적으로 타락하게 할때, 하나님의 방법은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에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대안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시기였지만,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영을 넘치도록 부어 주셨습니다. 고난보다도, 역경보다도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가 더 큰 시간이었습니다. 영적으로 우울한 시기에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은 수없이 나타났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때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암울한 시기였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때... 우리 눈에 무척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마치 동화같은 하나님의 기적들이 많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분명히 하신 일이었습니다.

 

Leader들의 잘못된 선택이 공동체에 큰 영향을 줄때가 많습니다.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의 그릇된 선택의 결과가 온 이스라엘 민족의 영성에 영향을 줄때가 많았습니다. 그 결과 큰 환란에 빠질때가 많았습니다. 수많은 이스라엘 왕들의 기록을 통해서 알수 있습니다.

북이스라엘 아합 왕때, 남유다의 왕은 여호사밧이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했으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왕이었습니다. 나라 힘이 약해서, 여러 민족(모압, 암몬, 세일)의 침략을 한꺼번에 받았을때도 온 유다 백성으로 금식기도를 하게 해서 하나님의 강력한 개입으로 승리했던 유다의 위대한 믿음의 왕이었습니다. 그가 여호사밧입니다. 그러나, 그 또한 연약한 사람이었기에 잘못된 선택을 했던적이 있었습니다. 그 결과는 무척 참혹했습니다. 북이스라엘 이세벨 집안과의 결혼 동맹이었습니다. 그토록 여호와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했던 여호사밧이었지만, 영적인 눈이 어두워 질때가 있었습니다. 사방의 대적이 물러가고 모든 것이 편안해 지는 시기였습니다.

그 순간, 여호사밧은 지혜가 어두워 지고, 분별이 약해졌습니다.

 

이세벨의 딸, 아달랴와 혼인했던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은 아내의 우상숭배를 남 유다에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유다 여러 산에 산당을 세워서 예루살렘 거민으로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만들었습니다. 아버지 여호사밧의 믿음이 아니라 아내인 아달랴의 우상 숭배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질투하시는 하나님도 가만히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기회를 주었지만, 여호람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중병에 걸렸습니다. 여호와의 치시는 손이 그와 함께 했습니다. 그후, 여호람의 아들 아하시야가 왕을 계승합니다. 그 역시... 그 어머니 아달랴의 우상숭배를 그대로 따라합니다. 아합의 집안의 악이 온 유다 땅에 흘러 넘쳤습니다. 여호사밧의 결혼동맹에서 비롯된 일이었습니다. 아하시야 또한 여호와앞에서 악을 행하다가 예후의 손에 죽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것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가 왕위를 욕심 내게 됩니다. 유다 집안의 왕의 씨를 진멸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서 아하시야의 아들 요아스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남습니다. 이 시간이 유다 역사상 7년간 아달랴의 여왕으로서 섭정을 하는 시기였습니다.

 

영적인 부분은 타협이 있을수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느냐, 우상을 섬기느냐... 둘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이세벨의 우상 숭배를 여호사밧이 철저하게 끊어냈어야 했습니다. 남유다를 우상숭배로 부터 보호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반대로 왕은 행동하게 됩니다. 심각한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결혼 동맹을 통해서 정치력을 강화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라의 평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수없이 경험한 여호사밧이었지만, 육신의 편안한 시간이 계속될때는 영적으로 무디어졌습니다. 영적인 타협은 심각한 문제를 가져 오게 됩니다. 아들과 손자 세대를 거쳐서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별 것아니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하나님 보시기에 큰 일일수 있습니다. 매사에 기도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아달랴가 7년 동안 섭정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의 손에서 몰래 키워지고 있었습니다. 만 7년의 시간이 되었을때, 하나님앞에서 뜻을 같이 하는 세력들과 아달랴를 물리치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게 됩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요아스 왕과 함께 여호와의 이름으로 개혁을 하게 됩니다. 우상이 무너지고, 여호와의 율법이 다시 선포되고, 훼파된 성전이 다시 수리되게 됩니다. 그동안 곳곳에서 무너졌던 일들이 요아스 왕의 손을 거쳐서 다시 회복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아스의 후견자였던 제사장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때에만 그랬습니다.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시 뒤집혀 버립니다. 우상숭배를 하게 되다가 하나님의 경고를 받게 되지만,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첫번째, 하나님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철저하게 보호하고 계십니다. 다윗의 자손들이 영원토록 왕 자리를 차지하게 될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 말씀은 응답되었습니다. 또한, 유다 나라가 지속되는 한, 이 말씀이 한점 오차 없이 응답되었습니다. 남 유다는 다윗의 온전한 자손들이었습니다.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과 손자 아하시야가 죽고 나서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 오게 됩니다. 아달랴가 여왕으로 등극해서 친히 왕노릇을 했습니다. 마귀의 종노릇을 했던 이세벨의 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언약이 깨어질 위기에 쳐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같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이세벨의 우상과의 거대한 영적 전쟁을 엘리야와 엘리사가 잘 이겨낸것 같았는데, 상황은 오히려 역전되는 것 처럼 보이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마귀의 역공이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우상이 남유다의 왕조 안으로 들어와서 다윗의 자손들을 멸절시키는 상황까지 만들어 버립니다. 하나님의 손길보다 마귀가 득세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힘이 무척 약하신것처럼 보이는 상황까지 갑니다. 아달랴가 원하는대로 다 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성전은 무너지고, 산당과 우상들이 세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이 이럴때가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마귀가 더 힘을 얻는 것 같을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는 것 같을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 하나님은 요아스를 몰래 키우고 계셨습니다. 비록 7년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지만, 하나님의 시간은 완전한 시간이었습니다. 요아스를 세우시기 위한 작업을 하나님께서 미리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실때는 한순간이었습니다. 요아스가 왕위에 세워져서 아달랴가 폐위되는것뿐만 아니라 종교개혁까지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한동안, 하나님의 손은 보이지 않는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보호하고 계셨습니다.

 

두번째, 배후에 영적인 사람이 함께 하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진정한 영적인 리더가 함께 하는 것은 국가와 민족, 공동체와 개인에게 큰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일에 개입하시기 전에 영적인 분위기를 먼저 반전 시키십니다. 그 대부분은 회개에서 시작합니다. 영적인 대각성이 일어날때 육적인 큰 축복이 함께 할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영적인 분위기를 바꾸려고 무릎 꿇는 지도자가 함께 하는 나라는 참 행복할것입니다. 사무엘이 그랬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아달랴가 온 민족으로 우상숭배로 밀어 넣고 있을때, 여호와의 제사장인 여호야다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요아스 왕자를 몰래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의 고민은 크게 두가지 였습니다. 여호와의 언약, 곧 다윗의 자손이 대대로 왕을 이어받을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될것인가? 그리고, 남유다의 우상 숭배를 어떻게 무너뜨릴수 있는가? 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고민을 심각하게 하면서 요아스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요아스가 왕으로 추대했을때, 그는 왕자리를 아달랴의 손에서 빼앗는데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목적인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가 유다 땅에 이루어 질까에 큰 고민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문제 의식은 하나님앞에서 많은 기도로 연결되었습니다. 믿음의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요아스 왕의 영적인 방향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 온 민족의 발걸음이 여호와를 향하도록 이끌어 주었습니다. 여호야다가 생존해 있을때는 요아스도 마음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펼치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후견인인 제사장 여호야다가 죽고 나서는 즉시, 다른 방백들의 의견을 듣고, 우상 숭배에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는 한사람의 역할이 이렇게 중요했습니다. 나라의 영적인 분위기를 좌지우지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서도 여호야다와 같은 영적인 파수꾼이 필요합니다. 또한, 그런 영적인 사람이 키워져야 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사람이 배후에 함께 하고 있다면 이미 하나님의 큰 축복을 누리고 있는 영혼일 것입니다.

 

세번째, 그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앞서 나가십니다. 마귀가 아무리 강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앞에서는 지나가는 바람에 불과합니다. 마귀가 파 놓은 함정이 아무리 깊어도 하나님께는 평지나 다름없습니다. 마귀는 하나님의 약속을 어긋나게 하려고 발악합니다. 모든 것을 무너 뜨리려고 노력합니다. 아주 교묘합니다. 우리 생각을 능가하는 일들이 많이 있을수 있습니다. 많은 영적인 갈등이 여기서 옵니.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는 것을은 분명히 믿지만,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역사해주시지 않는지에 대해서 많은 갈등이 있을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한치 오차 없이 모든 역사를 통해서 완전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랬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 어떠한 일도 하나님의 완전한 손에서 허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지혜로 Control되고 있습니다. 잠시, 악이 득세하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이 아니라 반대로 가는 것처럼 보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시일 뿐입니다. 이 또한 뜻이 있으셔서 그렇습니다.그 어떠한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졌습니다. 개인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영적으로 갈등하는 시간이 반드시 있을것입니다. 그러나, 갈등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성품을 신뢰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결국은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일어서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준비하고 계시는 손길을 믿음으로 미리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지금도 준비되고 있습니다.

 

네번째, 믿음이 자신의 것이 되지 않았을때는 주변의 만남에 따라서 쉽게 움직이게 될것입니다. 주변에 어떤 만남을 있는지는 참 중요한 문제입니다. 영적인 사람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영적인 축복을 더 많이 받고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대화와 교제를 통해서 더 많은 영적인 원리와 말씀을 배울 기회가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세상적인 원리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그만큼 갈등할 소지가 크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러가지가 힘들때는 말씀을 붙잡기가 쉽지 않을수 있습니다. 생각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시간에 생각과 마음을 주님 생각으로 다스리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일부러, 세상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사람들때문에 더 많은 갈등을 가져 오는 것은 어리석은 모습일수 있습니다. 요아스 왕은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때는 율법의 가르침에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볼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마자 다른 방백들의 말에 따라서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됩니다. 이해가 되지 않을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사람중심의 신앙이 되어 있어서 입니다. 믿음이 만나는 사람에 따라서 쉽게 움직일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여호야다의 믿음이었지, 요아스 왕의 신앙이 아닐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럴때가 많습니다. 신앙이 좋아보이지만... 사람의 체면때문에, 만나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리지 않으려고... 열심히 믿는 척 할수 있습니다. 정작 자신의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럴때는 하나님에 대한 예배와 감사보다는 심한 중압감 속에서 믿음 생활을 할때가 있을 것입니다. 기쁨과 즐거움이 없는 신앙은 문제가 있을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격이 없는 믿음도 심각한 문제일수 있습니다. 당분간은 힘들어서 그럴수 있지만, 믿음이 자신의 것인지,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열심히 하는것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앙은 그 어떠한 일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감사와 감격이 있을 것입니다.

 

다섯번째,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사람들에 대한 태도에서 그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요아스는 제사장 여호야다 덕분에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 제사장 덕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라를 다스릴수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여호야다의 죽음후, 하나님에 대한 마음 중심이 변질되게 됩니다. 하나님보다 사람 중심, 자기 중심으로 모든 것이 바뀌게 됩니다. 선지자를 통해서 경계했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강팍해졌습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하나님의 감동에 의해서 그러한 태도를 책망하게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모든 걸어가는 길에 큰 도움을 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한 여호야다의 아들을 죽이도록 허용하게 됩니다.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셨던 모든 일들에 대해서 조그마한 감사와 찬양도 없었기에...그럴수 있습니다. 은인에게 깊은 감사가 있었더라면 도저히 할수 없는 행동이었습니다. 그 태도가 결국은 하나님에 대한 태도였습니다. 사람에 대해서 강팍한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마음이 딱딱해진 것이었습니다. 영적인 사람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수 있습니다. 그 교제를 통해서 영적인 상태를 점검 할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는 사람들을 대하는 모습에 그대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은 사람에게서도 그러한 태도로 대할 것입니다.

 

여섯번째, 하나님께서 은혜 주실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은 돌이키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호와께로 돌아 오는 것을 원하십니다. 모든 선지서의 내용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입니다. 그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하나님께서 외치고 계십니다. 요아스왕에게도 몇번의 기회를 분명히 주셨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핍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세벨에게 조차도 회개의 기회를 충분히 주시는 분이십니다. 인격적으로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요아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고 더 악한 행동을 많이 했습니다. 은혜를 악으로 갚았습니다. 누구보다도 질투하시고, 투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음 중심이 다른 곳에 빼앗기는 것을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은혜속에서 돌이키기를 원하십니다.

그것만이 사는 길입니다.